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뉴스는 뭐야?】 주가가 겨우 거품기 넘어 → '잃어버린 30년'의 세 가지 이유 / 3/1(금) / 아사히 신문 EduA
매일 뉴스 속에 '배움'의 계기가 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서 TV를 보면서 식탁이나 거실에서 어떻게 말을 걸면 우리 아이의 지적 호기심에 스위치가 켜질까요? 저널리스트 잇시키 기요시 씨가 힌트를 알려드립니다.
2월 22일,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 평균주가가 버블 경제기인 1989년말에 매긴 종가를 웃돌아, 약 34년만에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이를 전하는 아사히신문 기사에서는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이후 저성장과 물가침체가 계속돼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가와 임금에 상향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주가는 한발 앞서 거품 이후를 벗어났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은 거품 붕괴 후 '잃어버린 10년'이라든가 '잃어버린 20년'이라든가 고비의 연수를 넣어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연령 이상의 사람에게는 익숙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버블기나 그 후의 일본 경제의 침체를 잘 모르는 젊은 사람에게는 감이 잘 오지 않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잃어버린 30년'에 대해서 '잃어버린 이유'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버블 경제기는, 86년 12월부터 91년 2월경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더 엔고를 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이나 경기 부양 정책을 계속했습니다. 그 바람에 경기는 과열됐고 땅값과 주가가 쑥쑥 올랐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후 거의 일관되게 성장해 온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에서 그것이 실태와 동떨어진 거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90년이 되자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땅값도 평생 집을 살 수 없다는 국민 불만에 휩싸여 정부가 토지 거래에 규제를 가하는 바람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거품 붕괴의 시작입니다. 즉, '잃어버린 30년'의 출발점이 됩니다.
왜 3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잃어버렸다'고 표현되는 상태가 되었을까요? 큰 이유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버블 붕괴의 피해가 엄청나게 컸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기관이 떠안은 부실채권입니다. 버블 시기에 금융기관은 부동산에 대한 대출을 늘렸습니다. 땅값이 점점 오르기 때문에 엄밀한 심사를 하지 않고 경쟁해서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토지 대출을 할 경우, 그 전까지는 담보 가치의 70% 정도를 빌려주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때는 담보 가치를 웃도는 금액이라도 빌려 주었습니다. 바로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위험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한 주식을 사는 등의 머니 게임에 사용하는 돈도 대출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거품이 붕괴되고 땅값이나 주가가 폭락하자 돈을 빌렸던 기업이나 개인은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줬지만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돈을 부실채권이라고 합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금융기관 전체의 부실채권액은 수십 십조엔에 달했습니다.
부실채권을 자력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파산하는 금융기관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용조합이나 지방은행의 파탄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97년 11월에는, 준대기업 증권회사의 산요 증권, 도시은행의 홋카이도 척식은행, 대기업 증권회사의 야마이치 증권이 연달아 파탄해, 일본 경제는 대쇼크에 직면했습니다.
98년에는 일본장기신용은행, 일본채권신용은행이라고 하는 장기신용은행인 두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본 금융기관들은 합병·통합을 추진해 어떻게든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금융 불안은 금융 기관이 기업에 대출하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돈을 빌릴 수 없는 기업은 성장하기 위한 투자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업 자체도 거품 붕괴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었다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버블 붕괴에 따른 기업의 보호 자세는 오래 지속되어 수요 부족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는 디플레이션 경제에 빠져 경제성장률은 제로 부근을 오가게 되었습니다.
▷ 인구 감소와 디지털 혁명도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의 총 인구는 2008년의 1억 2808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일하는 사람의 수인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그보다 앞선 199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연령인구가 줄면 경제성장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합니다. 생산성이 변하지 않으면 일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이 연령대는 많이 소비하는 연령대이기도 합니다. 이 연령대의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본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자제하거나 해외로 나갔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의 배경에는, 90년대 중반부터의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세 번째는 이 기간 동안 세계에서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과거 일본은 가전이나 음향 기기 등의 전기 산업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80년대까지는 세계에서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하면 성능이 좋고 튼튼한 일제 가전 등의 대명사였습니다. 또, 그 부품인 반도체의 생산 점유율은 세계에서 톱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러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95년에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발매한 PC의 기본 소프트인 「윈도우 95」는 순식간에 세계에 퍼져 PC가 단번에 보급되었습니다. 동시에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되는 통신 혁명의 막이 열렸습니다.
혁명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전자 상거래의 아마존이 94년에, 검색 엔진의 구글이 98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페이스북(현메타)은 2004년에, 트위터(현X)는 06년에 창업해, 급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0년 무렵이 되면, 스마트폰의 보급이 진행되어, 전세계의 사람이 수중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즐기거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 혁명을 놓쳤습니다. 버블 붕괴로 인해 움츠러들고 있는 사이에, 세계의 플랫폼의 자리를 미국 기업에 독점당해 버린 것입니다. 디지털 혁명이 10년 정도 일찍 왔더라면, 혹은 거품에 춤을 추지 않았다면 일본이 그 주역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일본은 물가가 오르고 임금도 오르는 선순환에 들어갈 것 같은 기색이 있습니다. 30년이 지나서야 겨유 국면이 바뀌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잃어버린 40년'이라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 국면 전환이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잇시키 키요시 저널리스트
https://news.yahoo.co.jp/articles/1db35422837a6030a671e5aabb9cc8d500f68384?page=1
【このニュースって何?】株価がようやくバブル期超え → 「失われた30年」の三つの理由
3/1(金) 11:50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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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EduA
日経平均株価が終値で史上最高値をつけ、拍手する人もいた=2024年2月22日午後3時、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1丁目の大和証券、小林正明撮影
日々のニュースの中に「学び」のきっかけがあります。新聞を読みながら、テレビを見ながら、食卓やリビングでどう話しかけたら、わが子の知的好奇心にスイッチが入るでしょうか。ジャーナリストの一色清さんがヒントを教えます。
2月22日、東京株式市場で日経平均株価がバブル経済期の1989年末につけた終値を上回り、約34年ぶりに史上最高値を更新しました。それを伝える朝日新聞の記事では、「日本経済は1990年代以降、低成長と物価低迷が続き、『失われた30年』と言われた。物価と賃金に上向きの動きが広がる中、株価は一足先に『バブル後』を脱した」と書かれていました。
「失われた30年」という言葉は、バブル崩壊後、「失われた10年」とか「失われた20年」とか節目の年数を入れて使われてきました。そのため、一定年齢以上の人には聞きなれた言葉だと思いますが、バブル期やその後の日本経済の低迷をよく知らない若い人には、ピンとこない言葉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今回は、「失われた30年」について、「失われた理由」を三つ挙げて説明しようと思います。
バブル経済期は、86年12月から91年2月ごろまでの期間をいいます。日本はアメリカからもっと円高にするよう求められたことから低金利政策や景気刺激政策を続けました。そのせいで景気は過熱し、地価や株価がぐんぐん上がりました。
しかし、人々は戦後ほぼ一貫して成長してきた日本経済への信頼から、それが実態とかけ離れたバブルだとは思いませんでした。ただ、90年になると金利が上がり始めたことにより株価が下がり始めました。地価も「一生家を買えない」といった国民の不満におされて、政府が土地取引に規制をかけたため、下がりはじめました。それがバブル崩壊の始まりです。つまり、「失われた30年」の出発点となります。
なぜ30年もの間、日本経済は「失われた」と表現される状態になったのでしょうか。大きな理由は三つあります。
一つは、バブル崩壊のダメージがとてつもなく大きかったことです。具体的には金融機関が抱えた不良債権です。バブル期に金融機関は不動産への融資を増やしました。地価がどんどん上がるため、厳密な審査をしないで競いあってお金を貸しました。
土地の融資をする場合、それまでは担保の価値の7割くらいを貸すのがふつうでしたが、このころは担保の価値を上回る金額でも貸していました。すぐに地価が上がるので、リスクはないと考えたのでした。また、株を買うなどのマネーゲームに使うお金も融資を増やしていました。
バブルが崩壊し、地価や株価が暴落すると、お金を借りていた企業や個人は返せなくなりました。金融機関は、お金を貸したけれども返ってきそうにないお金を不良債権とよびます。90年代半ばには、金融機関全体の不良債権額は数十兆円にも上っていました。
不良債権を自力で処理することができずに破綻(はたん)する金融機関が出はじめました。最初は信用組合や地方銀行の破綻からはじまりましたが、97年11月には、準大手証券会社の三洋証券、都市銀行の北海道拓殖銀行、大手証券会社の山一証券が相次いで破綻し、日本経済は大ショックに見舞われました。
98年には日本長期信用銀行、日本債券信用銀行という長期信用銀行の2行が破綻しました。単独では生き残れないとみた金融機関は合併・統合を進め、何とか生き残りました。
こうした金融不安は、金融機関が企業に融資する力を衰えさせました。お金を借りられない企業は成長するための投資をしなくなりました。企業自体もバブル崩壊により損を抱えていたという事情もありました。こうしたバブル崩壊に伴う企業の守りの姿勢は長く続き、需要不足から物価が上がらないデフレ経済に陥り、経済成長率はゼロ近辺を行き来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人口減少とデジタル革命も
二つ目の理由は、日本の人口が減りはじめたことです。日本の総人口は2008年の1億2808万人をピークに減少しはじめました。ただ、働く人の数である生産年齢人口(15~64歳)はそれより前の1995年をピークに減りはじめていました。
生産年齢人口が減ると、経済成長にとってはマイナスに作用します。生産性が変わらなければ、働く人が減る分だけ生産力が落ちるためです。また、この年代は、たくさん消費する年代でもあります。この年代の人口が減少するとみた企業は、国内投資を控えたり、海外に出ていったりしました。「失われた30年」の背景には、90年代半ばからの生産年齢人口の減少も大きいと考えられます。
三つ目は、この間に世界でデジタル革命が起こったことです。かつて日本は家電や音響機器などの電機産業が強い国でした。80年代までは、世界で「メイド・イン・ジャパン」といえば、性能がよくて丈夫な日本製の家電などの代名詞でした。また、その部品である半導体の生産シェアは世界でトップでした。
しかし、90年代になってデジタル革命がはじまりました。95年にアメリカのマイクロソフト社が発売したパソコンの基本ソフトである「ウィンドウズ95」はあっという間に世界に広がり、パソコンが一気に普及しました。同時にインターネットで世界がつながる通信革命の幕が開きました。
革命はすごいスピードで進みました。アメリカでは、電子商取引のアマゾンが94年に、検索エンジンのグーグルが98年に、ソーシャル・ネットワーク・サービス(SNS)のフェイスブック(現メタ)は2004年に、ツイッター(現X)は06年に創業し、急成長を遂げました。10年ごろになると、スマートフォンの普及が進み、世界中の人が手元にスマホを持って、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とったり、ゲームをしたり、写真を撮ったり、動画を楽しんだり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しかし、日本はその革命に乗り遅れました。バブル崩壊により縮こまっているうちに、世界のプラットフォーマーの座をアメリカ企業に独占されてしまったのです。デジタル革命が10年ほど早く来ていたら、あるいはバブルに踊っていなければ、日本がその主役だ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悔やんでも仕方がありません。
今、日本は物価が上がり、賃金も上がる好循環に入りそうな気配があります。30年たってようやく局面が変わ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失われた40年」などという言葉はもう聞きたくありませんので、この局面転換が本物であってほしいと心から思います。
一色清 ジャーナリス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