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 충북 보은에서는 천주교 사제가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폭행 당사자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사제로, 청주교구는 사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지난 23일 해당 사제를 ‘정직’ 처리 했습니다. 다음은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간사인 김은순 씨가 그동안의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것입니다. 본인의 동의를 얻어 편지글 전문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천주교 청주교구 사제가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이 찍힌 CCTV화면 (사진출처=충북인뉴스 갈무리)
2017. 4. 13 박진성 신부, 보은 폭행사건을 처리하는 청주교구를 지켜보며 느낀 소회
그동안 정평위(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간사라고 폭행사건과 관련해 불만과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약을 잘 먹지 않는 제가 두통약을 먹어봤지만 며칠간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교구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명박산성 보다 더 높은 철옹성 같이 단단한 교회의 권력과 힘, 미성숙한 행동에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만취한 한 사제가 저지른 행동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던 살인적인 폭력이었습니다. 신분이 사제라서 지역사회에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반인도 인사 검증과정 중에 물의를 일으킨 일이 발각되면 머리 숙여 사과할 줄 압니다.
교구는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는커녕 폭력을 대하는 죄의식조차 없어 보입니다. 의로운 사제들이 교구청을 통해 사안이 중대한 만큼 지역신문에 사과문을 내야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디 들어주었는지요? 어떤 사제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말까지 합니다. 옹호할 걸 옹호해야지 정당방위 폭력이 아니었잖습니까? 예수님은 철저하게 비폭력 평화주의자였습니다.
그동안 지켜보다가 교회모습이 이건 아니지 싶어 정평위 담당신부님께 주교님 들으시도록 교구청 가서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하니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구절절 이유를 말씀드리니까 그럼 같이 일 못한다고 간사직을 내려놔야 한다고 해서 내려놓고, 교회가 사과를 안 하니까 교회의 일원인 우리들이 나서서 사과와 입장표명이 담긴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자회견 보다, 일단 순서가 ‘정평위에서 공식적인 면담요청을 사무처로 해보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듣고 면담요청을 했더니 ‘정평위 담당신부님께 말씀드렸냐’고 해서 말씀드렸다고 하니까 담당신부님께 전화해보고 전화를 주신다고 한 사무처장 신부님은 제게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다른 신부님을 통해 당신이 지금 힘드니 당신 입장을 알아달라는, 결국 제가 하려는 일 모두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전화였습니다. 양심에 따라 직접 행동에 나서기보다 교회 입장을 고려해 우리의 소리를 먼저 전달하려는 소통의 창구마저 교회는 외면했습니다.
일반인도 폭행시비가 있으면 법대로 처리되어 경중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합의하고는 다릅니다. 합의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 폭력성에 비추어 단순 폭행죄가 아니라 상해죄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아마도 교회의 힘(?) 경찰의 힘(?)이 작용했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되는데 세상과 다를 것 없이 힘을 이용해 처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제 신분이 영적지도자이기에 자신이 한 행동에 떳떳이 처벌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청주교구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님은 오랫동안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장으로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생명 지킴이인가요? 도무지 이해불가입니다.
세월호 3년을 지켜본 우리들에게 세월호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생명의 소중함, 인권의 귀중함, 진실의 요구, 그런데 교회는 세월호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요? 이 사건을 보면서 교회는 머나먼 나라의 교회로 사는 것이 아닌가? 실망스럽습니다.
교구에 사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교님 한분 때문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사제단 전체가 사제직 못 하겠다고 사표를 내겠다고 하면 안 되겠는지요? 그냥 답답한 마음에 이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평신도인 내가 교회에 유언을 남기고 죽으면 그땐 주교님께서 회개하시려나? 이런 방정맞은 생각도 해봤습니다.
박진성 신부의 거짓증언 때문에 피해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세상에 공개한 CCTV는 하느님의 눈이었음을 두려워하십시오. 이제 시선은 교회로 향하고 있음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새 시대도 열리고 대통령마저 명박산성 허물고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데, 교회는 언제쯤 불통의 벽이 허물릴까요? 최소한의 들음도 거부하는 교회, 교회 안에 하느님은 부재중이십니다. 오직 사제의 권력과 힘만 있을 뿐.
그동안 아무 힘도 없는 제게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정평위 내려놓고 제 내면 둘러보며 주체적인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2017년 5월 31일 김 프란치스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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