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유예 선언 이후 초고층빌딩 불 꺼지고 건설사업 줄줄이 중단
쇼핑몰엔 외국인 관광객…두바이 공항도 북적…시들지 않은 중동 허브
지난 3일 세계 최대 쇼핑센터인 두바이 몰(Dubai mall)은 섭씨 44도의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쇼핑객들로 붐볐다. 온갖 인종의 전시장이었다. 특히 유럽에서 온 쇼핑객들이 절반은 되어 보였다. 평일인데도 휴일 서울 명동의 대형 백화점보다 더 붐벼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부르즈칼리파(Burj Khalifaㆍ162층) 빌딩의 전망대는 한 달 가까이 예약이 거의 다 차 있었고, 인공 섬 팜 주메이라에 세워진 아틀란티스 호텔 역시 로비와 레스토랑이 유럽에서 휴가 온 투숙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막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두바이의 월가식(式) 경제 모델은 파탄을 맞았다.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자본)에 의존한 경제 모델 말이다. 그리고 따라온 것이 반 토막 난 주택 가격과 불 꺼진 초고층 빌딩,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들의 엑소더스(exodus)였다.
최근 두바이월드가 채권단과 235억달러 규모의 채무 조정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두바이 경제가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당분간은 감속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 두바이 사태 이후 멈춰 선 인공섬‘팜 제벨알리’의 공사 현장. / 블룸버그
이 회사의 팀 클라크(Clark) 사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3만8000여 직원들의 출신 국가가 156개국이라는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대형 세계지도 앞에서 마치 브리핑하듯 인터뷰를 한 그는 "두바이는 100년 후 지구 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도 했다.
- ▲ 다양한 인종의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들. 이 회사 직원 3만8000명의 국적은 156개이다. / 에미레이트항공 제공
그는 25년 전 이 회사 창립 당시 다른 항공사에서 스카우트돼 회사의 장기 비즈니스모델을 짜는 일을 했다. 그는 허브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바이에서 허브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등 뒤 대형 지도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자, 지도를 보세요. 두바이에서 8~10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을 그려보면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이 다 들어갑니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고속 성장에는 두바이 정부의 지원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180㎝쯤 돼 보이는 키에 깡마른 체구의 클라크 사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들었다. 2009 회계연도 연차 보고서였다.
"이 책에 정부 지원과 관련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사장직을 그만두겠습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창립했을 때 왕족인 셰이크 아흐메드 회장은 경영진에게 딱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은 대로 일하라. 단 정부 지원은 절대 요구하지 말라. 수익을 내지 못하면 망하게 될 것이다'라고요."
두바이 정부는 일찌감치 '오픈 스카이(Open Sky)' 정책을 시행했다. 두바이로 운항하려는 모든 항공사들에 하늘을 아무 조건 없이 완전히 열어준 것이다. "오픈 스카이 정책과 함께 경쟁이 시작됐죠. 남보다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게 됐고요. 하지만 그 경쟁이 결국 우리의 오늘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 경제위기에 파묻혀 패러다임 변화를 놓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항공업계는 총 94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에미레이트항공은 인천과 방콕, 토론토, 파리, 제다의 5개 노선에 '하늘 위의 궁전'이라 불리는 A380을 신규 투입했다. 대당 가격이 4500억원에 이르는 초호화 여객기이다. 또 카불과 더반, 루안다, 도쿄의 4개 노선에 신규 취항해 취항지가 102개 도시로 늘어났다.
"어려운 시기에 너무 공격적이지 않느냐"고 묻자 클라크 사장은 대답 대신 기자에게 되레 질문을 했다.
"중국 청두(成都)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상당히 많을 것 같긴 한데요…."(기자)
"1100만명입니다. 그런데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운항되는 비행기는 일주일에 한 편에 불과했어요. 영국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한 도시에 모여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청두 시민이 주로 어떤 산업에 종사하는지, 그들이 만든 제품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두-라고스 노선에 타보면 비행기 안에서 늘 아프리카 상인을 최소 50명은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와서 1달러를 주고 산 제품을 다시 가져가서 150달러에 파는 사람들이죠. 전에는 본 적 없던 새로운 고객들입니다. 하하!
인터뷰는 에미레이트항공 본사 9층 사장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유리창 너머로 에미레이트항공 비행기로 가득 찬 두바이 공항이 훤히 내려다보였고, 한쪽 벽면에는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공항 쪽을 가리키며 "나는 항상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위기라고들 하는데….
"사람들은 경제위기에 파묻혀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세계인들의 생활 스타일과 패러다임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가령 중국 청두나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 가도 이제는 유럽의 어느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 신발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고 CNN이나 BBC월드를 보고 있지요.
브라질에선 2006~2010년 사이에 중산층이 4000만명 늘어났어요. 그리고 그들은 서양 사람들보다 더욱 자주 여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한 항공사가 상파울루 노선을 며칠 간격으로 운항한 줄 아세요? 3주에 한 번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세요? 그래서 우리는 상파울루 노선에 매일 취항하는 최초의 항공사가 됐습니다."
그는 "세상은 계속 열리고 있고, 우리는 더욱 많은 지구상의 점들을 연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생 때 버스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그는 "항공사는 버스회사와 같다"고 말했다. 결국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리서치가 중요하다는 점도 똑같다. 버스가 텅 빈 채 운행한다면 버스 노선에 대해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사의 경우 실패의 대가는 더욱 쓰라리다. A380이 두바이에서 뉴욕까지 한 번 가는 데 드는 비용이 약 5억원에 이른다.
"그래서 저희는 매우 우수한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 여기저기 시장을 늘 평가합니다. 그 시장에 직접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리서치 결과를 본사에 가져와서 논의할 때 모든 수치를 소수점 4자리까지 따져 보며 정리합니다. 제 역할은 위험 요소들을 일일이 따져 보며 '이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담함을 보이지 않으면 단 한 번도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왜냐고요?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늘 101가지는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십 년 전의 위치에 그대로 안주하고 있는 다른 항공사들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강점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대담한 결정을 내리는데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항공업계는 테러·고유가 등 외부 변수에 늘 노출됩니다. 경영자로선 어느 업종보다도 힘든 일 같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1년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돌발사태가 벌어질 것이니까 항상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9·11 테러가 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화산재에 지진에….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돈을 받고 일하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모든 문제엔 해결책이 있습니다. 밑으로 가든, 돌아서 가든, 위로 넘어서 가든 어떻게든 넘길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긍정적으로 행동하라.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지언정 무언가를 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라. 이것이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추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 같은 경우 A380 3대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 운항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떡하지…'라고 말하며 앉아서 고민만 할 순 없습니다. 매일 147대의 비행기가 평균 15시간을 운항하며 수천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잖아요. 몇 주 시간을 내서 생각해 보자는 옵션이 우리에겐 없어요. 우리는 2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 다양성의 힘
―150개 국적을 가진 직원들이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코스모폴리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에서 최고의 가치만을 뽑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에미레이트 항공입니다. 다행히 서로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하나로 합쳐져 창출해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매년 발표하는 실적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하실 겁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 다음으로 코스모폴리탄 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변화와 성장에 열려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일본인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저부터 일본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말하는 정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문화와 음식, 전통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가 두바이에 있어서 좋은 점은?
"두바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이는 우리 회사의 가치와도 일치합니다. 두바이는 세계의 비즈니스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먼 미래를 내다보는 베두인(아랍계 사막 유목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9·11 테러가 났다거나, 사스(SARS)가 창궐한다고 해서 성장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늘 먹고 싶고, 여행하고 싶고, 잘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계획해야 할 때는 다릅니다. 비즈니스의 미래를 봐야 하기 때문에 평생 살 것이라는 전제하에 계획해야 합니다."
―두바이 경제를 전망한다면?
"뉴욕, 런던, 베이징 등 세계 주요 도시들 중에 어느 도시가 가장 먼저 회복할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두바이에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두바이의 일부 오피스와 주거지가 비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두바이는 어쩌면 이번 세계 경기 침체에서 오히려 영국 같은 나라보다 더 좋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클라크 사장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 시간 역시 그의 해외 출장 일정 때문에 45분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시간은 1시간 20분으로 늘어났다. 비서들이 몇 차례 재촉하자 "질문이 더 없느냐"고 기자에게 물은 뒤 그제야 기자에게 인사의 악수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