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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우리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호렙을 떠나, 우리가 본 그 크고 무서운 광야를 지나서, 아모리 사람의 산지로 가는 길을 따라 가데스바네아까지 이르렀습니다.
1:20 그 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일렀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아모리 사람의 산지까지 왔습니다.
1:21 보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신 땅이 당신들 앞에 있습니다.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십시오.'
1:22 그러나 당신들은 다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땅을 탐지할 사람들을 먼저 보내서, 우리가 올라갈 길과 우리가 쳐들어갈 성읍들이 어떠한지, 그 땅을 정찰하여 우리에게 보고하게 하자.'
1:23 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옳은 말이어서, 나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았습니다.
1:24 뽑힌 사람들은 산지로 올라가서,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두루 다니면서 탐지하였습니다.
1:25 그들은 그 땅에서 난 열매들을 따 가지고 내려와서 우리에게 보고하기를,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1:26 그러나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1:27 당신들은 장막 안에서 원망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 아모리 사람의 손에 우리를 내주어 전멸시키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처럼 이끌어 내셨다.
1:28 우리가 왜 그 곳으로 가야 한단 말이냐? 무모한 일이다.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우리의 형제들은, 그 곳 사람들이 우리보다 힘이 훨씬 더 세고 키가 크며, 성읍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기에는 아낙 자손들까지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1:29 그 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1:30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들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하신 것과 같이, 이제도 당신들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오.
1:31 또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당신들이 이 곳에 이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당신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광야에서 직접 보았소.'
1:32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1:33 당신들이 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그리고 당신들이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 주해
1.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광야 40년을 믿음의 눈으로 되돌아보면서 다시 선포되는 말씀이다.
1) 이미 선포했던 말씀과 내용은 같다. 그러나 광야 길을 출발할 때에 듣던 말씀과 광야 길을 마치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시작해야 할 때에 듣는 마음은 달라야 한다.
2) 38년 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했을 때 그들은 반역하고 원망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시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하는 시점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야 한다.
2. 모세는 광야에서 지도자들을 세운 일과 정탐꾼을 보낸 일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1) 신명기 1:19-46절은 민수기 13~14장에 있었던 내용을 근거로 한다.
2) 출애굽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게 해 주셨다.
신 1:19 "우리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호렙을 떠나, 우리가 본 그 크고 무서운 광야를 지나서, 아모리 사람의 산지로 가는 길을 따라 가데스바네아까지 이르렀습니다.
3) 연약한 인생에게 광야 길은 크고 두려운(무서운) 길이다. 출애굽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지만, 광야 길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
4) 하나님은 크고 무서운 광야에서 2년 동안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사, 가데스 바네아까지 이르게 하셨다. 이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5)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대표하는 아모리 족속이 사는 산악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3.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후에 400여년이나 지난 후에 드디어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신 1:21 보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신 땅이 당신들 앞에 있습니다.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십시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십시오.'
1) 가나안 족속들은 강한 민족들이다. 그러나 모세는 출애굽의 하나님, 크고 두려운 광야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라가 차지하라”고 명하였다.
4. 그런데 백성들은 먼저 그 땅을 정탐하자고 제안한다.
신 1:22 그러나 당신들은 다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땅을 탐지할 사람들을 먼저 보내서, 우리가 올라갈 길과 우리가 쳐들어갈 성읍들이 어떠한지, 그 땅을 정찰하여 우리에게 보고하게 하자.'
1) 백성들은 땅을 탐지한 후에 쳐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자고 하지 않았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다만 많은 백성들이 움직여야 하니, 어떤 길로 어떻게 올라갈 지를 알기 위해 정탐을 하자고 하였다.
2) 모세는 그 말을 좋게 여겨 12지파에서 지도자를 뽑아 그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23절).
- 민수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정탐을 명령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다(민 13:1-2).
5. 가나안 땅을 정탐한 지도자들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실 땅은 좋다”라고 보고하였다(25절).
1) 신명기에는 땅을 악평한 정탐꾼들의 자세한 보고는 생략되고 백성들의 반응을 말한다.
2) 10명의 정탐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 올라가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다는 것이다.
신 1:26 그러나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 1:27 당신들은 장막 안에서 원망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신다. 아모리 사람의 손에 우리를 내주어 전멸시키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처럼 이끌어 내셨다.
6. 참 안타까운 백성들의 반응이다. 홍해를 건넌 후에는 춤추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더니, 정탐 보고를 들은 후에는 급변하여 “주님이 우리를 미워한다. 우리를 전멸시키려고 출애굽 시켰다”고 한다.
1) 자신의 불신앙과 불안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지만 보고를 들으니 두렵고 올라가 싸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약함을 말하지 않는다.
2) 자신의 불안과 불신과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구원하셨다”며 출애굽 구원까지 비난한다.
7. 백성들은 그들이 원망하는 합당한 이유를 둘러 댄다.
1) 가나안 족속은 크고 수효도 많다. 아낙 자손이 살고 있다. 성읍을 둘러싼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 높다~
2) 하나님과 모세는 약하고 적은 족속이 살고 있다면서 백성들을 속인 적이 없다.
3) 출애굽 때부터 아는 사실을 정탐꾼들이 보고한 것뿐이다.
- 최강대국 애굽을 굴복시킨 하나님,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 200만 명을 먹이고 인도하신 하나님에게 가나안 족속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8. 그러므로 모세는 정탐 보고로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당연한 상황이므로 백성들에게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고 출애굽과 광야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다.
신 1:29 그 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오.
신 1:30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들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하신 것과 같이, 이제도 당신들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오.
1)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행하셨고, 백성들은 그것을 보았다.
2) 가나안 정복 전쟁 즉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십자가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할 것을 믿어야 한다.
3) 직접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나이지만 나를 대신하여 싸우는 분은 구원의 하나님이다.
4) 이것은 오늘날 우리를 향한 도전의 말씀이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사는 것은 우리가 올라가서 싸워 점령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으로 영적 전쟁하는 동안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5)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가나안을 정복하고, 믿지 않으면 불평하고 불신하게 되어 들어가지 못한다.
9. 모세는 출애굽만이 아니라 광야에서 돌보아 주신 하나님을 보았으니 믿으라고 한다.
신 1:31 또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과 같이, 당신들이 이곳에 이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당신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광야에서 직접 보았소.‘
[개역개정] 1: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1) 모세는 출애굽의 구원과 광야의 돌보심을 “직접 보았는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책망한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 맺으시고,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듯이 안으사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인자하심으로 너희들을 돌보아 인도했다고 한다.
3) 척박한 광야를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나를 안고 지나온 시간”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는 곳이 바로 광야다.
4) 이렇게 놀라운 능력과 사랑으로 인도함을 보고도 믿지 않음을 책망한다.
신 1:32 그런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10. 모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얼마나 자상하고 세심한 사랑으로 광야 길을 인도하여 주셨는지를 말한다.
신 1:33 당신들이 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그리고 당신들이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1) 광야는 인간의 힘으로 생존할 수 없는 곳이며, 길이 없는 척박한 곳이다.
2) 하나님은 그들보다 먼저 길을 가시면서 그들이 광야에서 진 칠 곳을 친히 찾아주셨다.
3) 밤에는 광야 길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거나 힘들까봐 불로 갈 길을 비추어 주셨다.
- 낮에는 더워서 지치고 곤할까봐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4) 이런 인도함을 받고도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느냐고 책망한다.
1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출애굽 구원과 크고 두려운 광야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다르게 해석하였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를 진멸하시려고 출애굽 시키고 광야 길을 인도하였다는 것이다. 돼지를 잡아먹으려고 잘 먹이고 돌보아 주었다는 엉뚱한 논리를 펼친다.
2)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함을 삐딱하게 보니, 그 놀라운 구원과 돌보심이 미움과 진멸로 보인다.
3)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 400년 만에 이루어지려고 하는데, 출애굽과 광야 길의 목적인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목전에 두고 악평하고 불신한다.
4)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주시려고 하신 생명을 약속대로 성취해 주겠다고 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이스라엘은 불신과 악평으로 돌아선다.
12.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모세가 볼 때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1) 그런데, 안타까운 백성들의 불신과 원망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니 더욱 안타깝다.
2) 하나님은 창세전에 주시기로 약속 하신 생명을, 아들의 십자가와 부활로 주셨다.
3)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하여 차지하라”고 하셨다.
- 목숨을 건 치열한 전쟁이지만, 하나님이 대신하여 싸워줌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전쟁이다.
13. 그러나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머물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향하여 올라가 싸우지 않는다. 영생을 취하기 위하여 싸우지 않는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 대다수의 성도들은 “내가 싸우기에는 벅찬 상대라며 물러선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하나님 나라)를 취하지 않는다.
2) 38년이 지난 후에 모세는 다시 말하는 것이다.
- 출애굽의 하나님, 40년 광야 길을 아버지처럼 안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쟁에 참여해 싸우라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싸워 취하라고 한다.
3) 2024년 새해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하시는 말씀이다.
4) 약속이 성취되기 직전에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물러서지 말라고 하신다.
◈ 나의 묵상
모세가 출애굽 구원과 광야 40년을 되돌아보듯이 나의 삶을 되돌아 보니,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 길을 그대로 답습한 듯 하다. 십자가 복음의 구원을 알고 감격하고 기뻐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싸우셨고, 죄와 세상의 얽매임에서 건져내 주셨다. 구원의 감격 이후, 바로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처음 광야는 환경적인 광야다. 가난과 척박한 사역 환경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 그 광야에서 인도하여 주셨다. 한 번도 굻지 않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과 필요들을 채워주셨다. 그리고 복음과 공동체로 인하여 영혼들을 살아나게 하셨다.
나의 가데스 바네아는 부목사 시절 같다. 전임 목회라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동일하게 인도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잊고, 자기를 주장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복음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이미 내가 주 안에 있고, 주가 내 안에 있음을 믿음으로 저절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안식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더욱 내 힘과 경험과 능력으로 성과를 내려는 자가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안식에서 멀어지고, 또 다른 광야가 왔다. 영적 메마름과 우울함과 무력감이라는 광야다. 환경적인 광야와 사역적인 광야와 다르게 이 광야는 매우 힘들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은 2년간의 광야와 가데스 바네아에서 거역후에 보내는 38년의 광야가 있다. 2년간의 광야는 척박하고 원망도 했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공급이 있었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성막을 짓는 영적인 진보와 체험이 많은 광야였다. 하지만 38년의 광야는 좀 다르다. 물론 이 때도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과 불기둥, 성막의 예배가 있었지만 모두 그 전의 2년 동안에 주어진 것의 연장 안에서 38년을 버티고 견뎌야 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감격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광야 생활이다. 처음 은사를 받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놀라지만 수년이 지나면 동일한 체험도 그리 놀랍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렇다. 두 번째 광야에도 사실 하나님의 긍휼과 돌보심은 여전했다. 그런데 전에도 있었던 하나님의 돌보심이기에 나는 그 은혜와 긍휼에 감격하지 않았다.
모세는 그런 나를 책망한다. 하나님이 아들을 안으사 나의 길을 인도하셨는데, 어찌 그 은혜와 능력의 하나님을 믿지 않느냐고 책망한다. 모세는 크고 두려운 광야 길을 안고 인도해 오신 더 크고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다. 광야는 참으로 크고 두려운 존재다. 그러나 그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더욱 크고 광대한 사랑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가나안 족속은 크고 강한 민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욱 크고 강력한 전능자이시다. 무엇을 보고 믿을 것인가? 광야와 가나안 족속의 크기와 두려움에 함몰될 것인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안고 인도하고 있음을 믿을 것인가?
땅의 관점, 육신의 관점으로 보는 이스라엘과 같은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시며, 성령께서 믿음의 눈을 들라고 하신다. 광야처럼 선명하게 하나님의 안으심과 인도함과 돌보심을 보는 장소는 없다. 내가 매일 광야구나...라고 생각하는 기간은 매일 하나님의 안아주심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고 있는 기간이다. 주 품안에 있으면 그만이다. 그곳이 바로 하늘 나라이지 않은가? 오늘도 나를 안고 계시는 하늘 아버지, 내가 가는 길을 미리 가셔서 나의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시는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분이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다. 영생을 취하기 위한 믿음의 싸움터로 나간다.
◈ 묵상 기도
주님, 광야란 참 신비한 곳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많이 원망하고 거역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믿음의 눈을 들면 하나님의 안아주심과 돌보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가정 선명하게 보는 믿음의 장소입니다. 주님 사단은 수시로 사단의 척박함과 필요가 채워지지 않음으로 불신하게 합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믿음의 눈으로 주를 봅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놀라운 긍휼과 자비를 마음에 새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안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들어 광야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여 보게 하소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사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광야에서 보게 하시고 믿게 하사, 영생의 싸움을 싸우게 하소서. 믿음으로 올라가게 하소서. 새해에도 목자되신 주님이 함께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새해 전망을 뉴스에서 합니다. 세계도 나라 경제도 남북관계도, 교회도, 영적토양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생성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실 새해임을 믿습니다. 연약한 양이오니 매일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주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십니다. 새해 가정과 교회와 선교지들을 올려 드립니다. 새 노래를 부르는 새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