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장 에서
이 미 화
어제 구룡포 장에 다녀와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새벽 세시, 맵에 입력된 알람은 해 뜨는 시간에 정확히 맞춰 눈을 뜨라 한다. 한 어부가 그물을 던져 건져 올린 생선이 우리 집에서 민박을 했다. 제가 알아서 제 갈 곳에 가지는 못할 터. 영동장에 데려다 일일 좌판을 벌여 놓고 하루하루 사는 이치를 한 점, 배울 깜량으로 설렌다.
하루가 모여서 삶이 되는 이치. 사람의 머리로 문명을 이뤘지만, 이 장안에서는 에둘러 시간을 지체시킨 풍경들이 쏙쏙 눈에 들어온다. 교통신호는 있으나마나, 도로는 차 반 사람 반, 도로까지 펼쳐진 좌판 등. 하천 둔치 주차장에 고 물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놋화로, 시집 갈 때 가마 안에 들였던 요강, 윗대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물건들이 마음을 도취시켰다.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를 꺼냈다. 내외가 가스 화로를 앞에 두고 앉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니, 구경 값을 치러야 할 것 같다. 낡은 다듬이 방망이를 사는 속셈은 따로 있는 터. 이 것 저것을 물어볼 참이다. 시장 정보를 들을 수 있을까 넌지시 시동을 걸었다. 영동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장이라고 했다. 술 술 풀어내는 점쟁이 마냥 손가락을 꼽아가며 내외가 주거니 받거니,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말은 그들이 하고 판단은 내 몫이다. 장을 보러 오는 지역분포가 넓어 활성화 되고 있는데, 아직은 대형마트가 입점하지 않아 상인들은 다행이었다. 남부로 황간, 추풍령, 매곡, 상촌, 학산, 양산, 무주, 금산 까지 김천이 가까운데, 농어촌 버스를 단일요금제 실시를 해서 더 활기 있는 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봄, 가을 지역 축제도 한 몫 하는데, ‘감 고을 축제’ ‘난계국악 축제’도 있지만 ‘포도 와인축제’는 이미 국제축제에 버금가는 성황을 이룬다고 했다. 또 하나, 한겨울 얼음 암벽등반에 많은 동호인들이 모여든다고 꼬집어 말해 관심이 동한다. 가는 길에 사진이라도 남길 참이다.
차츰 사라져가는 삶의 모습들…. 우리는 감히 역사의 한 점으로 순환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가. 머리가 있어 현명한 몸이 따라갈진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현재와 미래 앞에 그 사람에 몸을 보고 과거를 말해주는 것. 지금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현재는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일어난 일에 의미를 해석한다. 어제의 구룡포 장날 풍취와 오늘 영동장은 물때가 다른 해안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상가에서 낯선 풍경에 호기심이 발동을 했는지 나와서 생선을 살핀다. 이런 생선은 젯상에 올려본 적이 없다면서 누에만한 조기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구룡포시장에서 구경한 고래 반 만 한 생선을 갖다 놓았다면 구경거리가 될 뻔하지 않았나. 옛날을 여전히 옛날로 살고 있는 사람들, 풍토를 고수하는 것일까. 도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 현상을 지체현상이라 하겠지. 있는 만큼 지족하는 사람들, 작은 그릇에 고인 물처럼 고요한 가슴이 전해져 온다. 사치스럽게 널린 구룡포산 생선들을 감추는 것이 낳을 것 같다. 그리고 이질감스럽게 보여질 나는 얼음 암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해 저물기 전에 찾아봐야겠다. 가시거리 맑은 날 생선이 깨끗이 마르고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는다.
머리에 똑같이 생긴 수건을 쓴 여인네들이 한 공장에서 나온 형국인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서로 알근체 할만도 한데, 영 모르는 사람들인가 보다. ‘미장원’이란 간판을 오랜만에 먼발치에서 구경했다. 평범함이 다른 여기, 편이하게 다르지도 않으면서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물속에 얼음 한덩어리가 떠있는 자신임을 발견한다. 녹아지면 같은 물인 것을. 이곳에 오래두어 녹이지 못할 터. 무주에서 과수원을 한다는 텁텁하게 생긴 아저씨가 옆을 양보해준 고마운 정으로 사과 한 상자를 차에 실었다. 하루의 좋은 벗으로 기억되리라. 한 쪽 팔이 불구임에도 조금도 구김이 없는데, 천하에 못 할 짓은 농사라며. 그래도 무청을 얌전하게 말려서 장에 내다 팔아오라고 차에 실어주는 마누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란다. 삶은 타자와의 감성을 포용하여 공존해야하는 수고로움이 따라다닌다. 포항 생선은 포항 생선일 뿐, 거들떠보지도 않아 번거로움을 피해가는 영동 사람들은 참 영혼이 조용하다.
첫댓글 '차츰 사라져가는 삶의 모습들…. 우리는 감히 역사의 한 점으로 순환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가..'
감상 잘 하고 갑니다선생님.
재래시장엔 추억이 서려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요. 더구나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린 한줄의 글을 남길수 있으니 행운이겠지요. 근데, 어름이 아니고 얼음인 것 같은데... 감상잘했습니다. 선생님!
요즘 마춤법이 헛갈릴때가 많아요. 고맙습니다.
요즈음도 놋그릇을 시장에 보인다니 놀랍네요. 옛날 설 준비로 놋그릇 닦는 모습이 떠오롭니다. 그것도 겨우 기왓장 빻은 가루로 힘들게 닦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잘 보았습니다.선생님, 고맙습니다.
영동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장이라고 했다.
술 술 풀어내는 점쟁이 마냥 손가락을 꼽아가며 내외가 주거니 받거니,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말은 그들이 하고 판단은 내 몫이다.
시골장은 정감이 가지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