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은 1947년 제주 북국민
학교에서 삼일절 기념 대회가
열리던 중, 어린 아이가 경찰이 타고
가던 말 발굽에 치이는 일이 발생하고
이 일을 계기로 제주 도민들의 시위가
일어나자 경찰이 발포를 하여 사망자
6명이 발생하면서 촉발 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3월 10일 부터 제주도민은
총 파업에 들어가게 되고 미군정과
중앙정부는 이를 탄압하며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한
괴롭힘과 재산강탈등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던 중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던
3명의 청년이 사망하게 되면서 제주
도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마침내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에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안의 12개
경찰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고,
군,경은 가담하는 사람은 폭도로
간주해 현장에서 총살하겠다”는
무시무시한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부터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가
되었습니다.
당시 진압이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는
1949년 1월17일 ‘북촌사건’입니다.
당시에 군은 북촌마을 주민 350여명을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집단 총살을
하였습니다.
1954년 9월 4.3 사건은 공식 마무리
되었지만 이후 유족들은 연좌제로
인해 공무원은 물론 모든 국가 제도
에서 차별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에야 진행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이듬해 발생한
여순반란 사건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순반란 사건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 파견
명령를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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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려주신 가슴 아픈 글
감사히 잘 보고갑니다
그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부모님 시대는 많이
무섭고 힘들었겠어요 ㅠㅠ
편안한 밤 지내셔요
제주 4.3의 역사는
이제는 많이 잊혀졌습니다. 그렇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마음 아픈
일로 남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