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곳곳을 어슬렁 거리는 들개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도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허둥거리는 인간들의 허섭한 일상..그 부질없슴을 저렇게라도 깨우쳐주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곳은 버려졌구나..
천 칠백년 여를 화산재에 묻혀있던 너무 오래된 버려짐
아직도 저 잿빛의 먼지를 풀풀 날리는 쓸쓸함
그 적막한 폐허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비상식과 몰개성의 날들
기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쓸쓸한 관광지
순례자는 비밀을 알 수조차없이 다만 그 과거를 추측할 뿐이다
한 때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었을까
그러나 이젠 저렇게 그 모든 것들이
우물에 가라앉아 버린 동전처럼 쓸모도 없이 버려져있다
가라앉아 버린 것은 그 정지가 오랠수록
다시 수면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않은 법이지
하지만 흔적이 남겨진 곳은
누구든 그 언젠가는 찾아들게되는 법이잖아
그 오래 전처럼 이곳이 여기있으니까
도로 곳곳에 박힌 야광돌
흐릿한 빛에도 발광해 밤에도 도로임을 알려주었다는 점점히 박힌 야광돌
당시 경제와 사법의 중심지였다는 바실리카
지금도 휴화산인 베수비오 화산
루파나레라 불리우던 홍등가로 들어가는 골목임을 알려주는 바닥 표지판^^
한평 남짓한 작은 방에 저렇게 돌로 침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매트를 깔고 사용했다 하네
방 마다 출입구 위쪽에 창녀들의 성행위를 사실감있게 그린 벽화
침대도 그림의 용도에 맞게 만들어 놓고 사용했다하데
차마 올리지못한 폼페이의 다른 프레스코화에는
유난히 남성의 성기를 과장되고 적나라하게 표현 했더라^^
홍등가 입간판
수로에 놓인 징검다리
상가의 셔터 자리
하수도
BC 79년 8월 제정 로마시대의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번영과 쾌락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분출하는 화산재에 묻혀 영원한 비극의 도시가 되고말았다
당시 폼페이는 농업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귀족들의 피서지와 피한지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3만의 인구 중 이천 여명이 도시와 함께 매몰된 폼페이가
17세기에 이르러 도로 건설에 종사하던 건축가 몬타나에 의하여 발견되어
조직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된 1748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현재 3/5 정도가 발굴되었고
흥미로운 자료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고 한다
돌로 된 포장도로 대리석과 벽돌로 지은 벽과 집
수도와 목욕탕 등 당시의 뛰어난 도시계획과 폼페이 양식을 알게 되었다
출토품 중에는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많다
우선 광장과 아본단자 스타비아 메르쿠리오 등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형태를 살펴보면
하수도와 목욕탕 극장 레스토랑 공중 화장실까지 갖춰진
각종 시설이 현대의 도시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고
도로 역시 잘 포장되어 있어 당시의 번영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건설 중이었다는 중앙 목욕탕
체육관 탈의실과 화장실은 물론 수영장까지 갖춘 온천탕으로
오늘날의 사우나와 비슷한 라코니쿰이라는 부속 건물을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폼페이에 쾌락주의를 팽배시킨 목욕탕 문화가 발전했던 것은
활화산이었던 베수비오산이 양질의 온천수를 공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피자집 화덕
이태리의 피자집들은 지금도 저 화덕을 사용해 피자를 굽는다
경기장
화석이 된 사람
갑자기 폭발한 베수비오산
미처 피하기 못한 사람들이 화산재와 유황가스에 중독으로 목숨을 잃고 땅에 쓰러지자
마침 비가 내려 쏟아져 내리는 화산재가 마치 시멘트처럼 도시를 감쌌겠지
폼페이는 그렇게 순식간에 수미터 두께의 화산재에 파묻히고..
첫댓글 그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