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 조장해 왕권강화 시도한 肅宗] 재위 46년간 잦은「피의 숙청」臣權세력과의 권력투쟁에 몰두

[이장희]

「北伐論」 등의 허울뿐인 명분을 과감히 깨부셨으나, 民富를 키우는 實事求是의 정치에는 실패

申東埈
1956년 충남 천안 출생. 경기高·서울大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管仲 연구). 일본 東京大 객원연구원, 조선일보·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역임. 現 고려大 강사. 저서 「관중과 제환공」, 「통치학원론」, 「삼국지통치학」, 「조조통치론」, 「중국문명의 기원」, 「논어론」, 「공자의 군자학」 등 20여 권.

宋時烈에 대한 엇갈린 世評

老論의 영수 宋時烈.

  속리산 서쪽 기슭 낙양산 아래에 자리잡은 충북 괴산군 華陽洞(화양동)에 한때 조선조 士大夫(사대부)들의 聖地(성지)가 있었음을 알려 주는 비석이 서 있다. 「萬東廟庭碑(만동묘정비)」가 그것이다.
 
  만동묘는 宋時烈(송시열)의 애제자 權尙夏(권상하)가 스승의 유언을 좇아 전국의 儒林(유림)을 총동원하여 지은 사당으로 明나라 마지막 황제인 神宗(신종)과 毅宗(의종)을 제사지낸 곳이다. 宋時烈을 모신 華陽書院(화양서원)은 화양동 밖에 세워졌다가 肅宗(숙종) 36년(1710)에 만동묘 곁으로 옮겨졌다. 대부분의 祠宇(사우)와 서원이 東向(동향) 또는 南向(남향)인 데 반해 만동묘와 화양서원은 北向(북향)으로 되어 있다. 이는 明나라 황제를 추모하는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만동묘와 화양서원은 조선후기 내내 커다란 논란거리였다. 儒林의 聖地가 되어 많은 特權(특권)을 부여받게 되자 백성들이 자진해 화양서원의 노비가 되어 軍役(군역)을 피한 것은 물론 죄인들까지 이곳으로 피신하여 패거리를 형성했다. 일종의 고지서에 해당하는 소위 「華陽墨牌(화양묵패)」는 약탈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관인이건 백성이건 화양묵패를 받은 자는 논밭이라도 팔아서 바쳐야 했다. 불응할 경우 서원으로 잡혀가 협박을 당하거나 사사로이 형벌을 받았다.
 
  在野 시절 만동묘의 문지기에게 봉변을 당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마자 이곳부터 헐어 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곳은 민폐의 근원이자 僭越(참월)한 臣權세력의 상징이었다.
 
  宋時烈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이나 그의 이름이 거론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조선조의 서원에서 가장 많이 配享(배향)된 인물이다. 그는 44개소의 院祠(원사)에 배향되었다. 그가 모셔진 서원 중 20개소가 賜額(사액)을 받았다. 숫자상으로만 보면 분명 宋時烈은 退溪(퇴계)와 栗谷(율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朱子보다 존숭되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老論에 한한 것이었다. 老論세력은 宋時烈을 「斯文(사문)의 宗師」와 「국가의 大老(대로)」, 「조선의 朱子」 등으로 부르면서 孔子 및 孟子와 같은 반열의 「宋子(송자)」로 추앙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는 쪽은 「黨爭(당쟁)의 화신」, 「골수 사대주의자」 등으로 비난하면서 「宋者(송자)」로 불렀다. 肅宗朝 때 老論세력에 의해 초토화된 南人세력의 본거지인 영남에서는 집에 있는 개 이름을 宋時烈의 이름을 따 아예 「시열이」라고 불렀다.
 
 
  換局정치와 유혈숙청
 

萬東廟庭碑

  왜 이런 극단적인 현상이 빚어진 것일까. 이는 肅宗의 통치행태와 무관치 않았다. 肅宗의 통치는 흔히 「換局政治(환국정치)」로 불린다. 이는 주요 현안이 나타날 때마다 집권정당을 수시로 교체하면서 王旨(왕지)를 관철시키는 통치행태를 의미한다.
 
  肅宗은 재위 46년 동안 모두 네 차례에 걸친 換局을 단행했다. 換局을 단행할 때마다 유혈숙청이 뒤따랐다. 이로 인해 각 朋黨(붕당)세력은 換局 때마다 비록 정권을 잡기는 했으나 언제 유혈숙청의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南人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해 두 번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肅宗의 換局정치는 기본적으로 戚臣(척신)세력을 王權의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인 데서 가능했다. 肅宗은 집권 초기에 자신의 외가와 처가로 구성된 戚臣세력과 손을 잡고 성리학으로 무장한 막강한 臣權세력을 제압했다. 이는 각 朋黨세력이 권력을 장악키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泥田鬪狗(이전투구)를 일삼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北伐論
 
  각 朋黨세력은 왜 이전투구를 일삼다가 화를 자초한 것일까. 孝宗(효종)은 즉위 직후 「삼전도의 치욕」을 씻기 위해 北伐(북벌)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곧 「崇明排淸(숭명배청)」의 진원으로 명망이 높았던 湖西(호서)의 儒賢(유현)을 대거 徵召(징소)했다.
 
  당시 호서지역에는 金長生(김장생)의 문인인 金集(김집)과 宋時烈, 宋浚吉(송준길)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宋時烈은 일찍이 孝宗이 봉림대군으로 있던 시절 사부로 재직한 바 있었다. 이 호서의 유현들은 孝宗의 「北伐」에 찬동해 징소에 기꺼이 응했다.
 
  그러나 宋時烈의 北伐 구상은 孝宗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孝宗은 武力(무력)을 통한 北伐을 주장했으나, 宋時烈은 군주의 修身(수신)을 강조하며 君德(군덕)의 함양을 주문했다. 이는 당시 신료들의 일반적인 입장이기도 했다. 孝宗 10년(1659) 3월11일에 宋時烈의 요청에 따라 孝宗과 宋時烈의 독대가 이뤄졌다.
 
  당시의 상황을 전해 주는 유일한 자료인 「宋子大典(송자대전)」의 「幄對說話(악대설화)」에 따르면 孝宗은 독대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지를 이같이 천명했다.
 
  『오랑캐들은 이미 망할 형세에 있다. 10년 기한으로 군사를 훈련시키고 군장비와 군량을 비축하는 한편, 臣民을 일치단결시키고 군사 10만 명을 양성해 틈을 타 明과 내통하여 기습코자 한다』
 
  孝宗은 이 독대에서 자신의 北伐계획을 진지하게 토로한 셈이나, 淸나라가 망할 형세에 있다는 그의 주장은 완전히 현실을 오판한 것이었다. 宋時烈은 이를 통찰하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宋時烈은 北伐을 위해서는 우선 국내 정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君德을 함양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孝宗은 宋時烈과 독대를 가진 지 불과 두 달 만에 급서하고 말았다. 孝宗의 급서는 臣權세력이 孝宗의 北伐작업을 王權강화의 일환으로 의심한 나머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강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했다.
 
 
  己亥禮訟
 
  宋時烈은 孝宗 사후 낙향한 뒤 顯宗(현종)의 잇단 징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일절 응하지 않은 채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그는 공공연히 顯宗을 두고 「덕이 부족하고,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사람만 등용한다」는 식의 비난을 서슴없이 했다. 이는 宋時烈의 門下(문하)가 사실상 조정의 공론을 좌우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淸나라에서 「조선은 君弱臣强(군약신강)의 나라」라는 말이 널리 유포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顯宗과 宋時烈은 소위 服喪(복상)문제로 인해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당초 孝宗이 죽었을 때 仁祖의 계비인 慈懿大妃(자의대비) 조씨의 상복이 문제가 되었다. 仁祖는 소현세자와 孝宗의 생모인 仁烈王后(인렬왕후) 한씨가 재위 14년(1635)에 사망하자 3년 뒤 14세의 어린 조씨와 재혼했다. 조대비는 孝宗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다. 孝宗이 죽자 35세의 청상과부 조대비의 상복문제를 놓고 西人과 南人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소위 「己亥禮訟(기해예송)」이라고 한다.
 
  본래 적장자가 죽었을 때 그 어미는 아들을 위해 당연히 3년복을 입어야 했다. 만일 孝宗이 仁祖의 王統(왕통)에 이어 적장자인 소현세자가 갖고 있던 嫡統(적통)까지 이어받은 것으로 인정되면 3년복이 타당하다. 그러나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차자의 자격으로 왕통을 이었다면 衆子服(중자복)인 朞年服(기년복: 1년복)을 입는 게 타당하다는 견해가 성립할 수 있다. 宋時烈은 고지식하게도 「儀禮注疏(의례주소)」를 좇아 바로 이런 입장에 서 있었다.
 
  당시 소현세자의 막내아들인 慶安君(경안군) 李石堅(이석견)이 살아 있었다. 孝宗이 왕통만 잇고 적통을 잇지 못했다고 간주할 경우 오히려 왕통까지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예조판서 尹絳(윤강)은 사안이 간단치 않음을 알고 이내 대신들에게 자문했다. 이때 세자가 영의정 鄭太和(정태화)를 비롯해 宋時烈 등에게 문의해 볼 것을 주문했다. 정태화가 宋時烈과 이를 의논하자 宋時烈은 「의례주소」에 나오는 소위 「四種之說(사종지설)」을 좇아 기년복을 주장했다.
 
  「사종지설」은 부모가 기년복을 입는 네 가지 경우를 말한다. 첫째 적자가 병 때문에 보위를 계승하지 못한 경우, 둘째 서손이 뒤를 이었을 경우, 셋째 서자가 뒤를 이었을 경우, 넷째 적손이 뒤를 이었을 경우가 그것이다.
 
  宋時烈은 조대비의 경우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현세자를 「正而不體(정이불체)」, 孝宗을 「體而不正(체이부정)」으로 간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이불체」는 소현세자처럼 正統(정통)의 적장자임에도 繼體(계체)를 하지 못한 경우를 말하다. 「체이부정」은 孝宗과 같이 계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의 적장자가 아닌 경우를 말한다. 정태화가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尤庵(우암),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마시오. 간사한 자들이 장차 이를 가지고 禍(화)를 만들고자 할 것이오』
 
  宋時烈도 곧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태화의 주장을 좇아 「의례주소」 대신 「경국대전」을 인용해 기년복으로 하자는 데 동의했다. 결국 조대비의 상복은 「경국대전」을 좇아 기년복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1년 뒤인 小祥(소상) 직전에 南人의 이론가인 장령 許穆(허목)이 상소를 올려 3년복을 주장하고 나섰다. 허목의 상소가 올라오자 顯宗은 예조에 명해 조대비의 상복문제를 다시 논의케 했다. 이때 부호군 尹善道(윤선도)도 상소를 올려 孝宗의 정통성을 부인한 宋時烈을 인신공격하고 나섰다.
 
  顯宗은 西人의 성화에 못 이겨 尹善道를 함경도 삼수로 유배 보냈으나 내심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다. 당시 禮訟논쟁은 성균관과 지방유생들에게도 확산되었다. 영남유생 柳世哲(유세철) 등 1000여 명이 許穆의 주장을 지지하는 상소를 올리자 洪得雨(홍득우) 등 성균관 유생들이 기호 유생들과 합세해 柳世哲을 공격했다. 전국이 예송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든 것이다. 결국 기해예송은 기년설을 주장한 西人의 승리로 끝났으나 이는 일시적인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甲寅禮訟
 

肅宗시대의 戚臣 金錫胄.

  顯宗 15년(1674) 2월에 孝宗妃(효종비) 仁宣王侯(인선왕후) 장씨가 죽자 조대비의 상복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인선왕후를 長子婦(장자부)로 보아 기년복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衆子婦(중자부)로 보아 9개월의 大功服(대공복)으로 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예조는 장자부의 기년복으로 정했다가 「경국대전」에 따라 다시 중자부의 대공복으로 바꿔 올렸다. 성복한 지 5개월이 지난 뒤 대구 유생 都愼徵(도신징)이 상소를 올려 「기해예송 당시에도 3년복을 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인선왕후를 위해서도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예송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를 소위 「甲寅禮訟(갑인예송)」이라고 한다.
 
  「갑인예송」은 기본적으로 「경국대전」의 이상한 규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국대전」은 아들이 죽었을 경우 어미는 장자와 중자 구별 없이 기년복을 입도록 규정해 놓고도 유독 며느리喪의 경우는 장자부는 기년복, 중자부는 대공복을 입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다. 「경국대전」은 며느리喪의 경우는 장자부와 중자부인지 여부를 엄격히 가리도록 주문한 셈이다.
 
  이로써 기해예송 때 어물쩍 넘어간 孝宗의 적통 승계 여부가 전면에 부상케 되었다. 도신징의 상소를 접한 顯宗은 좌부승지 金錫胄(김석주)에게 「의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의뢰했다. 김석주는 비록 외척이기는 했으나 宋時烈로부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顯宗妃(현종비)인 明聖王后(명성왕후)의 부친인 金佑明(김우명)의 조카로 大同法(대동법)을 둘러싸고 宋時烈과 대립한 김육의 손자였다. 김석주는 宋時烈을 견제할 심산으로 南人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의례주소」에 따르면 「둘째 아들이 後嗣(후사)를 이으면 長子이다」라고 했습니다』
 
  顯宗은 곧 조대비의 복제를 기년복으로 바로잡고 西人의 대신을 내몰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종은 이 일이 있은 지 몇 달 뒤 갑자기 병이 나 이내 죽고 말았다.
 
  결국 「갑인예송」의 마무리는 14세의 어린 세자 肅宗에 의해 이뤄졌다. 원래 肅宗은 顯宗과 달리 과단성이 있는데다가 성정 또한 불과 같았다. 그는 세자 시절부터 宋時烈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肅宗이 태어났을 때 宋時烈이 孝宗의 상중에 잉태된 것을 꺼려 의도적으로 축하행렬에서 빠지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명성왕후가 훗날 아들 肅宗에게 이를 말해 주었다고 한다.
 
 
  甲寅換局으로 南人 집권
 
  이는 후대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짐작되나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肅宗이 즉위하자마자 宋時烈의 문인인 대제학 李端夏(이단하)가 지은 顯宗의 行狀(행장)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 그 증거이다. 당시 행장 중에 「복제를 바르게 정했다」는 글귀가 나오자 肅宗은 宋時烈의 이름을 들어 그가 예를 잘못 이끌었음을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이단하가 할 수 없이 「宋時烈이 所引禮(소인례: 예를 이끌음)했다」고 쓰자 肅宗이 다시 지시했다.
 
  『반드시 宋時烈이 예를 그르쳤다고 말해야 선왕이 처분한 뜻이 명백해질 것이오. 「소인례」의 「所」자를 「誤(오)」자로 고치시오』
 
  이단하가 차마 스승이 「誤引禮(오인례: 예를 잘못 이끌음)」했다고 기록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행장을 짓게 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肅宗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이단하는 「所」자를 「誤」자로 기록한 뒤 곧 상소문을 올려 「엄한 분부에 핍박받아 글자를 고쳤다」고 변명했다. 이를 본 肅宗이 大怒(대로)했다.
 
  『그대는 스승만 알고 군주는 모르는가』
 
  이단하가 이내 파면되자 肅宗의 뜻을 헤아린 南人들이 宋時烈을 제거하기 위해 거듭 상소를 올렸다. 顯宗의 장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南人이 宋時烈과 西人 대신들을 맹공하기 시작했다. 결국 宋時烈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이를 「甲寅換局(갑인환국)」이라고 한다.
 
  14세의 어린 肅宗은 부왕의 장례를 치르는 도중에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정권교체를 단행하는 과단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향후 전개될 무수한 「換局」 사태의 전주곡에 해당했다. 이로써 「仁祖反正(인조반정)」 이후 40년 만에 정권이 西人에서 南人으로 넘어갔다.
 
  이듬해인 肅宗 원년(1675) 정월에 宋時烈은 다시 멀리 德源(덕원)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南人은 숙적인 西人을 타도하자마자 許積(허적)과 權大運(권대운) 등의 「濁南(탁남)」과 尹?(윤휴)와 허목 등의 「淸南(청남)」으로 갈려 서로 격렬히 다투기 시작했다.
 
 
  김석주가 숙종을 배후 조종
 
  당시 淸南의 허목과 윤휴는 정치적 경륜은 없었으나 宋時烈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뛰어난 학문과 식견을 자랑하는 南人의 우상이었다. 허목과 윤휴는 징소의 명을 받고 입조했으나 이내 戚臣인 김석주가 濁南을 배후 조종하고 있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원래 「갑인환국」은 戚臣 김석주의 은밀한 공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김석주는 생전에 늘 肅宗의 등 뒤에 숨어 朋黨세력의 갈등을 이용해 王權을 강화하는 방안을 획책했다. 肅宗이 김석주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갑인환국」은 김석주가 宋時烈을 제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南人의 손을 들어준 것에 불과했다. 허적을 중심으로 한 濁南의 南人정권이 김석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석주와 肅宗은 명분을 중시하는 淸南보다 타협적인 濁南이 王權보호에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肅宗이 濁南을 끼고 돌자 淸南이 濁南을 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연려실기술」에 당시를 풍자한 노래가 실려 있다.
 
  『암까마귀와 수까마귀를 가리기 어렵고, 솥 밑과 가마 밑이 서로를 흉보는 것과 같다네』
 
 
  油幄사건으로 西人 집권
 

인경왕후의 부친 金萬基.

  肅宗 2년(1676) 4월에 종실인 寧平正(영평정) 李泗(이사)가 肅宗을 만난 자리에서 허목과 윤휴를 宋時烈에 빗대어 당쟁을 일삼는 소인배로 비난하는 상소문을 낭독하는 일이 빚어졌다. 이 사실을 안 허목과 윤휴는 이내 만류하는 유생들의 손을 뿌리치고 조정을 떠났다.
 
  당시 최고의 실세는 외척세력인 김석주의 청풍 김씨였다. 김석주의 조부 김육은 孝宗祖 때 산당인 김집과 宋時烈 등을 몰아 낸 바 있다. 김육의 아들 김우명이 顯宗의 장인이 되자 청풍 김씨는 당대 최고의 명문가로 부상했다.
 
  肅宗 역시 김우명의 조카 김석주를 총애했다. 10代의 어린 肅宗은 김석주의 외척세력만이 능히 王權을 지켜줄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김석주는 죽는 순간까지 肅宗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肅宗이 신뢰한 외척세력으로는 이밖에 光城府院君(광성부원군) 金萬基(김만기)의 광산 김씨 세력이 있었다. 김만기는 肅宗의 첫 번째 부인인 仁敬王后(인경왕후)의 부친이었다.
 
  갑인예송에서 김석주가 南人을 지지한 것은 전적으로 宋時烈의 위세를 두려워한 데 따른 것으로 결코 南人의 권력독점을 용인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적의 濁南은 淸南과 결별한 뒤 이를 간과했다.
 
  濁南의 방자한 소행은 肅宗 6년(1680) 3월28일에 벌어진 소위 「油幄(유악)사건」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당시 허적은 그의 조부 許潛(허잠)이 시호를 받고 자신이 杖(궤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소위 延諡宴(연시연)을 베풀었다.
 
  당대의 실세 허적의 연시연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당시 도성에는 「허적의 서자 許堅(허견)이 김석주와 김만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허적이 두 사람을 초청키 위해 허견을 다섯 번씩이나 보냈으나 김석주는 병을 핑계로 거절하면서 김만기에게 대신 참석토록 권했다.
 
  일부러 늦게 도착한 김만기는 자리에 앉자마자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남의 잔을 빼앗아 마시면서 돌림잔이 오면 일부러 받지 않았다. 독살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때 마침 비가 내리자 肅宗이 특별히 궐내에서 쓰던 「기름 먹인 장막과 차일」(유악)을 찾아 허적에게 갖다 주라고 명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허적이 군왕의 허락도 없이 유악을 가져간 뒤였다. 이를 안 肅宗이 大怒했다.
 
  『옛날 韓明澮(한명회)도 감히 이런 짓은 하지 못했다』
 
  肅宗은 곧 내관에게 명해 거지 차림으로 허적의 잔치를 정탐케 했다. 南人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고받은 肅宗은 즉시 궐문을 닫지 말라고 명한 뒤 훈련대장 柳赫然(유혁연)과 김만기에게 소위 牌招(패초)를 보냈다. 이는 나라에 급한 일이 있을 때 寵任(총임)하는 신하에게 패를 보내 급히 찾는 것을 말한다. 허적이 김만기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김만기는 冷然(냉연)히 옷자락을 떨치고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南人들이 대거 몰려나고 西人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 換局이 이뤄졌다. 이를 「庚申換局(경신환국)」이라고 한다.
 
 
  세도정치의 싹, 외척의 발호
 

경신환국 후 영의정이 된 金壽恒.

  경신환국으로 유배 가 있던 金壽恒(김수항)이 석방되어 다시 영의정에 제수되고 鄭知和(정지화)가 좌의정, 南九萬(남구만)이 도승지에 임명되는 등 西人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했다. 이로써 肅宗 초기에 정권을 잡았던 南人은 6년 만에 몰락하고 西人이 再집권하게 되었다.
 
  경신환국은 표면상 「유악」으로 인한 돌발사건처럼 보이나 사실은 肅宗과 김석주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肅宗은 방자한 행위를 일삼는 허적 일당을 제거키 위해 적당한 구실을 찾고 있었다. 「유악 사건」은 그 구실에 불과했을 뿐이다.
 
  경신환국이 단행된 지 7일째인 肅宗 6년(1680) 4월5일 고변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김석주의 사주를 받은 鄭元老(정원로)가 허적의 서자인 허견 등이 인조의 제3자인 麟坪大君(인평대군)의 둘째 아들 福善君(복선군) 李枏(이남)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고 고변했다.
 
  『신의 집에서 복선군과 허견 등이 만난 자리에서 허견이 「주상은 춘추가 젊은데도 자주 편찮고 세자 또한 없으니 불행한 일이 있으면 대감이 보위를 면하려 해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복선군이 대답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허견은 언젠가 부친 허적이 좌의정 閔熙(민희)와 주고받는 말을 엿들은 적이 있었다. 허적이 肅宗의 병약함을 걱정하는 말을 하자 민희가 복선군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이 대화를 엿들은 허견은 은밀히 복선군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나가는 와중에 경솔하게도 왕위 문제를 발설했다. 이를 같이 상의한 적이 있던 정원로가 김석주의 사주를 받고 고변한 것이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자 복선군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허견 역시 능지처참을 당했다. 허적은 역모와 관련된 흔적은 없었으나 연좌율에 따라 내쫓긴 뒤 賜死(사사)되었다.
 
  南人의 비극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宋時烈의 숙적이었던 윤휴 역시 복선군 형제와 돈독하게 지낸 이유 등으로 賜死되었다. 허견의 옥사가 마무리되는 5월까지 종친 세력과 연결된 100여 명의 南人들이 갖가지 죄목으로 처벌되었다. 肅宗은 이 고변사건을 계기로 김만기와 김석주를 保社功臣(보사공신) 일등공신에 책록했다. 戚臣세력에게 날개를 달아 주어 臣權세력을 제압코자 하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경신환국 당시 훈련대장에 김만기, 병조판서 겸 어영대장에 김석주가 임명되었다. 얼마 후 軍權(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석주는 우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원래 우의정은 軍門의 대장직을 겸할 수 없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그는 군왕을 호위하는 어영대장까지 겸한 것이다. 戚臣세력이 이토록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 것은 선조 때 붕당정치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훗날 老論세력의 戚臣이 王權을 좌지우지하는 소위 「勢道政治(세도정치)」의 濫觴(남상)이 되었다.
 
 
  壬戌告變으로 宋時烈 再등장
 

少論을 이끈 박세채(왼쪽)와 윤증(오른쪽).

  이들 외에 주목할 만한 戚臣이 또 한 사람 있었다. 김장생의 손자이자 김만기의 삼촌이 되는 金益勳(김익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김석주와 肅宗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보사공신에 追錄(추록)되었다. 肅宗 초기는 군왕의 신임을 기반으로 한 戚臣들이 좌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戚臣들은 肅宗 8년(1682) 10월에 일련의 허위 고변사건을 통해 南人세력을 완전히 소탕코자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김석주의 간계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김석주는 경신환국으로 몰려난 南人들이 이내 자신에게 보복을 가할까 크게 두려워했다. 이에 그는 僞計(위계)를 써서라도 南人을 박멸코자 했던 것이다.
 
  당시 김석주의 눈에 띈 인물이 바로 金煥(김환)이었다. 그는 본래 西人으로 南人에 붙어 벼슬을 얻은 자였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김석주는 김환에게 자금을 건네주면서 이런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 南人 許璽(허새)와 許瑛(허영)의 집이 용산에 있으니 네가 그 이웃에 머물며 교제를 하되 서로 익숙하게 되면 역모의 기미를 포착하라』
 
  김환은 김석주의 사주에 따라 허새와 허영 등과 사귄 뒤 이들이 인평대군의 셋째 아들 福平君(복평군)을 왕으로 추대할 역모에 가담했다고 고변했다. 곧이어 金重夏(김중하)라는 자가 나타나 「南人 세력이 김석주 등을 제거하려 한다」고 고변했다. 얼마 후 다시 김환의 사주를 받은 全翊戴(전익대)가 김환과 비슷한 내용으로 고변했다.
 
  불과 7일 동안에 일어난 세 차례의 고변은 모두 南人을 일망타진하려는 음모로 똑같은 사건을 각각 다른 사람이 고변한 것이다. 이를 소위 「壬戌告變(임술고변)」이라고 한다.
 
  그러나 鞫聽(국청) 과정에서 무고 사실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南人은 물론 西人의 젊은 士類들 내에서까지 이 戚臣들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평소 김익훈은 軍門의 銀을 유용하고 세금을 착복해 사류들의 빈축을 사고 있었다. 그러나 西人의 대신들로서는 南人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김석주를 몰락시킬 수는 없었다. 肅宗 역시 王權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김석주를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肅宗은 임술고변에 대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사림의 명망이 높은 宋時烈과 朴世采(박세채), 尹拯(윤증)을 끌어들여 이를 해소코자 했다.
 
  당시 宋時烈은 경신환국 후 영중추부사에 임명되어 잠시 관직에 있었으나 곧 칭병하여 낙향한 뒤 肅宗의 출사요구에도 불구하고 재야에 머물러 있었다.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한 젊은 사류들은 원칙론자인 宋時烈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宋時烈의 발언
 
  宋時烈이 출사요구를 받아들여 상경하는 길에 경기도 여주에 이르자 肅宗이 승지 趙持謙(조지겸)을 보내 맞이하게 했다. 젊은 士類를 대표한 조지겸이 宋時烈에게 열변을 토했다.
 
  『김익훈이 김환에게 돈을 주고 허새와 허영을 몰래 꾀어 역모로 죽게 만들었으니 그 자신이 반역하는 것보다 더 나쁩니다』
 
  『그런 자는 죽여도 애석할 게 없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士類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宋時烈은 서울에 도착해 김수항과 김만기 등의 설명을 듣고는 이내 태도를 바꿔 고변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엉뚱하게도 태조 이성계의 시호를 加上(가상)하는 문제 등을 들고 나왔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이었다. 宋時烈은 晝講(주강)의 자리에서 김익훈을 구하기 위한 우회적인 진언을 했다. 「肅宗실록」 9년 1월19일조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李滉(이황)의 문인이었던 趙穆(조목)은 이황이 죽은 뒤에 그의 자손 보기를 마치 동기와 같이 하였습니다. 臣은 김장생에게서 수학했습니다. 근일에 김익훈이 죄를 얻을 것이 매우 중하나 臣이 평소에 경계하지 못하여서 그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신은 실지로 조목의 죄인입니다』
 
  肅宗이 내심 쾌재를 부르며 宋時烈을 위로했다. 宋時烈은 肅宗의 속셈을 읽고 그가 바라던 대답을 해준 셈이다. 이때 宋時烈은 한술 더 떠 김석주에 대해서도 「왕실을 반석에 올린 공이 있다」고 평했다. 宋時烈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젊은 사류들이 경악했다. 이들의 불만은 곧 원망으로 이어져 김익훈과 김환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당시 명분을 중시한 宋時烈로서는 비록 김익훈 가문과 누대에 걸친 인연이 있을지라도 私情(사정)에 얽매여 대의를 망각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박세채와 윤증은 宋時烈과 달리 젊은 士類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 윤증은 宋時烈보다 늦은 肅宗 8년(1682) 말에 비로소 고향을 떠나 상경 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과천에 도착한 뒤 더 이상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박세채가 꼬박 사흘 밤을 새우며 윤증을 설득하자 윤증이 입조의 명분으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西人과 南人 사이의 怨毒(원독)을 풀 수 있는가. 둘째, 戚臣의 정치개입을 막을 수 있는가. 셋째, 자기 편은 등용하고 반대 편은 배척하는 폐단을 시정할 수 있는가. 세 가지 조건 모두 宋時烈과 관련된 것이었다. 박세채가 난색을 표명하자 세 사람의 동시 입조는 무산되었다.
 
 
  西人의 분열
 

충북 괴산에 있는 宋時烈 유적.

  이를 계기로 西人 내에서 젊은 士類와 대신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젊은 士類들은 김익훈과 김석주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宋時烈까지 비판했다. 위기에 몰린 김석주가 전면에 나서 젊은 士類들을 탄핵하기 시작했다.
 
  이에 조지겸 등이 파직되고 고향에 내려간 박세채가 이들을 구원하는 상소를 올리자 김석주는 박세채까지 비난하는 일이 빚어졌다. 바야흐로 西人 역시 南人의 뒤를 이어 宋時烈을 옹호하는 원로 세력과 박세채 및 윤증을 옹호하는 소장 세력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西人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宋時烈의 黨을 「老論」으로, 윤증의 黨을 「少論」으로 불렀다.
 
 
  장희빈의 등장
 
  이때 김석주가 죽고 勳戚(훈척)세력이 급속히 위축되자 오히려 老論과 少論간의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를 가장 불쾌하게 여긴 사람은 肅宗이었다. 換局을 획책하고 있던 南人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이들은 곧 희빈 장씨와 접촉하면서 老論과 少論을 일거에 궤멸시키기 위한 계책을 꾸미기 시작했다.
 
  원래 중인 庶女(서녀) 출신인 희빈 장씨는 모친의 情夫(정부)였던 趙師錫(조사석)과 東平君(동평군) 李杭(이항)의 주선을 통해 나인으로 들어와 있었다. 동평군은 仁祖의 제5자 崇善君(숭선군)의 장남으로 장씨 집안을 보살펴 준 신씨의 아들이었다.
 
  당시 肅宗은 나이 서른이 가까웠으나 후사가 없었다. 첫 번째 부인 인경왕후는 왕자를 낳지 못한 채 죽었다. 肅宗은 계비로 西人 閔維重(민유중)의 딸을 仁顯王后(인현왕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인현왕후도 5년이 넘도록 後嗣를 보지 못했다. 이때 장씨가 肅宗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 챈 대비 명성왕후는 장차 국가의 禍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염려해 장씨를 궁중에서 내쫓았다.
 
  그러나 명성왕후가 죽자 장씨는 다시 인현왕후의 주선으로 궁중에 들어와 肅宗과 재회케 되었다. 인현왕후는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해 장씨의 입궁을 적극 주선하고 나섰던 것이다. 장씨에 대한 肅宗의 총애는 더욱 깊어졌다.
 
  점차 장씨에 대한 肅宗의 極寵(극총)이 사람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西人을 대표해 부교리 李徵命(이징명)이 상소를 올렸다.
 
  『장씨는 역관 張炫(장현)의 친척입니다. 장현은 복선군 등에게 빌붙은 자로 귀양 가게 되었는데 그의 근족을 가까이 두면 앞으로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국가의 화란이 女寵(여총)에서 나왔으니 속히 張女(장녀)를 내쫓아 맑고 밝은 정치를 이루기 바랍니다』
 
  당시 西人들은 老論과 少論을 막론하고 경신환국 때 장현과 같이 피해를 당한 南人들이 再등장해 당시의 가해자들에게 보복할 것을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징명의 파직으로 나타났다.
 
  西人의 간쟁이 계속되자 肅宗은 오히려 『너희들이 방자하기에 君弱臣强이라는 말이 떠돈다』고 일갈하면서 장씨를 내명부 종4품인 淑媛(숙원)에 봉했다. 곧이어 비판의 선봉에 선 박세채가 체직되고 그를 옹호하던 영의정 남구만 등이 圍籬安置(위리안치)되었다. 이들을 구하려던 수많은 대신들이 파직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석주를 통해 「換局정치」의 요체를 터득한 肅宗은 이미 독자적인 換局 구상을 하고 있었다.
 
 
  己巳換局으로 南人 再집권
 
  肅宗 14년(1688) 10월에 그토록 바라던 왕자 ?(윤·경종)이 태어났다. 보위에 오른 지 15년 만에 본 첫아들이었다. 마침 장씨의 친정어미가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8인용 屋轎(옥교)를 타고 궁중에 들어오자, 지평 李益壽(이익수)가 옥교를 불사르고 옥교를 메고 온 종을 잡아다가 치죄했다. 법제에 따르면 당상관의 妻(처)나 子婦(자부)가 아니면 옥교를 탈 수 없었다. 그러나 보고를 받은 肅宗은 분노를 터뜨렸다.
 
  『해산할 때를 당하여 들어와 보도록 허락한 것은 옛 規例(규례)이고, 轎子(교자)를 타는 것도 또 이미 행하던 전례가 있다』
 
  옥교를 불사른 사헌부 禁吏(금리)와 ?隷(조례)가 국문을 당한 뒤 이내 죽고 말았다. 肅宗은 차제에 西人을 몰아내고 ?을 元子(원자)로 정해 國本(국본)을 튼튼히 할 생각이었다. 왕자 ?이 출생한 지 석 달도 안 돼 名號(명호)를 정하고자 하는 전격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조선조 전체를 통틀어 생후 1년도 안 돼 명호를 정한 경우는 이때가 유일했다.
 
  당시 명호를 정하면 후궁의 소생일지라도 元子가 되어 이후 정비가 왕자를 생산할지라도 후궁소생의 원자가 세자로 책봉된다. 내심 장씨의 소생을 후사로 낙점한 肅宗은 급히 서둘렀다.
 
  『國本을 정하지 못하면 민심이 매일 곳이 없다. 지금 새로 태어난 왕자의 명호를 정하려고 하니 만일 선뜻 결단하지 않고 관망코자 하거나 감히 이의를 제기코자 하는 자가 있다면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도록 하라』
 
  영의정 김수항 등이 中宮의 춘추가 지금 한창인 점 등을 들어 몇 년을 기다렸다가 의논하기를 건의했으나 肅宗은 이를 일축했다. 元子의 정호를 종묘사직에 고하는 것으로 모든 일이 5일 만에 끝났다. 이때 宋時烈이 상소를 올려 명호를 정한 게 너무 성급하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대로한 肅宗은 오히려 이를 換局의 결정적인 빌미를 삼았다. 「肅宗실록」 15년 2월 기해조는 肅宗의 처분을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宋時烈은 山林의 영수로서 나라의 형세가 고단하고 약하여 인심이 물결처럼 험난한 때에 감히 宋나라 哲宗(철종)을 끌어들여 원자의 定號(정호)가 너무 이르다고 하였으니 이를 그대로 둘 수 없다. 마땅히 遠竄(원찬)하여야 할 것이나 그래도 儒臣(유신)이니 삭탈관직하고 성문 밖으로 내치도록 하라〉
 
  이를 계기로 거의 1년에 걸쳐 100여 명의 이상의 西人이 처벌되었다. 이들이 물러난 자리에 南人이 들어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이율곡과 성혼의 문묘 출향이 단행되었다. 문묘 배향 7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西人의 존립의미 자체가 부인되고 말았다. 이를 「己巳換局(기사환국)」이라고 한다.
 
  당시 肅宗은 장차 원자의 앞날을 위해 西人을 철저히 제거코자 했다. 이는 「기사환국」이 있은 지 넉 달 만에 인현왕후 민씨가 폐출된 사실이 뒷받침한다. 죄목은 「투기죄」였다. 肅宗은 잔인하게도 민씨의 생일인 4월23일에 폐출을 명했다. 肅宗은 신료들이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도록 폐비 반대 상소를 올린 부응교 朴泰輔(박태보) 등을 국문 끝에 죽였다.
 
  肅宗은 곧이어 宋時烈을 제주도에 위리안치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南人들은 宋時烈의 위리안치 처분이 성에 차지 않았다. 대간과 삼사에서는 연일 계속해 宋時烈을 극형에 처하라고 요청하자 肅宗은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이같이 하명했다.
 
  『宋時烈을 賜死하되 都事(도사)가 약을 가지고 가다가 그를 만나는 즉시 賜死하라』
 
  이는 山林의 영수에 대한 예가 아니었다. 결국 宋時烈은 제주도를 떠나 정읍에 이르러 賜死되었다. 宋時烈은 賜死 직전 애제자 權尙夏(권상하)의 손을 잡고 明나라 신종과 의종을 제사지내기 위한 萬東廟의 건립을 신신당부했다. 그의 문인들이 모두 朱子(주자)의 예를 좇아 白布巾(백포건)에 首?(수질)을 두르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은 1000여 명에 달했다.
 
 
  南人의 몰락
 

장희빈 축출공작을 수행한 金春澤.

  이로써 西人은 老論과 少論을 막론하고 깊이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기사환국이 일어난 지 5년 뒤인 肅宗 20년(1694) 3월에 문득 老論 명문가의 자제들이 폐비 민씨의 복위를 도모한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만기의 적장손 金春澤(김춘택) 등이 은밀히 자금을 모아 궁중의 환관과 궁녀들과 내통한 뒤 폐비 민씨의 복위를 꾀한 일이 일당인 咸以完(함이완)의 고발로 그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공작에 능한 김춘택은 換局을 도모키 위해서는 민씨의 복위가 절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민씨를 대신해 왕비가 된 장씨의 친오라비인 張希載(장희재)의 처와 간통해 南人의 동정을 파악하는 방법을 동원키도 했다. 그러던 중 함이완의 고발로 체포되고 만 것이다.
 
  영의정 권대운을 위시한 南人들은 차제에 西人을 모두 도륙하고자 했다. 그러나 西人이 일망타진되기 일보 직전에 상황을 역전시킨 사건이 빚어졌다. 김춘택 사건이 일어난 지 6일 뒤에 西人 출신 幼學(유학) 金寅(김인)이 이같이 逆고변을 하고 나섰다.
 
  『장희재가 崔淑媛(최숙원)의 인척인 김해성에게 뇌물을 주어 최숙원의 숙모인 그의 장모로 하여금 최숙원의 생일날에 독이 든 음식을 가지고 입궐해 그녀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음모에 가담한 자는 우의정 閔?(민암)과 병조판서 睦昌明(목창명) 등입니다』
 
  이는 西人들이 던진 최후의 승부수였다. 당시 肅宗은 무수리 출신의 숙원 최씨를 총애하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영조가 된 延?君(연잉군)을 낳은 여인이다. 김인의 고변은 최씨의 임신을 계기로 肅宗의 총애가 최씨에게 옮겨간 것을 이용해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키려는 최후의 수단으로 나온 것이었다. 당시 장씨는 성총을 입은 최씨가 혹여 자신의 전례를 좇아 중전의 자리를 차지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 나머지 최씨를 매우 혹독하게 다뤘다. 최씨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고초를 겪으면서 낙태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자 장씨와 南人의 음모를 세세히 일러바쳤다.
 
  장씨 및 南人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던 肅宗은 내심 민비를 폐위시킨 일을 크게 후회하고 있던 상황에서 김인의 독살 고변에 이어 최씨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듣고 大怒했다. 그의 결단은 전광석화 같았다.
 
 
  갑술환국
 
  그는 김인의 逆고변이 있은 바로 다음날인 4월1일 밤 2경에 비망기를 내려 김춘택을 국문하고 있던 南人들을 일거에 축출했다. 이를 계기로 西人들이 다시 5년 만에 권력을 되찾게 되었다. 이를 「甲戌換局(갑술환국)」이라고 한다.
 
  갑술환국으로 영의정에 남구만, 훈련대장 申汝哲(신여철), 병조판서에 徐文重(서문중) 등 西人들이 대거 기용되었다. 宋時烈 역시 복관되고 기사환국으로 위판이 땅에 묻혔던 이율곡과 성혼도 다시 문묘에 배향되었다. 모든 일이 肅宗의 지휘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갑술환국 당시 南人들은 사실상 초토화되었다. 기사환국 때 처벌받은 西人보다 훨씬 많은 수의 南人이 죽거나 축출되었다. 이로써 영남의 東人세력은 北人이 광해군 때 궤멸된 데 이어 갑술환국으로 南人마저 궤멸됨으로써 정파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장희빈의 죽음
 

장희빈의 賜死를 막으려 했던 영의정 남구만.

  갑술환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세자였다. 세자의 지위가 극도로 불안해지자 남구만과 尹趾完(윤지완) 등 少論세력들이 南人을 대신해 장씨 남매와 세자의 보호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에 장씨 남매는 老論의 무차별 공격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시 少論은 장씨와 손을 잡음으로써 사실상 최숙원을 지지하는 老論세력과 한판 승부를 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계기로 정국은 老論과 少論의 정면대결 구도로 치달았다. 당시 肅宗의 마음은 최씨에게 가 있었다. 이에 초조해진 장씨 일족은 西人 타도를 위한 음모를 꾸몄다. 肅宗 22년(1696) 4월에 장희재의 부친 묘에서 흉물이 발견되었다. 나무인형에 세자의 생년 간지가 적혀 있고 무덤에 木刀(목도)가 꽂혀 있었다. 무덤 옆에는 老論인 병조판서 신여철의 家奴(가노) 호패가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국청을 열고 보니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이를 신고한 장희재의 가노 業同(업동)을 문초한 결과 이내 전모가 드러났다. 이에 노한 肅宗은 이후 장씨의 거처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 역시 분한 마음에 肅宗과 왕비 민씨에게 행하는 후궁의 예를 한 번도 행하지 않았다.
 
  어설픈 세자 詛壓(저압) 사건이 있은 지 5년 후인 肅宗 27년(1701) 8월에 왕비 민씨가 오랜 병고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 날은 肅宗의 생일이었다. 당시 민비는 1년 반 동안 원인 모를 병고에 시달리다 죽었다.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당시 장씨는 창경궁 就善堂(취선당) 서쪽에 신당을 설치해 놓고 다시 중전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빌었다. 그녀는 누가 물으면 세자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식으로 말을 둘러댔다. 이 사실이 마침내 숙원 최씨의 고자질로 肅宗의 귀에 들어갔다. 「肅宗실록」 27년 9월23일조의 기록이 그 증거이다.
 
  『최숙빈이 평소 인현왕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하여 통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巫蠱(무고)사건」을 고하였다』
 
  대로한 肅宗이 일체의 생일축하 행사를 정지시킨 뒤 희빈 장씨의 품속까지 뒤져 민비를 저주한 단서를 찾아내게 했다. 곧이어 肅宗은 장희재의 처형과 장씨의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를 내렸다.
 
  한밤중에 비망기가 내려오자 少論 대신들이 대경실색해 장씨에게 은혜를 베풀 것을 간청했다. 낙향한 윤증까지 상소를 올려 장씨의 賜死만이라도 막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肅宗은 장씨를 賜死한 뒤 남구만 등 少論 대신들을 대거 파직시켰다.
 
  장씨의 자진으로 세자 보호 문제가 초미의 현안으로 부상하자 세자를 탐탁지 않게 여긴 老論과 세자 보호를 지상과제로 삼은 少論 간의 싸움이 노골화했다. 肅宗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일면 당쟁을 부추기면서 이를 조절하는 등의 방식으로 15년가량 정국을 이끌었다. 당시 老論과 少論의 신료들은 肅宗의 본심을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丁酉獨對
 

肅宗과 丁酉獨對를 했던 이이명.

  肅宗 42년(1716)에 들어와 宋時烈과 윤증을 지지하는 老論과 少論 간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자 肅宗은 짐짓 少論의 손을 들어주어 老論 인사를 대거 몰아냈다가 이내 少論을 몰아내고 老論을 기용했다. 이를 흔히 「丙申處分(병신처분)」이라고 한다. 肅宗은 갑술換局 이후 20년 넘게 老論과 少論의 대립을 주시해 오다가 「병신처분」을 계기로 老論 지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무슨 까닭일까.
 
  원래 갑술환국 당시만 해도 肅宗은 세자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희빈 장씨가 賜死된 후 肅宗은 세자를 점차 멀리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肅宗은 세자가 조금이라도 뜻에 거스르는 모습을 보이면 「희빈의 소생이라 별 수 없구나」라는 식으로 꾸짖기까지 했다. 이는 갑술換局이 일어나던 해에 숙빈 최씨가 연잉군을 생산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5년 후에는 후궁 박씨가 延齡君(연령군)을 낳았다. 시간이 갈수록 肅宗의 마음은 연잉군과 연령군에게 기울어졌다. 세자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늘 부왕의 눈치만 보았다. 그런 모습이 肅宗은 더욱 못마땅했다.
 
  당시 肅宗은 세자의 교체를 진지하게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연잉군을 지지하는 老論의 손을 들어준 「병신처분」이 그 증거이다. 마침내 肅宗은 재위 43년(1717) 7월에 老論의 거두인 좌의정 李命(이이명)에게 단독 입시를 명했다. 동석을 요구한 승지 등이 한참 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이이명과의 독대가 끝난 뒤였다. 이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이를 소위 「丁酉獨對(정유독대)」라고 한다. 肅宗은 이이명과 독대가 끝난 직후 7명의 老論 원로대신을 불러 모은 뒤 이같이 천명했다.
 
  『지금 나의 안질이 오래도록 심해 왼쪽 눈은 물체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 눈도 장차 장님이 될 지경이다. 세자에게 청정하게 하는 일이 나의 뜻이다. 좌상을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世子의 대리청정
 
  이때 老論 신하들은 뜻밖에도 세자가 이미 성장했고 총명하므로 아무 염려가 없다며 정성껏 보좌할 것을 다짐하고 나섰다. 이는 군왕의 대리청정 언급이 나오면 으레 강력히 철회를 요구하는 관행과 동떨어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少論은 혹여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후 해를 끼치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당시 급보를 전해받은 少論의 영수 영중추부사 윤지완은 병상에서 일어나 82세의 노구를 이끌고 입궐채비를 서둘렀다. 그는 가족과 작별을 고한 뒤 관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肅宗은 윤지완의 강력한 만류를 외면한 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했다. 이에 「정유독대」 한 달 뒤부터 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되었다.
 
  肅宗이 볼 때 세자를 교체키 위해서는 먼저 少論의 반대를 미리 제압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老論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줄 필요가 있었다. 老論이 대리청정의 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유독대」는 바로 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세자의 대리청정은 세자교체를 위한 덫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리청정을 맡은 세자는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세자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세자가 「정유독대」 후 肅宗이 죽을 때까지 3년 동안 무사히 대리청정을 하다가 肅宗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가 바로 경종이다.
 
  그러나 경종은 즉위 후에도 시종 老論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少論의 趙泰耉(조태구)가 우의정에 임명되기는 했으나 큰 힘이 되지 못했다. 少論계 유생 趙重遇(조중우)가 희빈 장씨의 추숭 문제를 거론했을 때에도 경종은 이를 지지할 수 없었다. 老論의 위세에 눌려 경종은 즉위 1년 만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世弟(세제)로 삼은 뒤 대리청정을 위임했다가 재위 4년 만에 급서했다. 항간에는 독살설이 파다하게 떠돌았다.
 
 
  처자식까지 王權수호 도구로 이용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김석주로부터 공작정치를 터득한 肅宗이 후기에 들어와 臣權세력 간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사후에 연잉군을 보위에 올려놓는 데까지 성공한 것은 「換局정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본래 肅宗의 「換局정치」는 기본적으로 「君弱臣强」의 틀이 고착된 상황에서 나름대로 王權을 보위하기 위한 自衛(자위)의 성격이 짙었다. 그의 즉위 당시 宋時烈을 중심으로 한 西人세력은 군왕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肅宗이 김석주를 비롯한 戚臣세력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肅宗이 성년이 된 이후에도 줄곧 「換局정치」를 구사한 것은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당쟁을 유발시켜 王權을 강화코자 한 의도 자체가 불순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비록 「君弱臣强」의 붕당정치의 구도하에서 王權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臣權세력 간의 갈등을 조장해 수많은 신하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결코 正道(정도)가 아니다.
 
  당대의 유신인 宋時烈과 윤휴, 윤증 모두 소모적인 「예송」 문제로 禍를 자초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엄밀히 따지면 肅宗이 구사한 「換局정치」의 덫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韓非子(한비자)가 난세의 통치방략으로 제시한 소위 「御臣術(어신술)」의 관점에서 볼지라도 하책에 속한다.
 
  둘째, 처자식까지 王權보호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사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모두 肅宗이 구사한 「換局정치」의 희생양에 불과했다. 가장 비참한 인물은 경종이었다. 그는 생모가 賜死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가까스로 보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끝내 陰?(음위)와 老論의 위압으로 인해 독살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횡사하고 말았다. 이 또한 肅宗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 肅宗은 응당 각 붕당이 내세운 「尊周大義(존주대의)」의 허울뿐인 명분론을 과감히 깨부수고 實事求是(실사구시)의 자세로 급변하는 대륙정세에 발맞춰 국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재위 46년 동안 시종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臣權세력과의 권력투쟁에 몰두했다. 그 결과 「換局정치」는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君弱臣强」을 더욱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