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셉 메들리칼 스크리븐
(Joseph Medlicoft Scriven, 1819 ~ 1886)
스크리븐은 모든 찬송가집에 실려 세계적으로 애창되고 있는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의 작시자다.
그는 1819년 9월 10일 아일랜드 다운(Down)군
씨패트립(Sea-patrick)에서 태어나
(어떤 기록에는 1820년 더블린에서 태어 났다고 한 곳도 있음)
더블린의 트리니트 대학을 졸업하였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왔고 장래가 크게 기대되는
젊인이로 플리머드 형제단 신자 가족으로 매우 믿음이 돈독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의 생애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쾌창한 봄 날처럼 밝아야만 하는그의 생애가 음산한 늦가을처럼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한 삶으로 접어 들게 되었다.
즉 그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일랜드 처녀와 약혼하고 행복한 앞 날을
꿈꾸고 있는데 1840년 결혼 전야 그 처녀가 익사하고 말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큰 시련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비참하게 행복의 문전에서 산산 조각이 났으니
약혼녀는 물에 빠져 죽었거니와 스크리븐은 깊은 슬픔의 강에 빠져
익사하게 되었다.
그는 이 슬픔을 잊기위해 사관학교에 들어 갔으나 몸이 허약하여
훈련을 감당할 수가 없어 그 꿈마저 깨어졌다.
이제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수술을 받는 사람의 고통처럼 그는
그 엄청난 슬픔을 중화시킬 묘안 없이 그대로 당해야만 했다.
그는 프리머쓰 형제단의 교리를 찬성하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주장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웃사람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그의 마음이 아팠고,
사랑하더 약혼녀가 목숨을 잃은 곳에서 살기가 지겨워
그는 1845년 그의 나이 25세 때 어머니를 고국에 남겨 놓은 채 캐나다로
이민 갔다. 삶의 환경을 바꾸어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슬픔을 잊어보려는
시도였다.
캐나다에 도착한 그는 오타리오 주 롸이스 레이크 (RiceLake) 부근
펭겔리(Pengelley) 영지에서 가정교사로 이었고 후에 수 마일 떨어진
비들리(Bewdley) 의 제임스 색빌(James Sackvi-lle)씨 댁의 가정교사일도
보면서 두 곳을 전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자로서 틈만 있으면 고아와 가난한
과부들, 그리고 병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 이라고 했고,
앨버트 로낸더(Albert C.Ronander)와 에텔 포터(Ethel K.Porter)는
그를 성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꾸고저 하는 자에게 결코 거져
돌려보내지 않은 사람이요,
온타리오의 추운 겨울 거리에서 헐벗고 떠는 사람을 만나면 하나밖에 없는
그의 외투를 벗어주고 대신 떠는 사람이었다.
평생 집 한 채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며 남의 일을 도우며 봉사하다 갔으니
더러는 구룰 미친 사람이라고 까지 불렀다.
이제 그는 아이 60이 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톱과 목마(木馬)를 메고 나니며 그의 도음의 손길이
미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신사가 걸어 내려 오다 스크린본 영감을 만났다.
한 사람은 스크리본을 아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그 도시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 친구에게 건네는 말이
“자네, 저 영감을 아는 모양인데 우리 집 장작을 좀 패주도록 소개해 줄 수
없겠나?
“응. 소개는 해줄 수 있지. 그러나 저 노인은 자네 집 장작을 패줄 사람은
아닐세, 자네가 품삯을 지불한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응 모를 걸세, 자네는 우리 마을로 온지가 얼마되지 않으니까 말야-.
저 노인은 한평생을 우리 마을에서 보낸 사람으로 성자와 같은 분이라네.
언제나 불쌍한 과부들이나 아니면 병들어 거동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만 찾아다니며 무료로 봉사해 주시는 분이시지-.
그러니까 품삯을 낼 형편이 되는 집의 일은 아예 맡지도 않는다네-.
아이라 데이빋 생키(Ira David Sankey) 는 그의 부흥 집회 기간중
죠셉 스크리본이 포트 호프(Port Hope) 의 어떤 거리를 톱과 목마를 메고
터벅 터벅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며 분명히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에 관해 기록하기를 :
그는 작은 키에 다갈색의 머리였고, 짧게 깎은 수염에다
그가 말할 때 빛났던 연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는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하였으며,
그와 매우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말하기를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고 하였다.
그러나 가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큰 고통이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올 때부터 그의 마을을 늘 멍들게 하였더 우울증이 두 번째
약혼녀 엘리자 캐더린 로쉬(Eliza Catherine Roche) 양이
결핵으로 시름 시름 앓다가 1860년 세상을 떠나 한층 더 심해졌고
돈 없는데다 건강이 악화하여 가난하고 병들어 아직까지 그가 돌봤던
그 친구들에게 오히려 짐이 되지 않을까 하여 심히 염려하였다.
그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사랑을 행하며 친절을 베풀었으나
그들에게 갚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떤 날 밤 이었다.
스크리븐이 중병으로 몸져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랑을 입은
친구 하나가 그를 찾아 갔다.
그런데 그 날 밤 비극이 일어 났던 겄이다.
그의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나는 잠 자정쯤 그를 남겨두고 옆방으로 갔읍니다.
쉬려고 건 것이 아니라 밤 새우며 그가 나를 필요로하여 부를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였지요.
그런데 내가 그의 방을 찾았을 때 그의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놀라며 낙망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를 찾아 헤매었으나 헛수고였고 정오가 약간 지나서야 인근 개울
물속에서 이미 싸늘해진 그의 시체를 발견하였읍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1886년 10월 10일 비들리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죽음이
사고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알길이 없다.
그런데 어니스트에뮤리안(Ernest K.Emurian) 은 그의 저서
「유명한 찬송가의 생생한 이야기들 (Living Stories of Famous Hymns)」
(p.139)에서 이르기를 스크린븐의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는 늘 기도하던 때처럼 무릎을 꿇고 죽었다ꡓ 고 하였다.
어찌 죽었든지 비들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아픈 비보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온타리오 포트 호프(Port Hope) 사람들은
피터바로우(Peterborough) 고속 도로 변에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 고속 도로는 온타리오 호수로부터 뻗어 내려온 것이다.
이 기념비에 기록되기를
북쪽으로 4마일에 있는 펭겔리 공동 묘지에는 박애주의자요 1857년
포트 호프에서 쓴 위대한 걸작품의 작시자 죠셉 메들리캍 스크리븐이
누워 있다.
(하토브 주: 조 스크리븐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열병으로 목이 너무 타올라, 물을 마시러 개울로 갔다가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그가 운구될 때에 수천명의 노동자들 특히 철도 건설 노동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그는 약혼녀의 죽음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철도 건설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하면서 그들을 위로하며 도왔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로 번역된 찬송가 “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얼마나 좋은 친구를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갖고 있는가! 의 찬송가는 그후에 불후의 찬송가가 되었습니다만 그 가사 내용은 원문과 많이 상이합니다. 이 찬송은 북미에서 자주 애창되고 있습니다.
스크리븐은 형제모임의 여러 음악가들중 하나이지만 형제모임의 대표적 찬송작가로는 제임스 덱크로 보입니다. 그의 훌륭한 찬송들은 한국에는 하나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이 글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글인데 어느 분의 글인지 모르고 옮겨왔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이 분의 생애를 읽다보니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다른 사람을 여전히 판단정죄하며 화내곤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선행에도 얼마나 생색을 내는지...
하나님께서 아시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어야만 하는 이 속좁은 자를
주께서 용서하시고 마음을 넓혀주시길 기도하게 됩니다.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Port Hope 는 토론토 동쪽으로 80 킬로미터 쯤 가면 나오는데 그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도시에서 나온 또 하나 유명한 사람은 몇년전 폐암으로 죽은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 라는 ABC 뉴스 앵커였습니다.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는 오직 거듭난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찬송입니다. 그 체험이 없이 이론으로 아는 것은 수박의 겉을 핢고 맛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이찬송을 학생때 많이 좋아 햇었는데..이런 놀라운 사연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읽어내려 오면서 스크리븐은 자살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햇는데....같은생각을 마지막 부분에 적어 놓으셨군요.
감동적이지만 역시 이세상은 슬픈곳 이고 이분을 통해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가 계신다는것 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라니....
늘 기도하던때 처럼 무릎꿇고 죽었다고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자살이라고 볼수는 없네요.. 무릎을 꿇었다는 의미는 그만큼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행동중 하나입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