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無邪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8.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 배길관 충북대 명예교수
사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기 위해서 생각한다. 동물의 세계는 도덕이 없다. 짐승들은 살기 위해서 생각할 뿐 그 생각에 선악의 구별이 없다. 인간은 도덕 질서 안에서 산다. 도덕 질서 안에서 산다는 것은 선의 원리와 악의 원리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은 天理(천리)의 양심으로 선을 생각하고 生理(생리)의 욕심으로 악을 생각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산다.
공자는 「시경」에 있는 시 삼백여 편을 한마디로 평하여 ‘思無邪(사무사), 생각에 奸邪(간사)함이 없다’라고 하셨다「논어」. 「시경」에 있는 311편의 시가 모두 도리에 맞기 때문에 그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고 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배우는 사람은 그 뜻을 헤아려 생각하는 것마다 바르게 하면 일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라고 가르친 말씀이다. 邪(사)는 사악하고 간사한 것이다. 邪는 私(사)에서 생기고, 私는 욕심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생각에 邪가 없음은 곧 욕심이 없음이요 私가 없음이다. 율곡 선생은 ‘사람이 그 본심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私邪(사사)가 있어 본심을 가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생리적인 삶의 욕심 때문에 천리의 선한 양심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사람의 일생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연속이며, 생각은 말과 행동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사사로움(私邪)이 없는 생각에서 선하고 진실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思無邪者誠也(사무사자성야), 생각에 간사함이 없음은 성실이다「논어집주」. 중국 송나라 시대 유학자 정자의 말이다. 誠은 참이요 성실이요 진실이요 정성이요 거짓이 없음이다. 誠은 인륜의 근본이요 마음의 본체이며 至誠(지성)은 至善(지선)이요 양심이다. 「대학」에 ‘誠於中形於外(성어중형어외), 마음이 성실하면 밖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안으로 그 생각이 성실하면 밖으로 그 언행이 지혜롭고 미덥게 된다. 그러나 그 생각에 거짓이 섞이면 백 가지 언행이 다 부실하게 된다. 至誠感天(지성감천)이라 하지 않던가. 지극한 성실에서 나오는 언행이라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 성실의 반대는 거짓이며, 그 거짓은 욕심에서 생긴다. 즉 思無邪(사무사)는 생각에 욕심이나 거짓이 없음이다.
생각하는 것은 사는 것이다. 사람은 잠시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일고 지는 그 많은 생각의 대부분은 사사로운 욕심에서 생기는 허망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고 그 생각을 어질게 하는 것을 이른바 克己(극기)라고 한다. 즉 사무사는 양심으로 욕심을 다스리고 선으로 악을 물리치고 의로운 정신으로 간사함을 극복하는 克己와 같은 마음의 상태이다.
생각은 마음의 본체인 성품이 주위 환경에 반응하여 작용하는 감정의 일면이다. 그러므로 생각에 간사함이 없으려면 그 성품이 참되고 선해야 한다. 성품을 참되고 선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셨고, 순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는 성실(誠)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셨다.
첫댓글 생각은 마음의 본체인 성품이 주위 환경에 반응하여 작용하는 감정의 일면이다. 그러므로 생각에 간사함이 없으려면 그 성품이 참되고 선해야 한다. 성품을 참되고 선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셨고, 순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는 성실(誠)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