(시작 기도)
주님,
2023이란 숫자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데 저 멀리 흘러가 버립니다.
2000년대로 넘어올 때 세상이 참 야단법석이었는데
벌써 23년이나 더 지났으니 정말 세월은 쏜살처럼 지나갑니다.
연말 때마다 ‘세월을 아끼라’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지만
주님 앞에 언제나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잠언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자격없는 자,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받을 때,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맛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 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본문 주해)
오늘 본문은 각 절의 첫 단어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 시작하는 답관체(acrostic) 양식을 띠고 있어 높은 문학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암기하거나 기억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10~12절 : 완벽한 아내의 모습을 상징하는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기가 참 어렵다.
‘현숙하다’라는 말은 한국적 여인의 이미지보다는 힘과 유능함이 있다는 의미이다.
부지런하여 가정 경제를 잘 꾸려나가는 이 여인은 잠언 곳곳에 등장하는 ‘음녀’나 ‘게으른 여인’과는 대조된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은 오직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
13~19절 : 현숙한 여인은 말할 수 없이 성실한 삶을 산다.
‘도대체 남편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정의 모든 일을 맡아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아내의 모습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가업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여인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여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의 일들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까지 챙기는 근면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가정에 부유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지혜로운 여인의 생활 습관과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27절 : 현숙한 여인은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산다.
그 여인은 성실하면서도 가난한 자들까지 잘 돌보는 사람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주 억척스럽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자기를 위하여서도 아름다운 이불을 짓고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는다. 자기를 단장하는 것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는다. 이는 재판하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리고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오는 여인이니 이런 완벽한 여인이 어디 있을까?
28~31절 : 이런 여인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 어머니에게 일어나 감사할 것이며 그의 남편도 칭찬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칭찬의 근원은 여호와 경외에 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새번역)
(나의 묵상)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하고, 곤고하고 궁핍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자기 관리에 충실하고, 그가 하는 말에도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와 남편에게까지 칭송을 받는 여인이라는데, 그 칭찬의 근원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이란 단순한 한 아내의 모습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의 모습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도 현숙한 여인으로서, 주님의 신부 된 자로서, 부지런함과 자비함을 갖추고, 자기관리에 충실하고, 말에도 은혜가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은혜의 근원은 ‘여호와 경외’에서 출발한다고 말씀한다.
‘여호와 경외’의 시작이자 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말씀이신 주님을 알아가는 것이 현숙한 여인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 만들어지는 길이다. 그것은 나의 노력과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이 땅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매사에 성실하지도 않으니, 틈만 나면 게으름을 피우고자 한다.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하지, 내 손을 펴 자비를 베푸는 일에도 인색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매사에 너그럽다. 나의 입의 말은 부끄러운 것이 많고 툭하면 실수하거나 실패하니 영 지혜롭지가 못하다.
구원은 받았지만 현숙한 여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의 거룩한 삶까지도 이루어 내시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인으로도 만들어 주실 것을 믿는다. 주님께서 나를 거룩하고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새 언약을 하시고 또 이루시는 주님을 믿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성령께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신 이 일을 기쁨으로 행한다.
현숙한 여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참 지혜를 가진 자,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주님께서 만들어 가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묵상 기도)
주님,
마음에 악이 가득하고, 말씀의 뜻을 모를 때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노?’....‘도대체 남편은 뭐하는데?’ 하고 반발했습니다.
참으로 돼지에게 진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영생의 삶을 누리면서 주님을 알아갑니다.
현숙한 여인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남자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백성된 삶을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알아갈수록
주님의 거룩한 신부 되기를, 현숙한 여인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삶의 모습이지만
말귀라도 알아들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장차의 모든 일을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잠잠히 머리 조아립니다.
성령님,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