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구원의 문
요한복음 10:7-11.
오늘 새벽기도회 나오실 때 아직 현관문을 여실 힘은 있으십니까? 그만한 힘이 있으면 아직 괜찮습니다. 저희 어머님 살아계실 때 보니깐 현관문 열고 닫을 힘만 있어도 혼자서 사셔도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연세 드니깐 어느 날 갑자기 현관문도 못 여시고 힘이 약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라디오 및 텔레비전 작가인 안디 로네이(Andy Rooney)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을 닫으면 사생활의 보장과 안락함을 가져올 수 있다. 반대로 문을 열면 테러가 들어 올 수 있다. 반대로 문이 닫히는 것은 슬픔과 마지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것은 매우 즐거운 순간이 될 수 있다. 문은 이렇게 전혀 다른 역할 할 수 있습니다. 문을 닫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쁠 수도 있습니다. 문은 기회를 비유할 때 사용 됩니다. 문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가 여리는 것 같이, 기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줍니다. 그런데 문에 대하여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을 어떤 곳에 들어가고 나갈 때 열려 있는 것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웹스터 사전에 정의하기를 문은 어떤 건물이나 방에 들어가는 것을 열고 닫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은 여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닫는 것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기회도 열리고 닫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한 없이 열러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기회는 닫히는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회의 문이 닫히면 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 편지하시면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계 3:7)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잔치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기름이 다 떨어져서 가서 기름을 사가지고 오느라고 신랑과 같이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문이 닫혔습니다. 그래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대답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하면서 끝내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한번 기회의 문이 닫히면 열 자가 없습니다.
요양병원에 심방 갈 때마다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들어갈 때는 내 마음대로 들어가나 나올 때는 문을 열어주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들어온 자들은 다시는 그 문으로 나오실 수가 없습니다. 죽어야만 나오실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요양원에 있는 분들이 너무나 불쌍해 보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지난주에도 이런 생각으로 심바방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너는 왜 이 분들이 들어온 뒷문만 생각하느냐 ?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앞문은 왜 못 보느냐 ?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들이 들어온 뒷문은 닫혀져서 다시는 그 문으로 나갈 수 없으나, 그들 앞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문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그 분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군대에 가면 보충대가 있습니다. 그 보충대에는 처음 군대에 온 신병들도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가지만, 제대를 명받은 군인들도 예비군 복을 입고 잠시 머물다가 제대를 하여 군대를 나갑니다. 새로 부대에 들어온 신병들이 이 제대하는 제대병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요양병원에 있는 분들은 이렇게 이제는 이 세상을 제대하고 천국에 가기 위하여 잠시 보충대에서 대기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큰 깨달음은 뒷문을 열려고 하는 자들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문을 열려고 하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요양원에서 나가겠다고, 들어온 뒷문을 열어달라고 난리를 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또한 그들이 불쌍합니까 ?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고 했습니다. 기회의 문은 앞에 있습니다. 앞에 있는 기회의 문을 열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뒤에 문을 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앞에 놓여 있는 문, 우리 모두가 바라보고 찾아야 할 문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들은 행복하게 소망 중에 사는 자들이 됩니다.
1. 천국의 문은 앞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문이 된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면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구원의 문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천국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앞에 있는 구원의 문,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뒤를 바라보고 뒤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불쌍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까를 염려하며 사는 자들은 뒤의 문으로 다시 나가려고 하는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고 하셨습니다. 세상 바라보지 마십시오.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렇게 살면 인간이 불쌍해 집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이 문이 열립니다.
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열립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문을 열어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셨습니다. 양에 우리로 들어가는 길은 양의 문 밖에는 없습니다. 뒷문으로도, 창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자들은 선행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행으로, 자기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들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구원의 길을 찾는 자들,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선행에 힘쓰는 자들은 요양원에 들어간 분들이 다시 나가려고 악을 쓰는 것과 같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본인도 불쌍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음 아프게 하는 자들입니다.
3.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어야 이 문이 열립니다.(계20:11-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유혹이나 시험과 환난이 와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편지 하기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4. 천국에 들어가는 표는 공짜입니다.
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는 표는 공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은혜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표를 사려면 그 표는 그 무엇으로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표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진 자도 없으며, 그 표를 살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도 없습니다. 그 표를 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도 없습니다. 그 표를 살 만한 선행을 한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표 값은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이미 다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온 인류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표를 구입해 놓으셨습니다. 단 한 장도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구입해 놓으셨습니다. 이 표는 이 복음을 믿고 그냥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표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없습니다.
5.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들어오는 자들 중에 거절하는 자들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은 찾아오는 자들은 거절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열어 놓으셨으며, 또 찾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열어 주시지만, 그러나 강제로 들어가게는 하시지 않으십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본인의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구원해야할 자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계속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금식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습니다. 아직도 믿지않는 부모, 자녀, 형제.자매들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여 전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