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지도자들도 아주 기본적인 신앙의 문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토로하기가 힘들다. 자신의 위치에서 이런 문제에 빠져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2가지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삶에서의 의욕상실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식욕도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무기력이란 심연에 빠진다. 대학생 때였던가 보다. 신앙생활 한참 잘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무진 애를 썼는데, 멘토도 없었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불쌍했다. 그러나 용케도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며 헤어날 수 있었다.
1) 나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므로 사는 것이 아니라
2) 하나님이 살으라 하시니까 사는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산다. 사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니까.
3) 하나님이 이유다. 하나님 밖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사는 이유를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두번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이다. 어느날 이것이 몰려왔다. 여러 번 경험한 것인데, 그 중에 지금도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것은 군대에서의 일이다. 지피(G.P)에 들어가기 몇일 전의 일인데, 당시에는 거기에 들어가서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려는데,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야 임마,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기도하느냐?'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는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도대체 존재하시는지 알 수 없어졌다. 그러니 기도가 되지 않았다. 곧 지피에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할 수 없어지니, 황망했다. 그래서 마음을 집중하여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다행히 응급조치로서 이런 계산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 것이 더 유리하냐 하는 계산이었다.
1) 하나님은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다.
2) 존재한다고 믿고 살든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든지 둘 중 하나다. 각 경우를 생각했다.
3)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면 잘 사는 것이다.
4)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존재한다고 믿고 살면 나중에 죽고 나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인데, 그때 무슨 생각이 들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마음대로 실컷 살아보는건대 하는 후회가 생기는 것이 최악의 경우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약간 손해보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안 계시더라도 계신다고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좋은 삶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이 존재하실 경우, 존재하신다고 믿고 살면 대단히 잘 사는 것이다. 매우 다행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에 빠질 것이다. 하나님 없이 무도하게 살았는데, 이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으니까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살았던 것에 대한 형벌을 피할 수 없다.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6) 그러므로 내가 뽑은 계산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고 사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존재하심을 믿기로 선택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그 믿음에 상응하는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즉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는 양심적으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확인한 후에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믿음보다 증거가 우선되지 않는다.
3)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하나님의 예정이 무조건적 선택인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무조건적 선택이다.
4)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로 선택하든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로 선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이 선택을 위한 전제가 되는 증거는 없다. 무조건적 선택이다.
5)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로 선택하면 후에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된다. 즉 증거는 뒤에 따라온다.
6) 성경이 바로 그것을 증거한다. 출 3:12,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이런 가상의 대화를 상상할 수 있다. 모세가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는 동족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어 출애굽하게 하였노라 하면, 히브리 노예들은 틀림없이 질문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보냈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을 보고 믿겠느냐? 믿을 증거를 달라. 그 때 하나님이주실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장차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곳인데, 그것이 증거다. 즉 증거는 믿기 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 후에 주어진다. 증거는 믿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나중에 증거한다.
믿음은 선택이며, 증거보다 우선한다. 믿기로 선택하면 나중에 믿을만한 증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의 예정론도 이해된다. 하나님이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는 것도 무조건적인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도 무조건적인 선택의 문제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였다. 믿으면 증거를 본다. 믿는 것이 우선이다. 즉,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하면 믿을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믿음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정론적 신앙이고, 개혁교회, 장로교회의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살라 하시므로 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으면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