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절 가나안 국경과 인접한 요단 동편에 이스라엘이 자리 잡자, 모압 왕 발락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전까지 모압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의 땅을 빼앗던 시혼이었는데, 광야에서 떠돌던 이집트 노예들이 별안간 등장하여 그 시혼을 제압하고 모압 평지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발락은 미디안과 동맹을 맺어 군사적 연합으로가 아닌,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기를 꾀합니다. 이스라엘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꾀를 모으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개입을 알면서도 내 안위를 위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5,6절 고대세계에서 ‘저주’는 전쟁 무기와 다름없었고, 전문적으로 저주를 선언하는 예언자들이 전쟁을 위해 고용되었습니다. 발람은 저주에 특화된 예언자로 요단 동편에서 유명했을 것입니다. 발락은 “그대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 안다”며 발람의 저주에 기대를 걸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할 것이다”(창 12:3)라는 하나님의 불변하는 약속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있습니다.
7,8,15-19절 발람이 참 예언자라면, ‘저주’라는 요구와 ‘복채’(직역하면 ‘점술’)라는 말을 듣자마자 단칼에 거절하고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을 내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짓 예언자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합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순종의 길을 알면서, ‘더 기도해보고’라고 핑계를 대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9-13,20절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가 “일어나 함께 가라”로 진전된 것 같아 보이지만, 발락과 발람의 뜻은 한 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악한 계획을 차단하신 것이고, 그 악한 시도가 중단되지 않자 역으로 이용하시기 위해 여지를 주시는 것뿐입니다. 길이 열렸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멈추라 하실 때 멈추는 게 지혜입니다.
첫댓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신 하나님!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모습 속에는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는 위선적인 모습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위선을 겸손히 엎드려 고백하오니,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모든 것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 하루를 신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