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길 소설집 [안개꽃 지다]
소설가 정안길 선생이 소설집 『안개꽃 지다』를 2014년 4월 15일 발간하였다. 정안길 작가는 1982년부터 ‘오늘의문학’에 참여, 오십여 편의 단편소설과 [백마강] [종이새의 지평] 등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소설 [백마강]으로 제16회 일붕문학상 대상 외 몇몇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정작가는 한국문인협회 부여지부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소설가협회 등 여러 문학단체에서 활통하고 있다. 현재는 [백마강] 후편과 필자의 숙원인 대하소설 [인연]을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 집필 중이다. 저자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저자의 서문
세상을 보는 눈이 다섯 발짝에도 미치지 못하던 유년에, 소설이라는 광대 무극한 굴곡진 험로를 들어서 총알같이 빠른 세월의 수레바퀴에 거북이걸음으로 그 허무의 길섶에 다다라서야 우두커니 서서 세월을 돌아본다.
일찍이 망부(亡父)의 숙원이 열병의 도가니에 빠진 업보연기(業報緣起)라고나 할까. 암튼 그 세월의 덫으로 굼뜬 희수노구를 이끌고, 백수노모의 요양원을 드나들면서 바싹 야윈 손을 부여잡지만, 메마른 손길은 이미 바스러져 서걱거리는 억센 갈색풀잎일 뿐으로, 인생은 잔인한 꿈이란 자각에 머문다.
삼십여 년 전 세상을 뜬 京山 金慶煥선생의 옥련몽 사설에 빠져 소설의 꿈을 키우고, 선친의 미제 업(?)과 더불어 일대기를 스스로 물려받은 평생과업으로 사색의 얼개에 목은 걸었지만, 영원한 습작, 무재의 필패 그 눈높이는 여전히 헛헛한 길 위에서 일월 공전에 초점 잃은 눈길을 보낸다.
이십년 전 단편집 ‘무지개 영혼’을 상재한 뒤, 두 번째 단편집 ‘안개꽃 지다’를 내놓고 보니,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정녕 길지 않은 인생을 치열한 몸살로 흘려보냈지만, 이제는 쓰고 싶어도 더는 쓰지 못하는 촌음시경(寸陰是競)의 찬스마저 망실한 채 숙원의 장편소설에 매달려 좁고 막다른 고샅길에서 꼽추의 춤사위마냥 어쭙잖은 습성으로 여백을 메우는데 천착한 것일까.
사치스러운 허무의 무지개를 보면서 소설이 곧 인간사임을 통감한다. 남자로써 곧잘 여자가 되고, 다시 남자로 돌아와서는 그 진실 속에 묻힌 삶의 방정식을 찾고, 그 탐색의 길목에서 이성(異性) 사이를 넘나들면서 끝없는 지평을 달리던 해괴했던 생태였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연약한 풀잎과도 같아서 바람이 불면 그 본성대로 엎어지거나, 자빠지는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의 동물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흩날려 떠도는 편린들을 하나둘 주워 모으는데 눈을 팔았다. 두 번째 단편집 또한 펴내주신 오늘의문학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4. 3.--백마강변 正山精舍에서 필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