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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카페 게시글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조선사회 뒷마당 과거제도] 대리시험, 커닝, 시험관 매수… 타락의 극치 보여준 양반들의 잔치
이장희 추천 0 조회 46 15.07.28 22:1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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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28 22:47

    첫댓글 조선 후기의 과거 시험 합격을 위해서는 세가지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그래도 실력이지요. 둘째는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는 식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알성시 증광시 등 수많은 특별시험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시험은 예고없이 갑자기 시행하는 경우가 많고, 예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과거에 응시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촉박합니다.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서울에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면 지방에 있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요.

  • 작성자 15.07.28 22:49

    정확한 이야기입니다.그래서 서울 사는 권문세가의 자제들이 많이 합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 15.07.28 22:59

    @이장희 이 원장님! 감사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쓴 글에 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 15.07.28 22:48

    셋째는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공부도 할 수 있지만, 서울을 왕래할 수 있는 여비도 있어야 하고, 서울 체류 비용도 있어야 하니, 집안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과거 합격은 어렵습니다. 조선후기에 특정가문이 과거 합격을 독식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 15.07.28 22:56

    위의 기준에 따라 본다면, 과거 합격이 가장 쉬운 사람은 서울에 있는 집권 노론의 자제가 되고, 그 다음은 지방에 있지만, 경제력이 탄탄하여 서울에서 장기 체류할 수 있는 비용을 부담할 수 지방 부자가 되겠습니다. 셋째는 지방에서라도 과거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인데, 이 사람은 최소한 몇번의 응시기회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주 뛰어난 인물이라서,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의 도움으로 과거 응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약 두세번 떨어진다면 주변의 후원은 기대하기 힘들겠지요. 과거 응시도 포기해야 되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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