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의 시작, 새로운 만남 下]
10분 쯤 지나고 멀리서 트램이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램에 올라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방금 전 일을 떠올렸다. 너무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는 이야기가 이상황에 딱 맞는 것 같았다.
'아..., 성은채...지금 뭘하고 있는거야... 대책없이 여기까지 날라와서...'
"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물어봐도 방금 본인이 했던 행동들에 대한 어떤 명분도 떠오르지 않았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와 본 도시에 깔린 어둠이 낯설었다.
'나는 도대체 여기까지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답을 도저히 못찾겠다.
'성준아.......'
오늘따라 그 사람이 너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은채의 지난 이야기]
“은채야 놀라지마, 짜잔 이거 어때?”
성준은 언제나 자신의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야 이벤트인양 이렇게 자신의 작업실로 끌고와 나를 위한 선물인 것처럼 자신의 작품을 공개했다. 오늘도 갑작스럽게 나를 끌고와 눈을 가리더니 "짜잔" 하며 눈앞에 캔버스 를 들이 밀었다.
“우와 이번 컨셉은 뭐야?”
그의 작품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웠지만, 이런 식의 반복된 이벤트는 나에게는 한번 본 영화를 또 보는 것처럼 뻔했고 어떤때는 유치하기도 했다.그러나 세상에 딱 한 명 그의 작품을 검증해 주는 선배이자 연인으로써 매번 놀라는 척을 하며 그의 으쓱대는 모습을 봐 주었다. 그리고 자랑처럼 이어지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설명.
"이번작품은 우리가 지난달에 갔었던 오사카 있잖아. 그 때의 오사카성을 생각해서 그려봤어. 둘째날 밤에 오사카 성 다리에서 성을 올려다 보며 사진을 찍었잖아. 그 때 보이던 풍경을 사진으로 보면서 계속 머리속으로 생각해서 그려봤지. 추상화로 그리려다가 풍경화는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하는게 아름다운 것 같아서 이번 컨셉을 사실적인 풍경화로 잡았지. 어때?"
작품앞에서는 네살박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
나는 성준의 같은학교 같은과의 2년 선배이자 연인이었다. 2011년, 우리가 연인이 된지 4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08년, 대학교 3학년인 나는 늦은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수많은 고민들의 대부분은 내가 배우고 있는 전공에 대한 것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5년 이상 배워왔던 미술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어떠한 의심이나 걱정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집안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 때문에 이번학기에 휴학을 한 언니의 사정도 못 본척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이렇게 순수미술을 해서 어떻게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학문적인 열정과 하루에도 수백번씩 충돌하고 있었다.
"내일 신입생 OT 있는거 알지?"
"....."
같은 과 동기인 유미의 전화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망설였다. 지금 한가롭게 신입생 OT 나 참석해서 웃고 떠들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무말을 못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유미가 알아챈건지 다소 격앙된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야 그래도 너까지 빠지면 올 사람이 없어. 3학년 해봤자 몇명이나 있냐. 2학년 애들 있으니깐. 밥만 먹고가면 돼. 와. 꼭!"
어쩔 수가 없었다.
"알았어.."
왜 나는 더 강하고 모질게 거절을 못 하는 것일까.
"안녕하십니까 08학번...."
이 시기의 학교는 늘 그렇듯 빠져 나간 졸업생을 메꾸듯 신입생을 받고 또 그 기대에 가득 찬 신입생들을 맞는 여러 행사들로 학교 전체가 분주했다.
"안녕하십니까, 08학번으로 입학한 새내기 윤성준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그와의 첫만남이 기억난다. 눈처럼 하얀 잡티하나 없는 피부를 가진, 긴목이 외로워 보이던 사람. 낯선 사람들 앞에서의 인사가 어색한지 연신 얼굴이 빨개지던 그 사람. 그의 인사가 끝마치자. 나의 동기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잘 생겼다.."
과 특성상 전체인원이 많지 않을뿐더러 여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남학생, 더욱이 잘생긴 남학생에 대한 관심은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OT 행사 후에 개별로 인사하던 자리에서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신입생 윤성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가 내민 손을 어색하게 잡으며 나는 별다른 대꾸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네 안녕하세요. 06학번 성은채에요. 열심히 배우세요"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수십명의 신입생들 중에 하나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은채 선배 밥 사주세요"
분명히 할일도 많고 약속도 많았을텐데 OT 이후로 유독 성준은 나에게 밥을 사달라며 점심때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목련꽃이 유달리 많던 우리학교에서 목련꽃이 길다랗게 피어있는 길을 걸으며 그는 이것저것 나에게 많이 물어보았다. 주말엔 뭐하냐. 남자친구는 있냐. 취미가 뭐냐. 삶의 고민만으로도 힘든 나에게 그의 존재는 귀찮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보통 그와의 이야기는 긴 장문의 질문과 단문의 대답으로 끝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고, 과연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나와 신입생일 뿐인 그와의 사이에 당연한 벽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3월이 가고 4월이 되었을 때 과 MT 계획이 잡혔다. 물론 나는 어떻게든 MT를 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보았지만, 공업디자인 김희수 교수가 MT를 함께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과를 계획하고 있는 내가 눈도장도 찍고 여러가지 문의도 해볼 겸 해서 MT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영종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신입생들은 신입생대로 재학생들은 재학생대로 소리를 지르며 흥을 북돋우고 있었지만, 나는 목적이 있던 MT였기 때문에, 언제 김교수 옆에 앉아 말문을 틀까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도착하자마자 피구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게임들로 반나절을 보냈다. 물론 내가 그러한 게임들에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게임들이 그리 흥미롭지만은 않았다. 저녁이 되자 1.5리터 플라스틱 병에 든 소주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자 오늘만큼은 열외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모두들 각자 앞에 놓인 잔을 가득 따라 주세요.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한 번 죽어봅시다. 자 우리 미대의 거국적인 단결을 위하여, 건배"
과 대표인 4학년 지민 선배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그 날 저녁 술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 때가 아니면 김교수와 개인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오로지 그녀의 행동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옆자리가 비게 되자 나는 얼른 술잔을 들고 옮겨 앉았다. 김희수 교수는 학계에 유명한 디자인 거장이었다. 꼼꼼하고 당찼으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설득력이 왠만한 남자 못지 않게 힘이 있는 대장부의 아우라를 풍겼다. 물론 대단한 학문적인 열정 뒤에 이혼을 했다느니, 고집이 세다느니 하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나는 사생활하고 학문적인 능력하고는 별개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교수 정도면 나의 진로에 결정적인 조언이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수님, 얼굴만 몇 번 뵙고, 정식으로는 처음 인사 드려요. 07학번 성은채에요"
형광등에 반사된 그녀의 금테 안경이 더욱 빛났다.
"그래. 너 참 이쁘구나"
김희수 교수가 내 쪽을 돌아보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예상치 못했던 예쁘다는 대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교수님은 참 멋지신 것 같아요"
불쑥 말이 나와 버렸다. 그 다음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더더욱 말을 잇지 못해 난감했다.
"왜 내가 멋져?"
다행히 술을 몇 잔 먹은 김교수의 얼굴은 벌써 발그라니 뜨거운 기운이 얼굴에 올라와 있었고,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생각한대로 이야기 해보자 싶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뛰어난 디자이너 이시고, 언제나 열정이 넘쳐나시는 커리어 우먼 이시잖아요, 뭐든 잘하시니깐 그것이 멋진 이유죠"
그러자 김교수가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커리어 우먼이라는 감투는 집안팎 모두 다 잘 해야 얻는 영광아닌가"
"잘하실 것 같은데요? 가정에서도?"
안좋은 루머에 대해 잠깐 생각했지만 어차피 아부성 칭찬 아니던가. 김교수가 어울리지 않는 베시시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했다.
"그래 난 가정에서도 열심히 했지. 우리 아들 볼때면 내가 알 수 없는 보람을 느껴"
"네 근데 교수님 닮아서 아드님도 미남일 것 같아요"
"호호호 그럼, 내가 이런 얘기하면 낯 간지러고 우습겠지만, 내 아들이지만 참 잘 생기긴 했어. 나한테도 참 잘하고,
본인이 미술을 하니깐 엄마를 더 잘 이해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진짜요? 아드님도 미술을 해요? 우와!"
나의 과도한 리액션에 그녀는 으쓱하며,
"그럼, 근데 좀 더 지켜봐야지. 이제 대학 입학했으니깐"
"아 진짜요? 어느 대학 인지...물어봐도 되죠?
그러자 그녀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나즈막히 이야기 했다.
"우리 학교야"
우리학교? 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구요?"
"저기 있네"
그녀가 눈으로 가르키는 시선의 끝에 성준이 있었다.
4월이긴 했지만 바다 바람이 밤이 되자 더욱 차가워졌다. 바다는 아직도 겨울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는 아까 김교수의 옆에서 내가 원하던 조언이나 방법들을 결국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몇잔의 술만 더 먹었을 뿐. 그 자리를 더 견디지 못해 이렇게 바다로 나와 버렸다. 김교수의 아들이 성준이었다니 꽤 재밌고, 놀라운 사실이었다. 능력있는 부모님을 둔 성준에 대한 부러움이 생겼다. 그와 상반되는 내 처지가 서글펐다.
"야!"
바다를 향해 크게 한 번 소리를 질러 보았다. 바다물이 빠져버린 밤바다 갯벌위에서 내 고함소리는 먼 파도소리에 묻혀버렸다.
오기가 생겼다. 바다마저도 내 처지를 비웃는 건가.
"야!"
다시 묻히는 소리
"야! 야! 야!"
"아 진짜 왜요. 누굴 그렇게 불러요"
내 뒷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성준이 막 갯벌로 발을 디디려고 하고 있었다. 잠시 부끄러웠지만, 나도 술을 마셔서 일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야기 했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에이 척하면 척이죠. 하하. 아니 춥지도 않아요? 으..바람이 차다"
내 옆에 바싹 붙어 서는 그를 밀쳐내지 못했다.
"뭐 고민있어요? 왜 이렇게 표정이 안좋아요?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아냐 하나도 안취했어"
엉겁결에 튀어나온 거짓말. 나는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이런 나를 보며 그가 빙그레 웃으며,
"아 그래요? 난 또 많이 취한 줄 알았네. 우와 바닷물이 다 빠져서 그런가. 갯벌 신기하다. 좀 질퍽거리긴 하지만"
그가 성큼성큼 바다 쪽으로 갯벌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갯벌 흙이 본드처럼 내 발을 잡아 끌었다. 몸이 나도 모르게 옆으로 갸우뚱 넘어갔다.
"어! 어! 조심해요!"
성준이 나의 팔을 얼른 잡아 끌었다. 엉겁결에 그의 품에 안겨버린 꼴이 되었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얼른 그를 떨쳐내며 그를 앞서 걸어나갔다. 앞에 보이는 큰 바위에 걸터 앉았다. 내 옆에 성준이 말없이 앉았다.
"달이 진짜 밝네요. 그쵸?"
삐죽삐죽 솟아 올랐다 가라앉는 파도에 반사된 달빛이 반짝거렸다. 밤이라 더욱 까매진 밤바다에 반사된 노란색 달빛이 아름다웠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머리가 기울었다. 내 머리가 성준의 어깨에 닿으며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나는 방에 있었다. 옆에는 코를 고는 아이부터 시작해서 술냄새가 방안 가득 진동했다. 나도 숙취때문에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며 어제 어떻게 여기 온걸까 아무리 기억해보려해도, 머리만 아플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속상하고 기분이 불쾌했다. 술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먹은 나 스스로가 미워졌다.
"괜찮아요?"
마침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성준이 작게 물어보았다. 무슨 비밀스런 추억이라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성준의 웃는 얼굴이 맘에 안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머리가 너무 아프니깐, 그건 잠시 있다 생각하기로 했다. 성준이 주머니에서 뭔가 뒤지더니 불쑥 나에게 숙취 드링크제를 내 밀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걸 받아들고 단숨에 마셨다. 잠시 속이 진정되는가 싶더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오전을 자리에 누워 어영부영 있다보니, 정오 즈음에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될 시간이 되었다고 소리지르는 지민선배가 보였다. 술마시고 난 다음날 숙취가 덜 깬 불쾌한 기분이 밖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과 상반되어졌다. 모두 어제의 숙취로 아직 엉망진창인 몰골들인데, 얘네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면 술을 못 깸은 물론이고 불쾌한 기분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갈 데가 있어서...그냥 따로갈게.."
"어디? 어디가는데?"
나의 말에 유미는 어디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꼬치꼬치 깨물었다. 귀찮은 마음에 고모집에 간다고 대강 둘러대고 먼저 애들을 실은 버스를 떠나 보냈다. 날씨가 따뜻하다기 보다는 사랑스러웠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에 닿자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바다 뒤 언덕에 진달래며 벗꽃이며 만개해 있었다.
"혼자 어디가요?"
멀리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성준이 웃으며 손을 흔들며 천천히 다가 오고 있었다.
"너 아까 버스 안탔어?"
"네, 누나가 그냥 따로 간다길래, 버스 출발전에 내려 버렸어요"
"야 내가 왜 니 누나냐, 낯 간지럽게"
"아니 그럼 누나를 누나라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나원참"
옥신각신 하며 도로 갓길을 함께 걷고 있던 우리, 버스를 타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길을 따라 주욱 만개한 벗꽃 밑으로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넌 좋겠다"
"왜요?"
"그냥 걱정이 없으니깐"
"왜 그렇게 생각해요?"
"능력있는 부모님 밑에서 걱정없이 공부만 하면 되니깐, 난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한달내내 일해도 내 등록금 마련하기도 빠듯한데"
마음이 좀 더 편해져서 일까. 내가 계속 고민하고 있던 것들이 불쑥 입밖으로 튀어 나와 버렸다. 이어지는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그의 대답.
"누나는 그래도 누나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라도 계시잖아요. 나는 아버지의 존재가 뭔지도 몰라"
길을 가다 멈추어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알 수 없는 그의 아픔이 내 가슴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뒤로 두시간 가량 더 길을 걸으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들 처럼 둘은 서로의 나이와 처지를 잊어버리고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를 서로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외도로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고, 그 자리를 채워주려는 엄마의 사랑이 관심을 넘어선 집착이 되어버렸으며 고등학교 때는 엄마의 도를 넘은 집착으로 인한 극심한 조울증에 걸려서 아직까지도 정서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에 왠지 모를 나의 모성애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올라왔다.
"자 이번 정류장에서 버스타자, 나 다리 아파"
"누나..."
갑자기 정색하며 나를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봄햇살에 장시간 노출되어 얼굴이 익어버릴 것 같아 짜증이 밀려오는 얼굴로 대답했다.
"왜?"
"우리...사귈래요? 나 사실..누나 처음 보는 순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생각하고 있던 그 때, 한창 작품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던 성준이 나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아니 오사카 성? 진짜 리얼하게 잘 그렸다. 벚꽃이랑 잘 어울리네.”
“됐어!실망이야 딴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냐 오늘 좀 피곤해서 그래”
“회사에서 뭔 일 있었어? 그러니깐 그냥 시집오라니깐”
“또 시집 얘기야? 시집가면 어떻게 나를 벌어 먹여 살릴 거야?당장 넌 다음달에 군대도 가야 되고, 모아둔 돈도 없고”
만난지 4년, 처음 만났던 그 때와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결국 공업디자인으로 전과하여 작년에 졸업해서 컴퓨터 회사에 입사했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나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연봉도 꽤 높게 받았고 2년 차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업무도 손에 익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급도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작년부터 부쩍 성준이가 결혼타령을 시작했는데,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결혼이란 것이 이상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회사선배를 통해서 충분히 알게 되었다. 집, 혼수, 그리고 무엇보다 둘이 함께 미래를 위한 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졸업도 못한 성준이가 아직까지도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아내나 며느리가 될 자신이 아직은 없었다. 20대 중반의 나와 20대 초반의 성준에게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성준을 키운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도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성준과 함께 있을 때마다 시간별로 둘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문자나 전화로 알려야 하는 번거로움도, 당신의 아들은 결혼하고도 평생 당신과 함께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부담감도 아직 나에게는 버거운 짐이었다. 다만 이러한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성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 이야기면 언제 어디서든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그의 마음만큼은 앞으로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사랑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다 보면 성준도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이나 부담들에 대한 대처능력도 생기게 될 것이고, 어머니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도 조금은 무디어 질 것이라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지금 20대 중반으로 포용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물론 내가 이런 성준의 어머니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성준의 어머니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과를 하게 된 것부터 취업을 하게 된 것까지, 그의 어머니의 배려나 도움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준은 감정조절이 아직도 서툴러 한달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조울증이 군대 생활을 하고 나면 고쳐질 것이라 나는 기대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우리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조심히 다녀와, 위에 고참들 말 잘 듣고”
짧게 깎은 머리가 어색한지, 성준은 계속 자신의 머리를 긁적긁적 만져보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의 어머니는 입대 전 마지막 점심을 함께 하면서 아무말도 못한채 계속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우리 아들, 절대 아프면 안돼. 알았지?”
“걱정마세요. 나 잘하고 돌아올게요. 은채는 절대 한눈팔지 말고. 알았지?”
“걱정말어. 한눈팔고 싶어도 바빠서 눈돌릴 시간도 없으니깐”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멀리서 집합을 명령하는 방송이 들려왔다. 갑자기 내 눈물샘이 짜릿하게 자극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지막 헤어지는 그에게 눈물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성준이 통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열어봐봐”
100만원이 찍힌 통장.
“하루에 만원씩 내가 용돈 주는 거라 생각하고 써. 많지는 않지만. 이걸 다 쓰게 되는 날. 내가 짠하고 나타나 줄테니”
그의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그가 나를 꼬옥 안으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랑해. 내가 좀 더 늠름하게 나타나 줄게. 엄마도 좀 챙겨주고. 이제 엄마도 그만 울어. 나 이제 진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가 떠난 춘천의 훈련소 입구에서 한시간이나 더 서 있다가 돌아섰다. 성준의 어머니가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너무나 많이 울어서 내가 대신해서 운전을 했다.
“은채야. 작년에 그냥 너희 둘다 유학을 보내버릴 걸 그랬다. 진짜,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아니에요 어머님, 성준이는 훈련 잘 받고. 더 어른이 돼서 돌아올 거에요. 제대하고 나서도 공부가 더 필요하다 생각되면 그 때 보
내주세요. 둘이 결혼하고 유학 다녀올게요”
그렇게 100일이 지나고, 성준은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우리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시간만 지나간다면 모든게 물이 흐르듯 다 해결되어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회사에서 진급도 하고, 이제 몇 명의 후배도 받았다. 일이 손에 익고 조금씩 욕심도 내다보니 늘 바빴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니, 술자리도 잦아 졌고. 워크샵이다 뭐다 활동도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페이스북에 그와의 사진의 사진보다 회사생활 속의 사람들과의 사진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오후, 전화가 걸려왔다. ‘08217-033’ 성준이었다. 언제나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오는 그의 전화. 회의중이라 첫 번째 전화는 받지 못하고, 20분쯤 있다 다시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 진급했어. 일병이야. 축하해줘.”
“하하 늠름하네. 축하해”
“회사 생활 재밌어? 나 담달 휴가 나갈꺼 같애”
“오호. 그래그래”
“페이스북 보니깐 워크샵도 다녀왔던데? 래프팅?”
“응. 별거 아니야. 힘들었어. 하하”
“옆에 보니깐 잘생긴 남자들도 많던데 항상 조심해”
“걱정말어. 너보다 잘생긴 애들 없어. 근데 페이스북은 어떻게 봤어?”
“우리도 여기 인터넷 할 수는 곳이 있어. 글은 못남기지만. 볼 순 있어”
“암튼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고, 또 전화해. 나 또 회의야”
“좀 더 통화하면 안돼?”
“안돼. 안돼. 밤에 전화해”
그 날밤 회식이 있던 중에 그가 다시 전화가 왔다. 한창 회식중이라 전화를 제대로 못받다가, 세 번째 그가 전화가 오자 더 이상 전
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테이블 뒤로 전화를 돌려 받았다.
“왜 전화를 안받아”
“미안 나 회식중이야”
“술 많이 마셨어?”
“아냐 아냐 많이 안 마셨어”
거짓말이었다. 술을 많이 못 마시는 건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라 이미 취기가 오르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오던 성준이 그걸 모를리 없었다. 혀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하는 나를 몇 번 더 다그치자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장난기 많던 팀내에 남자 선배가 테이블 옆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야 군인이 무슨 이시간에 전화야. 빨리 이리와 술먹어”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성준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새끼 뭐야. 바꿔”
“뭔 소리야 그냥 회사 선배야. 나 끊는다 이제 회식들어가야 해”
“야 성은채, 성은채”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회식하는 중에 몇 번의 전화가 더 와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깐. 그게 시작이었다. 성준이 내 생활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
“그 남자 누구야?”
“누구? 아 어제? 그냥 선배야”
“그냥 선배가 그렇게 다정해?”
“무슨 소리야. 어제 그냥 옆에서 장난친 것 가지고”
“너 홈피에 들어가봐. 그냥 장난친 거라 말이 나오는지”
“뭐?”
내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니, 사진 한 장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는데, 팀에 남자선배와 벌칙으로 러브샷을 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기억이 없었다. 술을 많이 먹고, 게임을 해서 벌칙으로 한 것 같았는데, 사진 밑으로 수 많은 댓글들이 충분히 성준이 오해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전화로 참 많이도 다투었다. 하루에 몇 번씩 전화가 오는 성준이와 말씨름 하는 것도 지쳐갈 때 즈음, 그가 휴가를 나왔다. 그가 휴가 나오는날 평소보다 더 외모에 신경을 쓴 나는 성준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오해들과 생각들이 어느정도 정리가 될 거라 기대했다.
2011년 11월 25일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추운 가을 날, 평소보다 회사에서 조금 더 일찍 나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다.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기를 포기하고 3층에서 1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짧은 치마를 입어서인지 불편했다. 2층에서 1층으로 달려내려가던 중 발이 꼬였다.
“어! 어! ”
몸이 기우뚱 중심을 잃고 계단아래로 몸이 곤두박질 치려던 찰나 1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던 선배와 몸을 부딪혀 함꼐 1층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선배 죄송해요. 괜찮아요?”
“야 임마 조심해야지. 아 허리야”
일어서서 연신 죄송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 선배는 내 코트에 묻어 있던 먼지를 털어주며 웃으며 이야기 했다.
“야 오늘 남자친구 만나러 간다 그러지 않았어? 아무리 오랜만에 본다고 좋아도 그렇지. 이 꼴로 어떻게 볼래. 하하. 야 스타킹 코
도 다 나갔다.”
선배가 내 오른쪽 다리에 스타킹을 보며 이야기 했다. 선배말대로 내 오른쪽 스타킹 코가 다 나가 버렸다. 까만색 스타킹이라 더 표시가 많이 났다.
“일단 그냥 갈게요. 선배. 내일 봐요”
돌아서며 회사 출입문앞에 서 있는 성준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성준을 향해 손을 흔들려는 찰나 성준이 소리쳤다.
“당신 뭐야? 내 여자한테 손 못떼?”
“성준아 뭔 소리야. 내가 잘못 한건데”
“넌 가만있어. 저기요 당신이 뭔데 내 여자를 감싸안고 다리를 보고 그래. 오호라. 당신이 페이스북에 그 놈인가“
성준은 확실히 남자다워졌다. 그러나 그걸 확인하는 방법이나 장소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곳과 방법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성준의 주먹이 선배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성준아 너가 이러면 내가 회사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져”
“니가 말하는 회사생활이 이거야? 겨우?”
“아니 아까 그 상황은 명백히 오해야. 나를 그렇게 못믿어?”
“난 너를 믿었어. 아까 그 상황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 이제 모든 것이 다 틀렸다 생각했다. 너무 지쳤다. 그와 이렇게 매일 싸우는 지리함도,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이젠 정말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더 망성일 이유가 없었다. 생각한 건 행동으로 옮겨야만 하는 나이니깐,더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자”
“뭐라고?”
“나 너무 힘들어.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오해하는 너를 설득하는 것도, 매일 집착처럼 나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집착이라고? 내가 이런얘기 들으려고 너 회사까지 찾아온 줄 알아?”
“성준아...”
“됐어. 나 간다”
커피숍 문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그를 보며 더 이상 말리거나 제지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던 나였다.
그날 새벽 문자가 한통 왔다.
‘내가 좋아서 널 만났고, 힘든 나의 생활에 너는 내 구세주 였어.
근데 나는 그 구세주를 힘들게 만드는 존재밖에 안되나봐. 미안하다. 안녕‘
바로 통화버튼을 눌러보았지만, 긴 신호후에 넘어가는 음성메세지.
그렇게 몇 번의 통화를 시도하다 나는 깜박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9시 핸드폰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성준의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흐흑...”
“어머님...무슨 일 있어요?”
“흐흑...성준이...성준이가......”
그의 영정사진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앞에 있던 그 아니던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새벽에 술을 마신채로 한강에 뛰어들었어요. 이미 병원에 왔을때는 심장마비로 손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의 사인을 들으며 털썩 주저 앉았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으니깐.
손이 덜덜 떨렸다. 장례식장 안에 있던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던 성준의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들더니 내게 휘둘렀다.
“찰싹”
알 수 없었다. 내 볼이 맞아서 아프다는 느낌보다,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어서 챙피하다는 생각보다,내가 성준의 어머니에게 왜 맞아야 하는 걸까 하는 강한 의문이 생겼다. 당황하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님...”
“나쁜년. 다 너 때문이야. 어제 성준이가 울면서 전화가 왔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렇게 너 잘되게 도와준 사람을 배신해? 버려? 이 나쁜년. 내 아들 잡아먹은 년“
다시 나에게 달려들려는 성준의 어머니를 주변 사람들이 붙잡고 말렸다.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눈빛이 모두 똑같이 이야기 하는 듯 했다.
[나쁜년, 나쁜년, 나쁜년]
너무 어지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눈을 떴을 때 아빠와 언니가 보였다.
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정신이 좀 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니가 나를 꼭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됐어 됐어. 나쁜 꿈 꿨다 생각해. 다 꿈이었어. 다 꿈.”
나는 그렇게 성준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회사에 꾸역꾸역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 내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힘이 들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쁜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그와의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 때는 손을 잡고 다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에 그가 없다. 상대방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와의 추억을 다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하기엔 그와 함께 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와 함께 했던 곳을 홀로 가서 내 손으로 직접그 추억들을 지우고 오는 것만이 이 상황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냥 내버려 두기엔 내 인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이기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성준의 선택이 미워지기도 했다. 2012년 4월, 나는 오사카 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홀로 성준과 내가 함께 했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그 추억을 지우고자 노력했다. 그가 많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가 없는 추억을 혼자 하면서 더 이상 이 세상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해 가고 있었다. 오사카에서 귀국하던 날 몸은 굉장히 피곤했지만, 머리는 맑았다. 이제 좀 더 나 자신을 위해 집중하리라, 회사생활도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막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케리어를 끌며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반대쪽으로 올라오던 누군가를 마주쳤다.
“헉”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채 서 버렸다. 바로 올라오던 누군가는 성준이었다. 죽은 성준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첫댓글 글이 촘촘해서 아주 좋습니다
네 보시기 힘드신건 아닌지...ㅠㅠ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잘읽고 갑니다~~~^^
아픔을가진이들이더이상고통받지않겠죠
은채의 고통이 너무 클것 같아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