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 전, 재판과정을 견학하러 갔다가 경험한 내용을 옮겨본다.
판사는 높은 자리에 검정 법복을 입고 무태 안경을 쓴
넘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낮은 자리에 앉아있는 원고와 피고를
내려다보면서 양측을 일어서도록 한다.
판사가 말한다.
양측의 주장은 알겠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돈을 받았으면서도 안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거죠?
피고 할머니가 말한다.
분명히 줬습니다.
그 돈을 마련하느라 내가 이 년을 사방디로 다님서 안해본 일 없이 굿은 일을 다 했었고,
시외로 날품까지 다니면서 모았던 돈입니다.
판사가 말한다.
돈을 빌리게 된 경위를 말씀해 보라고 한다.
피고 할머니가 말한다.
삼년 전이지라
원고에게 천만원을 빌리면서 이부 이자를 매월 4일에 주기로 했었고
나는 이자를 하루도 밀린 적이 없었어라
판사가 말한다.
빌린 돈은 어디에 썼습니까?
피고 할머니가 말한다.
부끄럽네요...
자식이 먼 사건인가 있어서 교도소에 가둬 졌는디 변호사를 사야
나온담서 사람을 보냈어요...
판사가 묻는다.
그래서 원고에게 변호사 선임료를 빌렸는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알고 보닝께 변호사 사는 돈은 팔백만원이었고 이백만원은
그 변호사를 소개한 사람이 좋은 변호사를 소개 했담서 띠먹었어요
한다.
판사가 묻는다.
그래서 피고는 원고에게 아들의 변호사 선임료를 빌려달라고
사정을 했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사정을 했지라
네 번이나 찾아 갔었어요
머시냐 담보도 없는 디 뭘 믿고 돈을 빌려주느냐고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었어요...
세 번째 갔을 때 저녁밥을 먹고 있드만요
판사가 할머니 말을 끊고 묻는다.
그 때 밥을 먹는 자리에는 누가 있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한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고 저사람 하고 각시하고 아들하고 넷이서
마당 평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판사가 묻는다.
그 모르는 사람은 여잡니까 남잡니까?
할머니가 답한다.
남자여요
판사가 다시 묻는다.
나이는요?
할머니가 답한다.
나이는 모르 것 고요 안경을 쓴 서른 살 정도로 보였어요...
내가 하도 사정을 하니까 그 남자가 내 편을 들어줬습니다.
판사가 할머니의 말을 끊고 다시 묻는다.
머라고 하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그 남자가 저사람한테 형님! 함서
할머니 사정이 어려운 것 같으니 어지간하면 할머니 사정을
좀 들어주시지 그러십니까? 라고 내편을 들어줬었지라...
그 때 그 젊은이의 말에 힘을 얻어서 더 사정을 했었지라...
판사가 묻는다.
그러니까 원고가 머라고 하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밥맛 떨어지게 밥먹는디 와서 그런다고 내일 오전에 오라고 했지라...
판사가 묻는다.
그래서 다음날 가셨던 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담날 갔더니 만원짜리로 천만원을 빌려줬었어요
판사가 말한다.
알겠습니다.
판사가 원고에게 묻는다.
원고는 직업이 뭡니까?
원고가 답한다.
자영업입니다.
판사가 다시 묻는다.
자영업이라면 뭐를 말합니까?
원고가 머뭇거리다 답한다.
...금융업입니다.
판사가 묻는다.
원고가 말하는 금융업은 사채업을 말 합니까?
원고가 답한다.
예!
판사가 말한다.
원고는 지금까지 주장한 서증을 보면 차용증 밖에 없는데
다른 서증은 없습니까?
원고가 답한다.
예!
판사가 묻는다.
피고가 이자를 언제부터 안 주던가요?
원고가 답한다.
작년 사월이니까 10개월 전부터 안줬습니다.
판사가 묻는다.
그럼, 그동안 원고는 피고에게 이자를 달라고 안 했던가요?
원고가 답한다.
어려워서 그러는가 싶어 달라는 소리를 안 했습니다.
판사가 묻는다.
피고가 원고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이자를 꾸준히 지급을 하다가
언제부턴가 아무 말 없이 이자가 안 들어오는데도 독촉을 안 했다는
말인가요?
원고가 답한다.
할머니가 온갖 일을 다 하고 시외로 일도 다닌다고 하기에
어려워서 그러는 가 싶어 말을 안했습니다.
판사가 묻는다.
원고는 피고가 피고의 문중으로부터 문중 소유의 토지에 도로가 나면서
보상을 받는데 피고에게 배당된 보상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요?
순간 원고가 머뭇거리면서 답을 못하자 판사가 다시 묻는다.
기억에 없습니까?
원고가 제출한 소장에 보면 피고가 문중으로부터 보상비를
받았으면서도 원고로부터 차입한 돈을 상환하지 않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원고가 답한다.
5개월 전입니다.
판사가 답한다.
알겠습니다.
판사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피고는 원고로부터 빌린 돈을 언제 갚았습니까?
할머니가 답한다.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면서 동네 새마을금고에 천만원짜리 적금을
넣었습니다.
그 적금이 끝나는 날이 갚은 날입니다.
판사가 묻는다.
적금이 끝나는 날이 언젠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여그 통장을 가져 왔구만요...
판사는 입회에게 지시한다.
저 통장을 복사해서 원고에게 한부를 드리고
첨부해주세요 한다.
판사가 다시 묻는다.
그럼, 적금이 끝나는 날, 돈을 찾았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빌린 데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만원짜리 새 돈으로 천만원을 찾아서
저사람 집으로 가서 갚았습니다.
판사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피고는 피고 문중으로부터 보상비의 배당이 된다는 사실을 원고에게
언제, 왜, 말했던가요?
할머니가 답한다.
문중의 총무라는 사람이 찾아와 우리한테 삼천만원이 배당이 된다는
말을 하면서 도장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장을 총무에게 줬더니 총무가 찍고는 줘서 보관을 하고
배웅을 하려고 나가는디 저사람 각시가 쩌그서 오기에 너무도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자랑을 쳤지라...
판사가 묻는다.
뭐라고 자랑을 하셨습니까?
할머니가 답한다.
돈을 빌려줘서 아들도 나왔고 또, 문중에서 보상비까지
준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면서 고마웠다고 했지라...
아 근디 느닷없이 경찰서에서 나오라고 하기에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디
이거시 먼 일이다냐 싶어 밤새 잠을 못자다 서부경찰서에 갔었지라...
순사라는 사람이 대뜸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왜 안 갚느냐고 핀잔을
주기에 다 갚았다고 했더니 갚은 근거를 가져 오랍디다.
만약, 돈도 안 갚고 근거도 안 가져오면 교도소에 갈 수도 있다고 해서
얼마나 떨었는지 모릅니다.
판사가 할머니를 보며 말한다.
피고는 자리에 앉으세요...
할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피고석에 앉는다.
판사가 원고에게 묻는다.
원고는 이 소송을 끝까지 유지하시겠습니까?
원고가 답한다.
예!
판사가 말한다.
원고에게 당부를 합니다.
세상은 돈만으로 유지 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법만도 아닙니다.
법 위에 상식이 있고 그 상식위에 사람의 낯 즉 얼굴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돈만을 생각하는 삶은 그 돈에 의해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이 소송의 유 불리와 사실관계 그리고 진실은 그 누구보다 원고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돈이란 삶에 윤활유적인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 돈이 진실을 감추면서 까지 추구해야 할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성찰하시고 원고가 청구한
이 소송을 끝까지 유지할 것인지를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원고와 피고는 돌아가셔도 됩니다.
할머니는 판사가 돌아가도 좋다는 말에 그냥 가라고요?
하고 판사에게 묻는다.
판사가 히죽이 웃으면서 예! 한다.
원고가 지리를 뜨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판사가 다음 사건을 호명한다.
원고가 부르르 몸을 떨면서 일어난다.
법정 밖으로 나온 원고가 미 쳐 떠나지 못한 할머니를 붙들고
펑펑 운다. 영문을 모른 할머니가 먼 일이다요 한다.
“百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