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여름, 오직 히틀러만이 당시 처한 상황을 부인하며 승리할 것이라 외쳤지만 독일이 제2차 대전에서 이길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바그라티온(Bagration)으로 명명된 대공세 작전을 개시하여 독일군을 일거에 붕괴시키며 베를린을 향해 성큼 다가왔고 서부전선에서는 이보다 조금 앞서 노르망디(Normandy)로 상륙한 연합군이 제2전선을 구축한 후 역시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하던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 독일이 과연 이길 것이냐가 아니라 누가 독일을 먼저 점령하는가가 중요해진 셈이었다. 이보다 앞서, 연합군이 독일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수행한 전략폭격으로 인해 독일의 후방지역 곳곳은 이미 피폐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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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이토나 미 공군 박물관에 소장된 Me 163B. <출처: wikimedia>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독일 공군(Luftwaffe)은 장기간의 전쟁 동안 거덜난 상태가 되었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대공포들이 연일 불을 뿜어대고, 얼마 남지 않은 전투기들이 계속 날아올라 연합군 폭격기에 맞섰지만 연합군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군의 소모는 커지고, 반면 연합군의 임무는 점점 수월해졌다.
그러던 1944년 7월 28일, 독일 동부의 공업 중심지인 라이프치히(Leipzig)를 공습하던 B-17 폭격기 편대 위로 흰 연기를 내뿜는 3대의 괴비행체가 갑자기 튀어 올랐다.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기관포 공격을 가하고는 유유자적하게 사라졌다. 다행히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멍하니 이 순간을 지켜본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말을 잊었다. 바로 Me 163 코메트(Komet) 로켓 전투기의 극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긴급히 요구되었던 새로운 방공수단
외관으로 볼 때 결코 날쌔 보이지 않지만 Me 163은 제2차 대전 당시까지 유인 비행체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로켓 엔진을 이용하여 당시 하늘의 야생마로 명성이 높던 P-51 전투기보다 시속 300km 정도 더 빨랐다. 따라서 폭격기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Me 163이 그냥 지나쳐 사라지기를 기도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었고 당연히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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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41에 장착된 건카메라에 격추 순간이 포착된 Me 163B. <출처: wikipedia>
이처럼 전쟁 말기에 극적으로 데뷔하였지만 Me 163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연구의 결합체였다. 1942년 이전은 독일의 전성기여서 로켓 전투기가 그리 급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당시에 독일 공군이 이를 추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후방의 방공(防空)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지대공 미사일로 적기를 요격하는 식으로 방공 체계가 다양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요격기를 출격시켜 적기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공대공 전투에 돌입하면 상대보다 높은 위치를 점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그렇다면 상대의 내습을 파악하여 하늘에 미리 떠있어야 했는데 이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레이더 등으로 적을 포착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작전 위치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이 차선책이었다. 이때 눈에 띈 것이 독일의 앞선 로켓 기술이었는데 이를 이용한 전투기라면 고고도까지 빨리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개발을 가로막았다. 워낙 폭발력이 강한 로켓은 그만큼 사고 가능성도 높아서 유인 전투기에 부적합하고 비행 중 자세 제어도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속으로 날기 위해 많은 연료를 순식간 소모하므로 작전 시간이 짧다는 점이 고민거리였다. 오늘날 미사일은 목표까지 곧바로 비행하여 폭발하거나 부딪히면 임무가 끝이지만 당시에는 일단 올라간 후 공대공 전투를 벌여야 했으므로 체공 시간도 중요했다.
급변한 상황
결국 요격 작전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체공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했는데, 글라이더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일단 로켓으로 이륙하여 짧은 시간 내에 작전 고도까지 올라가 적기를 요격하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즉시 전투 공역을 이탈한 후 활공하여 기지로 귀환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 하늘에 떠서 비행하는 것이 목적인 글라이더는 높은 속도를 내기에는 기체 구조가 적합하지 않았다.
이처럼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독일 글라이더연구소(DFS)의 엔지니어로 오래 전부터 고속 비행에 적합한 기체 구조를 연구 중이었던 리피쉬(Alexander Lippisch)가 1940년에 개발한 DFS-194가 눈에 들어왔다. 이듬해 메셔슈미트(Messerschmitt) 사의 주도로 여기에 소형 로켓엔진을 결합하여 비행 실험을 하였는데 시속 550km까지 속도를 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Me 163A라 명명하였지만 아직 무기로써 실용화는 요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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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험 제작된 Me 163A 형. <출처: wikipedia>
그런데 1943년이 되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전세가 점차 불리하게 돌아가고 연합국의 독일 본토 폭격이 본격화되면서 단 한 대의 요격기가 아쉬웠던 독일은 방법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요격 수단을 확보해야 했다. 이때 비행에 성공했던 Me 163A에 1943년 발터(HWK)사가 개발한 강력한 HWK-109-509 로켓엔진을 결합하면 상당히 효과적일 거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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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터 HWK-109-509 로켓엔진. <출처: wikipedia>
이 로켓 전투기에는 짧은 비행 시간 동안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B-17도 격추시킬 수 있는 60발의 탄환을 적재한 강력한 30mm 구경의 Mk 108 기관포를 양측 주익에 장착하였는데 사실 이는 동체의 크기에 비해 너무 과한 무기였다. 하지만 안정성보다는 연일 머리 위로 떨어지는 연합군의 폭탄을 막는 것이 시급했다. 사실 고고도까지 신속히 상승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전투 능력도 안정성도 검증된 바가 없었다.
해결되지 못한 고민
그럼에도 1944년 일사천리로 개발이 이루어진 Me 163B가 제식화되어 양산에 들어갔고 이를 전문으로 운용할 전투항공단인 JG 400이 라이프치히 인근의 브란디스(Brandis)에 창설되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전에 투입되면서 그 모습을 본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등장한 만큼 문제도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짧은 체공 시간은 여전히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Me 163B는 연합군 폭격기가 비행하는 고도 1만미터 상공까지 초당 60m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한두 차례 공격한 후에는 설령 탄환이 남았어도 곧바로 귀환해야 했다. 연료 탑재량도 부족한 데다 엄청난 속도를 내다보니 연료가 불과 수분이면 소진됐기 때문이다. 활공이 가능하지만 교전 지역에서 속도가 떨어지면 연합군 전투기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작전 반경도 발사된 곳에서 40km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이륙 직후에 바퀴식 강착장치를 분리하고 썰매판을 이용한 동체착륙을 하는 구조여서 착륙 장소도 제한이 많았다. 따라서 기지 주변에서만 작전을 펼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간파한 연합군 폭격기들은 브란디스를 우회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300기가 넘게 제작되어 배치되었지만 전과는 9기의 연합군 폭격기를 격추하였을 뿐이고 오히려 작전 도중 14기가 손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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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착 장치는 이륙 후 분리되었고 착륙할 때는 하부에 부착된 썰매판을 이용하여 동체착륙 한다. <출처: wikipedia>
경우에 따라 텅 빈 바다 한가운데에 값비싼 미사일을 날릴 수도 있는 것이 전쟁이지만 이처럼 Me 163은 비용 대비 효과가 너무 없었다. 결론적으로 기존 전투기 생산에 몰입하는 것이 전시 자원 배분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이었다. 최초 등장 당시에 너무 놀란 연합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라이프치히 일대로 출격을 거부하였을 정도로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준 것이 어쩌면 유일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무서워했다
그러나 반대로 Me 163 조종사들이 가지고 있던 공포는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들이 느끼는 공포를 뛰어 넘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제작되다 보니 조종사의 안전에 대한 조치가 거의 전무하여 비전투 상황에서도 수많은 조종사들이 사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연료로 사용된 하이드라진과 메탄올 혼합물인 C-스토프(Stoff)와 과산화수소가 주성분인 T-스토프는 인체에 닿으면 피부를 괴사시킬 정도로 독하였고 폭발 사고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더우기 비행 속도가 빠른 만큼 조종이 매우 힘들었고 착륙 시에 전복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보니 적기 격추는 고사하고 일단 살아서 귀환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했을 정도. Me 163을 좋아하지 않았던 독일 조종사 중 일부는 탑승을 거부하고 다른 비행단으로 전출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하였다. 어차피 싸워야 할 운명이라면 다른 전투기로 작전에 투입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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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에 전시중인 Me-163. <출처: wikipedia>
말하자면 한쪽은 나타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다른 한쪽은 탑승을 두려워한 것인데, 자신 못지않게 상대방도 Me 163을 무서워한다는 걸 서로 모르고 있었던 점이 아이러니하다. 성능이나 실제 전과에 비해 Me 163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하늘에서 격돌하였을 때 서로의 두려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무섭냐? 나도 무섭다."
제원
전장 5.70m / 전폭 9.33m / 전고 2.75m / 최대이륙중량 3,950kg / 최대속도 시속 1,060km / 항속거리 40km / 작전고도 12,100m / 무장 30mm Mk108기관포 2문 (문당 탄약 60발)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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