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인생에서 남은 카르마의 무게를 아는 쉬운 방법이 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자만,유신견,질투시기,미움의 무게가
많을 수록 , 카르마업장이 두텁고 길고 , 많이 남았음을 명확히 알 수있다.
카르마가 많이 정화되고 해원되고 적게 남아 있으면 위와같은 내적 부정성의 심리가
현저히 줄어든다. 내면에 분노가 많은가? 또는 분노 할 상황이 자주 생기는가?
나로 인한 불행이든 타인으로 인한 불행이든 평화롭지 않은 마음이 자주 생기는게 고통이다.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목적일 것이다. 괴로운 마음은 온갖 질병을 유발한다.
몸과 마음이 늘 괴로운 까닭은 탐진치의 무게가 그많큼 소멸되지 않은 까닭이다.
돈으로 남녀사랑으로 권력으로 명예로....영원한 평화로운 마음은 가질 수없다.
분노를 다루는 기술....범부와 수행자가 다른점은 범부는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고
수행자는 자기 업장과 내면에서 찾는다는 차이점이다. 범부와 수행자가 만일 에고로
갈등을 빚는다면 당연히 수행자가 아직 덜 공부가 된 까닭이다. 수행자는 범부와 달라야 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닌, 지혜가 나면 분노와 갈등의 상황을 분명하고 명료히 보게된다.
업이 두터우면 평생 분노 할 환경속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 또 새로운 불선업을 창조하며 산다.
이는 아주 무서운 말이다. 수억년의 카르마 탕감도 버거운데 새롭게 쌓아가는 카르마 피라미드 탑들....!
만일 수행자가 범부와 다투었다면 그것은 수행자로서의 부끄러움이다. 수행하려면 강해야한다.
분노조절이 안된다는 것은 그만큼 전생에서 제멋대로 안하무인으로 살아서이다.그리고 심약해서이다.
분노와 화가 많다는 것은 강해서가 아닌 나약하고 심약하고 두려움이 많고 슬픔이 분노로 변질된 불선카르마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의 과거생과 수행하기 전의 현생을 돌이켜 탐구해본즉 그렇다...ㅡ,.ㅡ;;
지난 39살까지 분노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참지않고 쌈박질하는 자신을 난 그게 강해서인줄 알앗다.
물런 강했다. 불선업이...ㅡ,.ㅡ 그런 심보로 39년을 ㄱ고생하였다, 안해도 될 고생을 사서하며
자기분노를 못다스려서 재산도 사람도 관계도 다 파괴하는 성격파탄자로 살아왔다.광견병...
세속에서는 그것이 무슨 기가 세고 강해서인양 때론 못난 자랑질마저...
불선카르마가 강하면 늘 질풍노도의 인생속에서 지가 뭔 영화배우라고 인상파로 산다.
분노조절이 안되는 정신질환이 있다. 감정조절이안되는 정신병이 발전하면 범죄자가 된다.
어쩌면 우린모두 잠복성 범죄자들인지도 모른다. 아마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을른지도 모를 나의 전생성격과 현생의 무지함....! 분노가 모이면 전쟁이된다.전쟁은 인류의 분노가 쌓여서 생겼다.
암튼 어리석고 무지하면 분노할 상황과 사람과 환경이 자꾸 현실장에서 창조된다.
그리고 카르마가 두터우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듯 , 가만히 있어도 시비를 건다.
그것은 바로 내 파동이 거칠은 까닭이다. 말을 안해도 인체파동의 파장으로 사람들은 느끼게된다.
파장이 거칠면 묵언하여도 오라체가 검붉게 이글거린다. 분노할 상황이 생기는건 우주끌개장 원리처럼
자신의 오라파동이 존재자체로 부정적이면 부정성의 끌개장원리로서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연출된다.
결국 자신 스스로 그런 파장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우주는 정직하다 선악을 떠난 내가 부르는 것을 선물한다.
또 생물학적으로는 성욕이 억압되면 공격적이고 분노조절이 안되어 뇌신경압축현상으로
폭발적이 된다. 성욕이 강한 상태에서 건강하게 해소할 수없는 일반적 범부들은 매우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며 날카롭다. 히스테리컬한 파장때문에 우울하고 또 우울하기 때문에 비매력적이어서 성욕해소 할 껀수도 안생긴다.(?)ㅡ,.ㅡ
성에너지를 정화하고 승화하여 정묘한 그 에너지를 정진력에 쓰는 수행자는 아주 드물다.
그 본능참기가 힘들어 수행력의 고행으로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수행하는 행자도 많이 보았다.
자신의 근기를 아는 게 관건이다. 억지로 원시본능을 현생에 제거하면 담생으로 이월된다. 강제로 거세된 본능...
자연스럽게 저절로 떨어져나가지 않은 원시본능은 금생에 고행으로 타파했다해도 담생에 더 강하게 도출된다.
뭐든 자연스럽지 못한 내면와 마음과 정신과 성격이 불행의 원인이 된다. 억압하는 국민성에서 특히 변태가 많다.
하지만 수행자의 계를 수지하면서 지혜를 내고 자기근기를 탐구하고 반조하여 인생계획을 짠다면 건강한 성해방이 온다.(?) ..ㅡ,.ㅡ
수준높은 자유로운 마음은 곧 억지로 의도를 내지않고도 저절로 흐르는 감정과의 균형과 조화를 가져다준다.
분노가 일어나는가? 자기 경향성을 알고 지혜를 내어 그 즉시즉시 풀어갈 방편을 모색하라
억울함이 쌓이면 홧병이 걸린다. 그러나 그 억울함도 다 내 전생 카르마에서 이월된 성품에서 기인한다.
참된성품으로 수행을 통해 해갈되면 카르마가 녹고 따라서 삶이 부드러워지고
또 인자한 성품과 자신을 지지해주는 고매한 성격의 사람인연과 인연될 때가 강물처럼 당도한다.
선한도반을 가까이 두고싶어도 , 자신이 현재 제아무리 착한척해도 전생 불선 카르마가 녹지않으면
그 착한 성향으로 늘 타인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거나 괴로운 환경속에서 억압하며 살게되는 삶이 지속된다.
자꾸 괴로운 상황과 사람이 주변에 가는 곳마다 생겨나는지? 지금 나의 현실을 둘러보면 내 카르마무게를 알게된다.
카르마가 많이 녹은 수행자의 곁에는 비록 범부가 살더라도 그 범부가 수행을 하게되고 , 분열보다 화합이 창조된다.
억지로 참아서 그 환경에 어색한 평화가 오기보다는 경쾌하지만 고요하고 차분한 에너지장이 늘 형성된다.
참되고 선한도반과의 인연이 길어지려면 수행은 필수다. 마음이 공부되지 않은 인연과의 연결은 그 카르마가
종결되면 다시 인연따라 서로 갈라서게 되어있고 지금 좋아서 몇십년 같이 살듯해도 카르마가 두터우면
현재 좋은인연도 끊기게되고 다시 자기업장을 소멸하고 부정적천성의 균형을 맞출 상황으로 영혼들은 인생일정을
다시 짠다. 나는 마흔이전 온갖 뼈가 다부러지고 장애가 오고 저열한혈기가 수그러든 후에야 삶이 부드러워졌다.
수행을 하면서부터 무조건 참회를 하고 봉사를 하려하고 내 성정의 화를 보고 스스로 깊이 반성하고 수치스러워했다.
물론 지금도 기력이 쇠잔(?)하지 않았더라면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욱~버럭~의 화신이었다. 2030시절에는...!
분노에너지도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화내려면 금새 배고파져서 공양밥먹을 때 이렇게 기도한다.
이 고마운 밥먹고 쓸데없는데에 힘쓰지 않겠습니다.....ㅡ,.ㅡ 하고 기도하고 밥먹는다. ㅋ
분노는 현대인의 불치병이 되었다. 분노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분노는 인간들의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쓰는 한가지 비법은 분노나 화가 나면 그것이 하루를 넘기전에 푸는 것이다. 상대와 풀 여건이 아닌 화는
스스로 풀어준다. 가상현실속으로 들어가 하트차크라에서 사랑이 피어나게 그런 장면이나 영화나 대상을 물색한다.
물론 정법수행자들이 들으면 무시받을 좌파행법이긴 하나 난 나의 소중한 몸과 마음을 아껴야하기에
그런 개무시정도는 아랑곳 없다. 그리고 나의 싸이코적 기질과 내 근기와 타고난 천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스스로 자신의 화와 분노를 풀어주는 비법연구에 온 생애(?)를 바친 고독한 작자이다.ㅋㅋ 자신을 알면 분노도 힘이된다.
자신은 소중하다 이 몸으로 수행해야하고 또 육도윤회를 벗어나야하는 나룻배와 같은 이 몸을 아끼자.
마음은 지혜를 배우는 나룻배이기에 소중히 아낄 필요가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지극히 오로지 사랑해주길 원하고 이해하길 바란다. 그건 아니자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남도 나를 함부로 대한다. 내 몸과 마음을 알려하지 않고 자신도 자기를 모르는데
누가 자신을 아껴주고 이해를 충분히 할 수가 있는가? 나를 알면 내 전생들이 보이고 내 남은 업장이 보인다.
나를 모르기에 그렇게 괴로운 것이다. 자기 분수와 내 꼴을 안다는 것은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키워드이다.
나를 알자!!! 욕심이 과하고 자만이 강하면 괴로운 인생이 길고 길어진다. 어딜가나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게 마련이다.
지금현재 상황은 반복된다. 탐욕 성냄 자만 욕심 시기질투 분노가 강할 수록 그저 내 욕심이 아직 많구나~~하면된다.
다 욕심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범부적 일상속에서는 모든 불행원인이 대체로 다 그러하다. 욕심쟁이는 괴로워~~~ㅠㅠ
갈애집착이 많은 것이 욕심이다. 내 인생 지구나이 39세때 고통의 극치를 맛본 난 철저하게 인생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왜냐하면 탐욕적이고 성질드럽고 자만심 강하고 유신견짱이고 나르시스트로서 늘 지가 주도권을 잡아야하고
괴팍하고 광기로 광폭하고 독선적이고 , 고집세고 , 늘 경쟁적이고 아쥬~~불선을 다 갖춘 악마의 유전자를 모조리 달고 살았으니...
사탄의 인형 처키..가 바로 나였다..헐...ㅡ,.ㅡ 수행만나면서 딴 사람됐다. 그런 불치병은 약도 없다.
수행과 마음공부만이 약이고 고칠 수있는 처방전이다. 고통의 바닥을 치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분노의 힘으로
세속에서 저열한 광기의승자로 남아 성취감에 들떠산다. 베풀줄모르는 낮고 저열한 의식은 그 주변장을 더럽힌다. 그리고 전염시킨다.
특히 남에게 해만 안끼치고 살면 잘 사는 거라며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몸소실천하는 고독한 은따들...
그들곁에선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간다. 검소와 자린고비는 다르다. 탐욕적인 사람들은 검소와 청빈을
욕심의 속내를 들킬까봐 방패막이로 합리화한다. 마음이 빈곤하니 그의 주변에는 자신을 위해 목숨걸을 의리있는 친구도 없다.
늘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이다. 빈곤의식이 강하여 수행을 오래하면 허세만 는다. 되도록이면 피하라~그런 쪼다족들은..!!! ㅡ,.ㅡ
힘...분노할 힘이 남아돈다는건 에너지가 혈기왕성해서이다. 내 의식을 고품격으로 상승시키면
분노를 예술적 기운으로 전환시킬 수있다. 마력이 매력이 되어 타인들에게 어딜가나 환영받는 사람이된다.
분노의 힘은 마력이다 그러나 그 마력도 고차원적으로 의식을 전환하면 매력발산으로 인체파동이 멋있어진다.
멋진 사람들 곁에는 멋진 수행자가 늘 서너너덧 명씩 꼭 있었다. 인연은 시냇물처럼 이어지고 끊기고 갈라서고
또 그언젠가 만난다. 지금 현재 인연이 언제 시냇물처럼 갈라서게 될지는 우린 아무도 모른다. 단지 인연따라 살 뿐....
그 인연에서 배움이 끝나거나 그 인연현실장에서 도저히 배움이 불가능하면 영혼들은 갈라서게 되어 있다.
인생에서 분노질량과 카르마의 남은 무게는 비례한다.
나의 전생업장을 알려면 내 분노의 질과 양을 간파하라
그리고 남은 생과 내생도 알 수 있다. 현재가 과거생이고 미래생의 반복이다.
고통속에서 깨달음이 없고 배움이 없다면 그 고통의 환경은 다시 재현된다.
처절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고통속에서 깨달은 자는 드물다.
교훈을 얻지 못한 고통의 현실은 어김없이 다시 깨우치도록 그 환경을 반복재생 시켜주는 우주의 자비심....
하나의 고통에서 자신이 배울 교훈을 배우지 못한 영혼은
다시 그러한 환경을 영혼들이 선택하게 된다. 영혼들은 배우러 왔다.
고통스런 환경을 통과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거기서 무엇을 배웠냐가 인생고통의 목적이다.
오기가 강하면 고통환경은 어떻해서든 통과는 한다.
그러나 배움이 없는 고통극복은 다시 그 환경으로 내몰리게되어 있다.
지난 나의 인생체험속에서 처절한 고통을 체험한 후에 난 반복이 지겹고 지리멸렬해졌다.
그리고 마음공부로 접어들었고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수행자가 되었다.
지금도 수행과정에서 모자라고 못난 신구의 불선행으로 좌절하지만 수행을 포기하지 않겠다.
범부와 수행자의 탐진치...알차차림과 알지못함의 천지차이를 ... 알고서 정말 부끄러움을 알게됐다.
남을 의식해서 부끄러워하는게 아닌 내 양심에게 부끄러운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인생 그리질지 않다.
거울을 보면 탐진치로 분노로 물든 눈빛은 내가 봐도 악마의 졸개같이 못나 보이고 흠좀무ㅡ,.ㅜ 다.
멋진 영혼은 자기 카르마의 무게를 알려고 자아탐구하는 자이다. 오늘도 나를 마루타삼아 연구하는 몽키의 휘갈김!ㅡ,.ㅡ
글이 길어지니 손구락이 지리멸렬하다고 야리눈군~ 미안하다 손톱에 때낀 손구락아~!!!
그 언젠가 뇌파를 통해 글자치는 타자기가 나올테징~ 게으른 몽키의 독수리타법의 톡톡...
글쓰기는 나의 의사이다. 그리고 내 칭구~ 점점 글에너지가 유치해지는군하~배고파..이만 끝 !!! @,.^/
첫댓글 옮긴 내용입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나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재밌지요?~
옴아비라훔캄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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