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46]신문에 이런 신간 소개 어때요?
평상시처럼 어제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늘 그렇듯, 가장 먼저 찾는 게 머리맡의 휴대폰. 열어보니, 전북도민일보 편집부국장이 이미지 한 컷을 보냈다. 웬 열? 목요일마다 싣는 ‘북 페이지’에 나의 졸저 『어머니』가 돋보이게 소개되어 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단 “그리운 내 고향/추억을 소환하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졸저에 실린 100여편의 글은 내 고향의 추억追憶을 소환召喚했다는 말이 딱 맞다. 나도 편집기자 출신이지만, 편집의 효능-내공(?)은 이런 데 있다는 생각이다. 흐흐. 게다가 15일 출판기념잔치 소식까지 곁들여줬다. 불감청고소원.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그저 단신短信 소개로 서너 줄 쓸 줄 알았더니, 황감했다.
문득 2008년 12월 <포커스>라는 지하철신문(그때는 완전 인기 캡이었던 매체)에 실렸던 졸저 『나는 휴머니스트다』(성균관대출판부 펴냄, 304쪽, 12000원, 절판) 소개기사가 생각나 서가를 뒤졌다. 그때도 “글로써 나와 벗들을 위로하죠”라는 큰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아하, 저자(최영록)의 환한 얼굴을 보니 “그때는 참 젊었구나”싶다. 벌써 16년 전이 아닌가. 아마도 그때가 내 도회지 삶의 전성시대였던 같다. KBS <퀴즈 대한민국>에도 출연해, 1등(상금 3000만원)은 못했지만, 2등도 해 소고기상품권과 대형 텔레비전도 탔으니, 흐흐. 지금은 염색조차 전혀 하지 않으니, 꾀복쟁이모임(초교 동창)에 가면 평생 고향을 지킨 농부친구보다 몇 살 더 먹은 것같다고 하니, '그렇게 늙었나' 싶어 듣는 기분이 영 지랄맞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44]알량한 글쟁이의 “아버지 고맙습니다” - Daum 카페
16년만의 출판기념회는 나를 충분히 달뜨게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인사동 단골식당을 전세내 내 인생의 ‘길동무’(도반道伴)들인 선후배, 동료, 친구, 지인 60여명을 초대해 벌였던 출판잔치는 소리꾼 배일동 명창의 <심청가> 한 대목(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을 10여분 불러제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얼마나 UP이 됐던가. 그날 모임의 컨셉 “막걸리 한 잔”답게 임실특산 사선대막걸리가 70병도 넘게 나갔다. 어느 선배는 자청해 기타를 빌려 멋들어진 노래 한 곡을 불렀는가 하면, 아예 가수협회 회원인 통기타가수 고교 친구는 2시간도 넘게 원맨쇼를 해 청중을 즐겁게 했다. 어디서, 누가, 언제, 이런 <추억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속으로 은근히 흐뭇하기까지 했다. 불가피한 불참에 속이 내내 찜찜했다는 영원한 옆지기(운명공동체)가 “당신이 세상을 잘 살아온 것같다”고 카톡을 보내 기분이 더욱 좋았다. ‘옥의 티’는 자리를 돌며 한 잔 두 잔 받아마신 막걸리로 급기야 필름이 끊어진 것. 아내의 집(용인 고기리)으로 돌아가는데, 웬 열? 지하철 5호선 종점(하남검단산역)까지 가버렸으니, 오 마이 갓! 욕을 죽어라고 얻어먹은 것이다.
아무튼, 오는 15일 ‘제2의 고향’ 전주에서 한 판 더 벌이기로 했다. 식당이 넓어 100여명을 초대했는데,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도 되지만, 내가 좋아서 친구들에게 생색을 내는 일이기에 아무래도 괜찮다. 1935년생 올해 90세인 고교때 3학년 담임선생님을 초대할 생각에 부푼 마음이다. 아직은 짱짱한, 우리 학창시절 명품-명물 선생님이셨다. 서울에서 ‘찍사’와 통기타밴드(가파통, 4명)가 내려와 즐겁게 해줄 것이고, 현소의 명인도 고창에서 오신다. 이런저런 인연의 인생 길동무 100여명을 초대해 저녁 한번 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물론 오는 분들이 밥값과 책값은 내는 셈이니, 품앗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36년생, 내가 가장 존경하는 원로 선생님에게 졸저를 한 권 보내드렸다. 며칠 후 직접 전화를 하시며 대뜸 “우천, 책 받자마자 끝까지 서너 시간 동안 다 읽었습니다. 좋은 책 보내줘 고맙습니다”라고 경칭을 써가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정말, 몹시, 매우 기뻤다. 세상에 극노인(89세)이 어떻게 자잘한 글씨체의 글들을 다 읽으셨단 말인가? 그분은 5년 전 내가 귀향을 한다니까, 정갈한 선비체의 글씨로 <송서送序>를 써주셨다. 송서라니? 송서는 한문학의 한 장르이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마도 열 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어라고? 이렇게 귀한 글을? 가보家寶로 물려줄 생각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단상 42/시간여행 2]‘송서送序’라는 문학장르 - Daum 카페
예쁜 사촌여동생은 책을 받은 후 “오빠, 기서방보다 제 이름부터 손글씨로 써주신 주소를 보며/마음에 오빠의 다정함이 싸악 번졌어요∧∧/단숨에 몇 편씩 읽어내려가며/오빠는 정말 멋쟁이, 쩨쟁이가 맞구나 하는 생각을 또 했어요/기서방도 옆에서 책을 보며/정말 기록이 가치있는 글들이라고 감탄하더군요/감사해도. 멋진 책!!! 잘 읽을게요”라는 댓글을 보내왔다. 이러면 됐지! 뭘 더 바랄 것인가. 이런 게 ‘사는 재미’인 것을. 이런 재미가 없으면 눈물이 나서 어떻게 산대? 책을 펴내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