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춤추면 돌은 웃게나
최현득
고인 하찬석 국수 06시 별세 영남대병원 장례식장 귀빈1호 장지 합천군 야로면…, 09/14 10:51 AM.
9월 14일, 그 날은 내가 화요등산을 가는 날이었다.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그냥 따라 가는 수준이랄까. 고령군을 거쳐 합천군 야로면의 미숭산(美崇山)에 간단다.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는 청금정(聽琴亭)을 코 앞에 두고, 안내판이 번듯한 널찍한 주차장에서 가야산 자락의 아침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키는 그때 문자가 날아온 것이다.
야로 야로, 무엇이 뱅글뱅글 돌다가 머리 속에 콱 박히는 느낌이다. 그 희한하고 생소한 이름을 그것도 한 순간에 몇 번씩이나 되새기게 되다니…. 살다보면 희한한 일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하국수(河國手), 줄여서 ‘하국’, 일본명은 가와모토 마사오(河本正夫).
바둑용어를 쓰자면 그 합천거사가 삶의 돌을 거두었다. 4년에 걸친 암과의 마지막 승부에 지고 삶의 종국을 선언하면서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한 달도 채 안된 8월 20일, 달구벌의 찌는 듯한 열기는 오후 다섯 시를 넘긴 시점에서도 식을 줄을 몰랐다. 나는 영남대병원 안내데스크에서 하국의 병실을 묻는다. 완화의료병동? 겹문이 달린 것도 영 찜찜한 기분이다. 맨머리에다가 늘 누워만 있는 모양새다. 불과 석 달 전까지 함께 당구를 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타고난 승부사요 강인하고 중후한 이미지의 그가, 아파서 서너 시간을 겨우 잔다고 스스로 푸념한다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간병인이 너무 푸근하게 보인다. 옆 병상의 간병인들까지 눈길을 주며 반기는 분위기다. 호스피스…, 아하 말로만 듣던 호스피스들이로구나. 그러니 그들이 푸근하고 친절할수록 하국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신호가 아닌가. 이럴 땐 자신의 영악한 판단이 싫어진다. 대화보다 더 긴 침묵의 시간들―. “빨리 나와서 한 게임 해야지요.” 덜떨어진 위로가 나의 마지막 말이 되었고, 희미하게 웃으려고 한 시늉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하국수, 국수(國手)라면 한때 이 땅의 일인자였다는 얘기다. 그리고 누군가의 표현처럼 ‘벚꽃처럼 짧고 화사한 전성기’를 누렸다. 70년대 전반기의 2,3년간이었고, 당시는 우리나라 바둑계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조남철 김인의 시대와 조훈현 이창호를 연결하는 전환기로, 조남철을 제친 김인의 자리를 놓고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서봉수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불세출의 천재기사라는 전신(戰神) 조훈현의 등장, 그로서는 운명적 불운이었다. 전신에게 처참하게 무너진 이후 그의 행로는 꺾이고 만다.
나와의 만남은 90년대 초, 그러니까 승부사로서보다는 낙향해서 바둑의 보급에 전념하던 때다. 직장바둑대회가 인연이 되었고, 내가 대구시청이라는 덩치 큰 직장의 간판쯤 되었으니 그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아마추어였을 성 싶다. 나로서는 한 분야의 일인자를 사귄다는 호기심과 그에 따른 스케일이 매력이었다. 인연이 이어진 것은 술 때문이니, 말하자면 우리는 술친구였다. 세게 마셨다. 주종불문 두주불사의 호기를 자랑하면서 자정이 넘어야 슬슬 술 사냥을 나서던 시절, 그것도 하나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수무석소(水舞石笑).
그의 한국대표기사휘호선(韓國代表棋士揮毫扇) 자필 휘호다. 언젠가 나에게 준 그 부채는 이제 유품이 되었다. 젊은 날 일본 땅 기다니(木谷) 도장에서 바둑 내제자(內弟子) 시절 익힌 솜씨일 것이다.
물이 춤추고 돌이 웃는다? 가물가물한 바둑의 이치를 비유한 말일까, 아니면 반상 19로 한 자 남짓한 바둑판에 인생을 건 허전함을 빗댄 것일까. …나가사키와 교오모 아메닷다(나가사키에는 오늘도 비가 내린다)…. 그의 노래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하다가 이내 흐느낌으로 변한다. 일본과 서울이 그가 지향하는 꿈이었다면 대구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일인자의 권도와 고독 또한 숙명일 것이다.
이름조차 그럴싸한 백낙천(白樂天), 근대바둑의 절정고수인 오청원(吳淸源)이 그의 시를 좋아했단다. 하국에 대한 마지막 선물을 가야산 하늘 위에 띄워 보낸다.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痴人)
비좁은 곳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번개 같은 세상에 이 몸을 두었으니
잘살든 못살든 그저 즐거워
웃지를 못한다면 바보나 천치로다
-'대구의 수필' 2010년 제6호
첫댓글 최현득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왕이면 우리 카페에서 회원님들끼리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무국장님 수고 많습니다. 우선 오프라인을 확보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때가 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국수를 친구로 두셨으니~~
선생님의 바둑 실력을 짐작하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끼리 바둑 바람을 일으켜 보는 것도 좋을듯요~~
입소문 좀 부탁 드립니다. 길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글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모임도 관심이 가는데....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어
저 강촌, 바둑 돌 가는 길 좀 아는데...
바둑메니아 옆지기 벗이 되어볼까 하고
신혼 애초에 배워두었것만...
아아 안타깝다.
문인들의 바둑 모임 만들 줄 알았더면 대구에 머물렀을 것을......
안타깝소이다.
비록 소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오나 그 오묘한 바둑 모임,
성황을 비나이다.
우리 여성바둑도 세계적 수준이지요. 한류에 한몫하는... 대구의 바둑문화에 의미 있는 점 하나 찍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