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49년 겨울 / 김행숙
하루 종일 줄을 섰는데 빈손으로 돌아왔어
집이 얼음 장 같아
-최진영 <쓰게 될 것>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자만 우리는 새해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기다린다. 옥수수가루, 깨끗한 물, 아스피린, 건전지, 엄
마..... 같은 것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어젯밤 나는 꿈속에서도 기다렸다. 병원 대
기줄은 담장을 두르고 골목으로 이어졌다. 그 골목 끝에서 노인이 걸어나와 내게 말
했다. 얘야, 너는 줄을 잘못 섰구나, 여기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구호품은 죽음이란다.
엄마는 집에 가서 기다리렴.
30년 전에는 다른 나라,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구나. 하루 종일 줄을 서서 먹을 것
을 구하고 마실 것을 구하는, 너랑 닮은 꼬마 이야기, 훔칠 물건이 없어서 좀도둑도 되
지 못하는 , 작아지는 너의 뒷모습, 서울 2049년 겨울에 다른 나라, 먼 나라는 없어, 날
씨와 햇빛과 전염병과 바닷물과 산불을 막을 수 있는 군대는 없어, 모든 것은 이어져 있
어, 노인들과 과거를 그리워 한다. 그리워할 것을 가졌다고 우쭐대는 것 같다. 꿈에서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과거에는 널려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는 버리는 음식이 먹는 음식
보다 많았단다. 벌들이 붕붕대는 꽃밭과 사과나무밭도 있었단다. 꿀벌은 달콤한 집을
짓는 신비한 곤충이었지. 그때도 걱정을 하긴 했어, 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과연
30년 후에 내 딸이자 너의 엄마가 살아남아서 사랑으로 너를 낳고 키울까? 미안해. 나
는 그런 소망을 품었구나. 그러나 30년 후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았어.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꿈에서 들은 것 같지 않다. 죽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하는
말과 생전에 나를 무릎에 눕혀놓고 들려주던 이야기가 마구 섞여 있다. 그때는 늙은이
가 젊은이를 부러워했단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겼단다. 불쌍한 아이야, 미
안해.....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 아이에게
죽은 사람을 질투하는 아이에게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쓰게 될 편지를
지금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