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124)
지난 주는 기다리던 첫눈이 내려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쌓이지 않고 바로 녹아버려 못내 아쉽고 서운했지만 내리는 눈을 마음으로 반겼습니다. 손끝으로 만지면 사르르 녹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늘에서 그렇게 하얀 가루가, 그것도 녹아지는 가루가 내릴 수 있는지 정말 하나님의 솜씨에 감탄할 뿐입니다. 아마도 가끔씩 내리는 눈은 부질없는 근심과 끈적거리는 우울을 모두 눈 속에 녹아버리라고 한 이해인님의 시구처럼 어둠을 걷고 밝게 웃는 하얀 세상에 살게 하려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공평한 선물 같습니다.
산에 들에 언덕에
흰눈이 내리듯이
하늘스런 기쁨들이
내리게 하여 주십시오
티없이 정결한
기쁨의 눈송이들이
우리들 마음 밭에
내리게 하여 주십시오 (이해인 - ‘기쁨주일의 기도’중에서)
우리 선생님들도 모두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금방울 은방울처럼 동그랗게 반짝이는 믿음 소망 사랑 많이 맺히도록 오늘도 첫눈 같은 웃음으로 많이 웃으시며 아기 예수로 오신 구주와 다시 오실 심판주를 깊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눈이 내리는 밤이나 첫눈 오는 날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자는 24%가 삼겹살에 소주, 그리고 호빵 17%, 어묵과 군고구마가 각 12% 등의 순이었고, 여자는 33%가 스테이크, 그리고 생크림케익과 떡국이 각 17%, 스파게티 14% 등의 순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너무도 달라진 세태에 격세지감입니다만,
저는 아직 마음이 여리고 촌스러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눈이 내리는 밤이면 동치미 국물에 삶은 고구마를 곁들여 먹고, 밤늦도록 눈을 맞으며 쏘아 다니거나 이불 뒤집어쓰고 윷놀이하며 연탄불에 떡 구워먹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게 떠오르며, 장독대 항아리에 저장해둔 말랑말랑한 홍시를 한 바가지 담아 밤참으로 내시던 엄마가 무던히도 그리워지며, 가래떡과 홍시 그리고 화롯불에 구운 고구마와 밤이 너무 먹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눈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은, 문밖엔 눈보라 몰아치고, 깊은 밤 폭설이 와도 방안에선 아랑곳 않고 호 호 불어 고구마와 군밤을 구워 먹으며 따뜻한 이야기로 깔깔거리며, 호호 하하 따듯한 웃음소리 그칠 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따듯한 여운이 그때마다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에 행복해 하시는지요?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할까요.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요.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안도현 시인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란 시에서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고 한 것처럼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0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포장마차에서 홍합국물과 오뎅국물 그리고 때론 군밤을 사 먹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저는 늙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마음은 이미 외출해 서성거립니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가슴 두근거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 (안도현-첫눈 오는 날 만나자)
대림절(Advent)기간입니다. 이 기다림의 계절에 얼어붙은 한겨울의 추위를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녹이며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그분을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고단하더라도 먼지 낀 마음의 창을 닦으며 기다리게 하소서!
어떤 분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3R과 5W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3 R은 Return, Revival, Refresh로 크리스마스의 본질로 돌아가서 우리가 먼저 변질되어 버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문화를 벗어버리고,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알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고, 5W는 With Jesus(예수님과 함께), With Holiness(거룩함과 함께), With Silence(조용함과 함께), With Family(가족과 함께), With Neighbor(이웃과 함께)의 5가지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첫째로,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세상문화를 좇아 분주하게 보내지 않겠습니다. 둘째,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묵상하고, 그 의미를 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겠습니다’ 라는 크리스마스 캠페인이자 각오를 말하는 것인 줄 압니다. 거리에는 성탄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성탄은 누구보다도 삶에 지치고 소외된 자에게 임하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웃과 거리가 성탄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한 번 더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의 눈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