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 찾아본 곳
평생을 도회지에서 살아온 터라 어쩌다 시골 환경을 접하면 반가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드물게나마 인적 드문 산골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지는 경험을 한 일은 별도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언젠가부터 시골을 찾을 일이 생겼습니다.10년 전에 막내 동생이 충북 괴산군으로 이사했습니다. 작년에는 어머니가 누님과 함께 동생이 사는 동네에 새 집을 지어 이사했습니다. 괴산읍에서는 거리가 먼 청천면의 한 마을입니다. 자연스레 서울에서 몇 차례 오가게 되었습니다.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감성 같은 걸 느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낯선 곳을 찾는 이의 작은 호기심이 작동됩니다. 수목원 정도는 둘러보았지만 잘 알려진 쌍계계곡이나 화양구곡 같은 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곳에만 있는 소박한 장소가 마음을 끌었습니다.괴산읍을 거쳐 청천면으로 향하는 도중에 소금문화관이라는 표지가 붙은 건물이 있습니다. 괴산이 소금 산지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 그냥 지나치다가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문광저수지의 한쪽 끝자락에 있는 곳입니다. 문광은 면의 이름입니다. 전체 터는 꽤 넓습니다. 문화관 표지가 있는 건물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이를 만났습니다. 코로나 19 탓에 휴관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소금랜드 전경. 왼쪽 사진의 건물은 소금문화원이고 오른쪽의 낮은 회색 지붕이 육지염전. 오른쪽 사진은 육지 염전의 내부.
찾아오는 이 없으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괴산에 웬 소금문화관이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괴산의 대표 산물은 고추, 절임배추, 옥수수, 사과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중 절임배추는 소득원은 되지만 절이고 난 소금물은 아무 데나 버리면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곳 농업기술센터에서 실험을 거쳐 소금물 처리장을 만들었습니다. 괴산의 소금물은 이곳에 다 모읍니다. 그 소금물로 이곳에 만든 ‘육지 염전’에서 다시 소금을 추출합니다. 그렇게 만든 소금은 산업용으로 사용합니다.육지 염전은 문화관 옆에 따로 있습니다. 육지 염전 뒤로는 땅을 깊이 파 만들었다는 소금물 저장고가 있습니다. 그곳 전체의 이름은 소금랜드라고 한답니다. 문화관은 회수한 소금물의 재활용과는 직접적 관계는 없는 곳이고 글자 그대로 소금문화관입니다. 2층은 소금에 관한 안내를 겸한 전시장이고 1층은 천일염을 활용하여 몇 가지 체험을 하는 곳입니다.체험 활동장 한 공간에는 맷돌이 놓인 탁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구워낸 소금을 맷돌로 갈아낸다고 합니다. 안내해준 이의 말로는 이 소금으로 음식을 한번 해 보니 너무 맛있어서 다른 소금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여러 가지 차와 장아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 익모초차의 맛을 보았습니다. 소금을 이용해서 쪄낸 익모초로 찻물을 우려낸 것입니다. 커피에 익숙해진 내 입에 보통의 차는 밍밍하다고 느껴지는데 이 차는 마실 만했습니다. 소금 맛은 나지 않는데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장아찌는 간장과 소금을 적당히 배합해서 만들어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합니다.문화관을 나와 육지 염전도 살펴보았습니다. 지붕이 있어 바닷가 염전과 달라 보이긴 하지만 염전의 모양은 그대로입니다. 한쪽은 의자를 설치해 체험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수차도 있습니다.내륙 한 곳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는 일이 신기하였습니다. 나오는 길에 소금을 사러 왔다는 나이 지긋한 일가족을 만났습니다.
처음 괴산에 갔을 때 읍에 있는 홍범식 고택을 둘러보았습니다. 홍범식은 금산 군수이던 시절 한일합방이 되자 자결한 분입니다. 이 집은 그가 자란 곳입니다. 그의 아들로서 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집은 18세기에 지어졌습니다.함께 이 집에 간 어머니는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서도 집안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대문과 중문을 지나 사랑채를 둘러보고 다시 안채로 가서는 부엌까지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북에 두고 온 집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였습니다.
홍범식 고택. 왼쪽이 사랑채이고 그 오른쪽 뒤편이 안채. 맨 오른쪽이 중문
이제는 세월이 지나 옛 기억이 상당히 흐릴 텐데 광의 모양과 구조, 문 형태가 어떻게 다르다고 찬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숲속작은책방’은 칠성면에 있습니다. 산속의 작은 마을에 있습니다. 허리 높이의 정문 안쪽에 소박하게 꾸민 뜰과 평범한 가옥이 있는데 1층이 책방이고 2층이 살림집 공간입니다. 신은 벗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거실에 해당하는 부분이 책 전시 공간이고 주방에 해당하는 곳에 탁자와 계산대가 있습니다. 부부가 운영하는데, 작은 공간에 나름대로 다양한 책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한정된 공간이니 주인의 안목으로 선택한 책들일 터입니다.주인에게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물었더니 지역 주민도 오고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와서 운영은 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두 번 찾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자녀 둘을 데리고 와서 책을 골라 주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 가족을 두 차례 본 듯하기도 합니다.책값을 치르면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큰 서점에서는 발견 못하거나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책을 고르게 되네요.” 작은 책방의 매력입니다. 여행하다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쉽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북콘서트를 비롯한 행사가 있다는 안내장을 받았는데 때에 맞추어 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소금문화관에서 안내해 준 이에게도 이 책방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인과 막걸리라도 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제멋이 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언제 여유를 가지고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 책방 가까이에 목각 공예를 하는 이가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다음 기회에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숲속작은책방의 외부와 내부
작은책방에서 수백 미터 되는 거리에 산막이옛길이란 곳이 있습니다. 차에서 내려 몇 십 미터 정도 오르막길을 걸으니 1957년에 만들었다는 괴산호의 물빛이 숲에 가려 약간만 보였습니다. 안내도를 보니 물 건너편에 산막이마을이 있는데, 산막이라는 이름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지역이어서 붙은 것이랍니다.산막이옛길이며 충청도양반길, 그리고 등산로가 괴산호를 둘러싸고 이어져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오르막길까지에는 식당과 점포가 몇 개 있지만, 인적 드물어 보이는 산속 길을 걸으면 세상 잡념을 잠시 잊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 길들을 일주하는 일은 숙제로 남겨 두었습니다.괴산을 방문한 횟수가 꽤 되지만 둘러본 곳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풍기는 시골의 냄새가 있고 괴산만의 공간이 있어 좋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괴산의 작은 명소를 더 찾아보려 합니다.
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