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13) - 축구에서 되새기는 삶의 애환
오늘(6월 21일)은 하지, 낮이 점점 길어져 정점에 이르다가 다시 짧아지기 시작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달도 차면 기울지 않던가. 하지 절기에 맞추기라도 하듯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져 단단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잇단 인사실패에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부정적 평가(48%)가 긍정적 평가(43%)를 앞서 앞으로의 행로에 경고등을 켰다. 월드컵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대회 우승팀 스페인과 전통의 강호 잉글랜드가 조별리그를 마치기도 전에 16강 진출이 좌절되었고 D조에서 최하위 팀으로 지목된 코스타리카는 월드컵 우승경력이 있는 같은 조의 이탈리아, 잉글랜드, 우루과이를 제치고 제일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것은 자연의 섭리, 눈앞의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긴 안목을 갖추자.
조별리그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는 오늘(21일) 새벽 (한국시간) 열린 이탈리아와의 D조 2차전에서 전반 44분 터진 브라이언 루이스의 선제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우루과이전 3-1 승리에 이어 2연승을 기록한 코스타리카는 남은 3차전(잉글랜드)에 상관없이 죽음의 D조에서 가장 먼저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캐스터는 루이스의 한방이 코스타리카를 16강에 올려놓은 것은 물론 3차전에서 코스타리카를 이기고 우루과이가 이탈리아에 지면 골득실을 따져 16강에 오를 수도 있는 영국의 실낱같은 희망을 꺾어버렸다고 논평했다. 이처럼 눈 깜짝일 순간의 한방이 도약과 좌절을 가름하는 갈림길이 되는 일이 어디 축구뿐인가?
숨 가쁜 경기에 과열되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난폭한 반칙으로 퇴장 당하여 팀을 패배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선수가 속출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하면 우루과이의 수아레스처럼 매너가 거칠어 악동으로 알려진 선수가 첫 경기에서 패하여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린 팀을 벼랑에서 끌어올린 결정적 수훈(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1차전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을 세우는 등 선수 개개인의 처신과 활약이 팀 전체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일요일, 교우들에게 월드컵 관련 이야기 두 꼭지를 전해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열광했던 우리의 희열과 월드컵의 뒤안길에 서린 아픈 상처를 되새기는 계기를 삼았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1.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월드컵 열기가 천혜경로원에도 들이닥쳤다. 월드컵 축구를 우리들은 강당에서 대형 TV로 시청하였다. 처음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였다. 그러나 16강이 확정되고 우리 식구 모두가 열광하기 시작했다. "붉은색 티셔츠도 몽땅 사왔습니다. 입고 싶으신 분은 입으시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싶은 분은 그림도 그려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더니 붉은색 티셔츠를 불티나게 가져갔고 좀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얼굴을 내맬며 그려달라고 하였다."대한님국', 'KORAEA', '필승' 등으로,,, 얼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재미있어 하며 "태극기 이쁘게 그려주시쑈, 잉.", "나도 연지곤지 이쁘게 그려주시오.'하는 분들도 있고 "내 얼굴을 본께로 참 우습기도 하고 요상스럽기도 하네."하며 혼잣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가 붉은 악마가 되어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응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MBC에서취재를 해갔는데 그날 자정이 넘어서 뉴스시간에 우리 식구들의 응원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8강전이 있던 날에도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에 그림을 그려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얼굴에다 그림 그리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낯바닥에다 발라서 이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르지라우.'"
"우리가 이기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그려주시오."
4강에 오르니 우승도 가능하다고 여겼을까, 준결승전과 3,4위전 때는 아쉬움과 함께 탄식도 나왔지만 곧바로 이만한 성적도 얼마나 감사한 것이냐고 말하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지난 월드컵 때의 그 진한 감동과 기쁨은 아주 행복했던 추억으로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주었던 그 함성이 지금도 어디선가 메아리치고 있는 느낌이다.(내가 쓴 책, '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의 '경로원과 함께 한 월드컵'에서)
2. 라라, 아빠가 갈게
2009년 11월 10일, 독일 하노버 인근 철도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차에 탄 채로 기차에 치여 숨을 거뒀다. 경찰은 그 남자가 독일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인 로베르트 엔케임을 확인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전 골키퍼가 자살한 사건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더구나 그 원인이 알려지면서 애도의 물결은 한층 커졌다.
엔케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대동맥폐쇄증이라는 난치병을 앓다가 두 살의 나이로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팬들은 딸 라라의 사망으로 그가 많이 흔들리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딸을 잃은 후에도 엔케의 경기력은 훌륭하였다. 주변에서는 그를 강인한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정신력을 가졌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엔케도 사람이었다. 그는 딸이 죽고 아무도 모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엔케의 추모 열기는 상당히 뜨거웠다. 남아공 월드컵이 시작되자 독일 대표팀은 엔케의 유니폼을 제작해 그의 사물함에 걸어두었다. "우리의 행진에는 늘 엔케가 함께 할 것이다."는 요아힘 뢰브 감독의 말처럼 엔케를 향한 마음은 모두 같았다. 당시 주장이던 필립 랍 역시 "우리는 엔케를 잊을 수 없다. 월드컵기간 동안 모든 이가 그를 기억할 것이다. 엔케를 생각하며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독일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엔케의 죽음이 더욱더 유명해진 것은 그가 생전에 딸 라라의 묘소에 남긴 글귀 때문이다. "Lara, papa commt." 우리말로 하면 "라라야, 아빠가 갈게"이다. 그는 이미 딸에게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엔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도는 라라의 묘와 불과 2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축구에 전념했지만 결국 딸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엔케는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월드컵이 다가오는 지금, 흥겨운 분위기도 좋지만 엔케를 다시 한 번 기억해보면 어떨까 싶다.(샘터 2014년 7월호, 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의 글에서)
주말을 지내고 모래 새벽,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의 복병 알제리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알제리는 FIFA 랭킹에서 대한민국보다 앞서고 H조 최강으로 평가되는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선전하는 등 쉽지 않은 팀. 태극전사들이여, 러시아전의 조직력과 불골의 투혼을 살려 승리의 슛을 쏘아올려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응원하리라.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지난 18일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조별리그 1차전 때 광화문에서 응원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