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분교에서
집을 떠나 경주 산내 친구 산방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자고 나니 휴대폰이 잠겨 있어 먹통이었다. 충전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친구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지라 어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오후엔 산방에서 멀지 않는 산골 초등학교에서 대학 동기 모임이 예정되었다. 점심 식후 산방을 정리해 두고 채소꾸러미를 챙겨 길을 나섰다. 친구와 함께 모임 장소로 이동하는 길이다.
이틀 동안 비운 막걸리 빈 통 세 박스를 건천양조장으로 반납했다. 이어 휴대폰대리점으로 가서 가게를 지키는 젊은이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내가 어쩌다가 휴대폰을 잠금 상태로 만들어 놓아 그렇지 아무런 탈 없다고 했다. 나는 이처럼 어디서나 기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당고개 너머 산내면소재지를 지났다. 개울가에는 막바지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모임 장소로 찾아가는 곳은 경상북도와 울산광역시 경계의 백운산 자락에 있는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다. 벽지학교인 그곳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올여름 늦깎이로 교감 자격연수를 끝냈다. 같은 회원인 다른 친구 셋은 올가을 교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간에 중등으로 옮겨온 나와 동행해 가는 친구는 승진을 단념하고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머물고 있다.
울산에 셋이고 창원이 둘이다. 통영과 함양과 대구에 각 한 명이다. 초기엔 자녀들과 같이 만나왔으나 이젠 부부 동행으로 만난다. 나와 동행하는 친구는 집사람을 대동하지 않고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대현마을을 지나 소호천으로 접어들자 물 맑은 계곡 곳곳에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로 넘쳤다. 청도 운문댐으로 유입되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해당하는 계곡이라 오염이 걱정 되었다.
경주 산내 친구 산방을 떠난 지 반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소호분교에 닿았다. 산골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는 수령 삼백 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학교와 인접한 마을에서 매년 정월 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나무였다. 분교에 근무하는 친구는 집사람과 먼저와 교직원 사택에서 맞아주었다. 사택 앞 편백나무와 벚나무 아래는 쉼터가 있어 우리 일행들이 지내기 알맞았다.
대구와 울산의 친구 내외가 오고 창원과 통영의 친구 내외는 늦은 밤에 도착했다. 함양 친구는 사정이 있어 이번 모임엔 빠졌다. 윤번제로 회장과 총무를 맡은 집행부는 1박2일의 행사 살림과 진행을 맡아주었다.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사택 텃밭에서 딴 풋고추와 깻잎이 차려졌다. 은행나무 둥치에는 야외 평상을 밝혀주는 외등이 훤했다. 밤이 늦은 시각이 되자 밤공기가 제법 서늘해졌다.
바깥 학교 운동장 마당귀에서 사택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에 모여든 시차가 달랐던지라 취기가 오른 정도도 각자 달랐다. 모두 한 밤 같이 묵어야하는 처지라 마음 편하게 잔을 기울였다. 나는 친구들보다 먼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새벽녘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섰다. 학교 통학구역 안에 있는 골짜기 마을 끝까지 가보았다. 산중에는 그림 같은 주택들이 들어섰다.
내가 나선 아침산책은 고헌산 산자락에 붙은 작은 암자 미륵종단 약수암까지였다. 하룻밤을 묵었던 학교 사택으로 내려가니 맛깔스런 청국장으로 아침밥이 차려져 연일 혹사시킨 속을 잘 풀었다. 아침 식후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이후 통영과 대구 친구는 바빠 집으로 먼저 복귀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울산 시내로 들어가 태화강대공원으로 갔다. 십리 대밭 길을 걸었다.
삭막한 공업단지가 있는 곳으로만 알았는데 시민들에게 허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광활한 강변 대숲이었다. 대숲만이 아니라 철따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널따란 초화원이 있었다. 코스모스가 막 피어나고 있고 국화는 아직 송이를 맺지 않았다. 한 시간여 산책을 끝내고 강변의 어느 식당에서 대구지리로 점심을 들었다. 울산 친구들은 그들 사는 동네에 남겨두고 창원 친구 내외와 복귀했다. 1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