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앞에서 구두가 가르쳐 준 것
추석에는 어떤 구두를 신을까.
명절에 입을 옷을 생각하며 신발장을 열어 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비싸게 주고 산 구두가 몇 켤레나 있는데, 나는 왜 늘 신던 신발만 꺼내 신는 것일까.
좋은 가죽에 모양도 멋지고, 살 때는 꽤 마음에 들었던 구두들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평소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처럼 격식을 차려야 할 때만 겨우 꺼내 신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신발장 깊숙이 넣어 둔다.
비싼 구두는 신발장 안에서 세월을 보내고,
값이 덜 나가는 단화만 나를 따라 세상을 돌아다닌다.
이쯤 되면 구두를 산 것이 아니라 신발장에 전시품을 들여놓은 셈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나이에 뭘 아까워할 게 있다고 좋은 구두를 안 신는 거지?'
젊었을 때라면 아껴 신는다고 변명이라도 하겠지만,
이제는 그럴 나이도 지났다. 신발도 신으려고 산 것이지,
신발장에 모셔 두려고 산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오늘은 구두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구두 한 켤레를 꺼내 신었다.
거울 앞에 서니 역시 모양은 좋았다.
발끝도 날렵하고 바지와도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런데 몇 걸음 걸어 보자 익숙한 불편함이 찾아왔다.
몸이 미세하게 앞으로 쏠리고,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구두의 뒷굽 높이는 3.5센티미터였다. 숫자만 보면 그리 높은 굽도 아니었다.
하지만 앞쪽에 비해 뒤꿈치가 높다 보니 내 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비싼 구두를 신지 않았던 것은 아까워서가 아니라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머리만 뒤늦게 이유를 찾아낸 셈이다.
이번에는 평소 즐겨 신던 통굽 단화를 꺼냈다.
뒷굽 높이는 비슷한 3.5센티미터였지만 앞굽도 함께 높아 앞뒤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발바닥이 자연스럽게 놓였고, 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도 덜했다.
고작 0.5센티미터에서 1센티미터 정도의 앞뒤 높이 차이.
그 작은 차이가 신발장 속 구두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었다.
비싼 구두는 신발장에 남고, 편한 단화는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구두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발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는 신발을 고르는 기준이 지금과 달랐다.
모양이 멋있는가, 키가 커 보이는가,
옷과 잘 어울리는가. 발이 편한지는 잠깐 신어 보고 결정했다.
매장에서는 몇 걸음만 걸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막상 오래 신고 다니면 발이 먼저 불평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참았다. 멋을 내려면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발에 발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 돈을 주고 산 신발인데,
어째서 내 발이 신발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가.
주인이 편하자고 산 물건이 오히려 주인을 불편하게 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
문득 사람 사이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겉모습과 말에 마음이 끌리지만,
오래 함께하다 보면 편안한 사람이 있고 괜히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조금 더 맞춰 주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참기도 한다.
마치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발이 적응하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물론 사람을 신발처럼 쉽게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서로 맞춰 가는 일과 한쪽만 계속 불편함을 견디는 일은 다르지 않을까.
나는 오늘 신발 한 켤레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비싼 것이 반드시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며,
멋있어 보이는 것이 반드시 편안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동안 신발장에 모셔 두었던 구두가 아깝지만,
이제 와서 억지로 신고 다닐 생각은 없다.
비싼 돈을 주었다고 발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두값은 이미 지불했지만,
발의 고통까지 할부로 갚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신발을 살 때는 굽의 높이만 보지 않으려 한다.
앞굽과 뒷굽의 차이를 살피고, 무게를 느껴 보고, 매장을 몇 번이고 걸어 볼 생각이다.
아무리 멋진 신발이라도 내 발이 불편하다고 하면 미련 없이 내려놓을 것이다.
예순을 넘기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다니,
참 세상을 헛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동안 불편한 신발도 신어 보고,
비싼 구두도 사 보았기에 이제야 내 발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것 아닌가.
젊었을 때는 신발에 내 발을 맞추려 했다.
이제는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찾으려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에 나를 맞추느라
정작 내가 편안한 삶이 무엇인지 놓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올 추석에는 멋보다 발이 편한 신발을 신어야겠다.
조상님 뵈러 가는 길에 발가락부터 고생시킬 이유는 없지 않은가.
신발장을 닫으며 혼잣말을 했다.
구두야, 미안하다.
네가 비싼 건 알겠는데,
내 발은 가격표를 읽을 줄 모르나 보다.^^
첫댓글 나는 가죽 구두가 단 한개 밖에 없습니다
그것두 오래 되어서 아내가 버리라고 바가지 긁는 구두 입니다
그러나 운동화는 두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신지 않는 등산화 두개
비올때 신는 신발
통풍이 되는 신발
맨발로 신을수 있는 샌달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신발이 꽤 많은 편이지만 가죽 구두는 이제는 잘 안신게 되고
걷기 모임에 갈때나 외출을 나갈때 운동화로 대체해서 신게 됩디다
이제는 가죽 구두는 다들 잘 안신나 봅디다
가죽구두가 안팔려서 제화업계가 울상이랍니당
나도 외출시에 운동화를 신는거는 가죽구두보다 편해서 입니당
게다가 이제는 운동화 질도 전보다 훨씬더 좋아졌습니당
그러니 가죽구두 보다는 운동화를 선호 하게되는거 같습니당
이상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
구두는 한 켤레뿐이어도 용도별 신발은 골고루 갖추셨군요.ㅎㅎ
결국 발이 편한 운동화에 손이 가는 건 저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구두의 체면보다 발의 편안함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충성!^^
값비싼 구두를 신고 폼 내는 일보다,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편안한 신발이 좋지요.
살아 본 인생이 얼마 만큼인데,
살아 온 세월만큼,
밥그릇을 얼마만큼 비웠는데,
사람 보면, 반 이상은 관상쟁이가 되지요.ㅎ
내가 봤을 때, 편안한 사람은 남이 봐도
편안한 인상을 주거던요.
첫 글에 나온 글 보면,
다음 글에도 같은 느낌을 주지요.^^
나이 들어가면 여성들은
여포화 신발을 자주 찾게 됩니다,
여자를 포기한 신발~^^ 일단 편하거던요.
콩꽃님,
살아온 세월만큼 사람을 보는 눈도 조금은 생기는 모양입니다.
신발도 사람도 오래 함께하려면 편안해야겠지요.
여포화라는 말에는 한참 웃었습니다.
남자들도 멋을 포기하면 발이 먼저 좋아하더군요.ㅎㅎ
구두는 편한게 최고지요.
저는 키가 큰편인데도 굽이 있는 구두를
선호 했었지요.
그래야 걸음걸이가 더 예쁘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 필요없고
가볍고 편한게 최고더라고요.
신발이 많아도 선택받지 못한 애들이 많아요.ㅋㅋ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결이 곱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제라님,
예쁜 걸음걸이보다 편한 걸음이 좋아지는 나이인가 봅니다.ㅎㅎ
선택받지 못한 신발들은 조금 서운하겠지만 발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지요.
말씀처럼 사람도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도 구두 안 신은 지가 한참 되었네요.
신발장에는 구두 비스무리하게 생긴
신이 있긴 한데, 거의 안 신고
그저 발 편한 운동화만 줄창
신고 다닙니다.
사람도 부담없이 편한 사람이 좋고
신발도 오래 신어도 편한 신발이
제일입니다.
마음자리님,
결국 오래 신는 신발은 발이 편한 신발이더군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함께 있어도 애써 꾸미거나 긴장할 필요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오래 마음에 남겠지요.^^
아끼면 뭐된다고 가죽구두 오래되면 바닥고무가 부셔져 어느날 신고나갔다가 낭패를 봅니다. 재작년 처조카결혼식을 보러 요코하마갔다가 제구두밑창이 삭아서 큰 낭패를 본적이 있답니다. 친절한 일본 여직원이 5천엔에 즉시 임대해왔지요.
언덕저편님,
아껴 둔 구두가 요코하마에서 말썽을 부렸군요.ㅎㅎ
친절한 직원 덕분에 급한 불은 끄셨지만,
구두도 오래 모셔 두면 탈이 나는 모양입니다.
저도 신발장 속 구두부터 밑창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어디 구두만 아니라....
제 경우에는 옷도 꼭 입어지는것만 찾게되고
혁대도 양발도 이유없이 모양과 관계없이 나도 모르게 찾게되는 것은
제 기준으로는 "편안함으로부터 익숙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윗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일상을 돌아보게 한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우해님,
편안함으로부터 익숙함’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구두뿐 아니라 옷과 혁대, 양말까지 손이 가는 데는 몸이 기억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편안해져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관계가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을 통해 일상을 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