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재수 없다는데, 이럴 수가, 어디?”
확인하듯 다시 가까이 드려다 보는 것을 뜨거운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선희는 불빛이 감은 눈꺼풀을 뚫고 붉은 색이 되어 눈을 찌른다.
태무가 양 발을 힘줘 잡고 가랑이를 벌리고, 꼼짝할 수 없게 무릎으로 말뚝 박듯 찍어 누른다.
으스러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목이 부러지도록 머리를 흔들어 댔다.
가까이 들여다보는 태무의 내쉬는 숨이 뜨겁게 사타구니 사이를 덮친다.
불에 덴 듯 뜨겁고, 쏘아보는 눈길이 비수가 되어 후벼 파는 듯 느껴진다.
치욕이 목을 비튼다.
흔적 없이, 훅 날아가 버리고 싶다.
“정말 재수 없게 털이 하나도 없네, 이걸 속이고 결혼을 해?”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며 태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다.
선희는 어처구니없는 꼴에 몸서리친다..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훔쳐보는 것조차 불경한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 왔다.
신성한 몸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욕에 부르르 이를 악문다.
참혹하다.
악마의 재단에 재물이 된 치욕을 씻을 길 없다.
태무의 고함소리는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지옥의 비명소리 같았다.
살가죽을 벗겨 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휘감아 친다.
무섭고 떨려, 적의를 느꼈다.
건너 뛸 수 없는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을 욱죈다.
태무는 방바닥에 혁대를 풀어 내던졌다.
한 쪽 무릎씩 바지를 벗어 내리고 발가벗긴 선희의 몸을 덮쳤다.
적을 소탕하는 쾌감이 파들어 온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누운 선희가 바싹 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있다.
말라버린 살 속은 가뭄에 튼 논바닥을 밟는 것처럼 딱딱하더니 깊은 곳에 물이 고여 물컹거렸다.
묘한 쾌감이 등허리를 흩고 지나간다.
짓밟는다는 만족감과 학대하는 흐뭇함이 포만감을 가져온다.
“여자가 왜 이래, 물도 없잖아.”
불평을 할수록 부글거리며, 치미는 화는 머리끝까지 피를 몰고, 벌벌 떨고 있는 선희의 공포에 질린 얼굴은 쾌감을 배가 시키고 있다.
오래, 아주 오래, 포만감을 느끼며 점령해 나가는 것을 즐기고 싶었다.
선희 몸 위로 태무가 뭉그러질 듯한 무게로 얹혀졌다.
아프게 파고든다.
아랫배를 지나 배꼽께 까지 비수가 살을 찢고 들어왔다.
온 몸을 바늘로 빠르게 찌르고 있다.
벅벅 문지르며 파고드는 딱딱한 것을 피하려 몸을 비틀어 보지만, 자물쇠처럼 빠져 나가지 않고 움직임을 따라 철거덕, 덜커덕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살아있다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붉은 얼굴로 비웃는 태무의 변신은 악마의 끈덕진 손아귀 같다.
놀라 흘리는 눈물은 체념과 분노가 뒤범벅이 되었다.
차츰 더 빠르게 움직이던 태무가 몸 안에 오물을 토해 채워 놓았다.
오물을 휘저으며 천천히 움직이다 가시가 뽑히듯 빠져 나갔다.
나간 자리에 둔탁한 여운이 남아있다.
상처 입은 곳은 생 이를 뺀 자리처럼 피를 줄줄 흘리고 움푹 패여 있다.
하늘이 부끄러워 불빛을 피해 엎드려 우는 선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빙글 돌아누워 등을 보이고 금방 잠들어 버린다.
마주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선희는 맥박소리조차 쿵쿵 울려 잠을 잘 수 없었다,
칭칭 포박 당한 듯 꼼짝하지 못한 밤은 길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침 삼키는 소리마저 두려운 밤이었다.
천연덕스럽게 밥을 퍼 넣는 태무의 입안에 벌래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을 마주앉아 보며 아무 것도 넘길 수 없었다.
지난 밤 일을 까맣게 잊고, 바다가 어떻고, 바위가 어떻고, 맛이 어떻단다.
오줌이 자주 마렵고 아직도 뭔가 축축하게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뼈가 탈골한 듯 제자리를 못 찾고 삐걱거린다.
옷 속이 끈적거리고 쓰라리다,
가랑이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것처럼 허전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다 알고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다.
태무는 천연덕스럽다.
터질 듯 뻘건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치켜뜬 눈에 야수 같던 얼굴이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사람들 앞에서 다정하게 구는 것이 구역질나게 싫다.
사진사가 기념사진이라며 어께에 손을 올리라니 다정한척 끌어안고 웃는 얼굴은 언제 다시 험상궂게 변할지 몰라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
어디로 어떻게 끌려 다녔는지 기억조차 하기 싫다.
어둑어둑 석양이 되면 두근두근 가슴이 뛰고, 열이나 견딜 수 없었다.
밤이 두려워 선희는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다.
신혼여행 내내 밤마다 변하는 태무가 두려워 마주 보는 것조차 질려 있었다.
거칠게 벗겨 놓고 짓뭉개듯 올라타 해괴하게 몸을 비틀고 낄낄거리며 들여다보기도 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 놓고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불을 켜놓은 체 미친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지칠 때까지 괴롭히는 것을 견뎌야하는 밤은 악몽과 같았다.
“아버님 잘 다녀왔습니다.”
넙죽 절을 하는 태무가 집 가까이 왔을 때 짐을 빼앗아 들었었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지만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리고 거들떠보지 않던 태무는 걸음걸이부터 틀려져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눈이 휘둥글 해진다.
천연덕스럽고 당연해 하는 얼굴이다.
“그래 여행은 고단하지 않았고?”
“예, 좋았습니다.”
“음식은 입에 맞던가?”
“집사람도 아주 잘 먹던데요. 좋았지, 여보?”
확, 창자까지 토해 내고 싶었다.
아버지가 행여 마음 상할까, 가슴이 뛴다.
울컥 어머니가 그립다.
이럴 때 모두 털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어머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멘다.
철들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언제 오늘만큼 그리웠을까?
입술을 꼭 깨물게 한다.
선희는 눈물도 삼켰다.
“그럼, 선희 방에 가서 좀 쉬게.”
“예, 이 사람이 배 멀미를 좀 해서 쉬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배를 오래타서 그럴 거네. 가서 쉬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축하듯 얼싸안고 등 뒤를 잡아끄는 것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더운 얼굴로 웃는다.
잡아당기면서 얼굴은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마주 웃는다.
태무를 힐긋 쳐다보니 눈빛하나 흔들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