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 4 - 가스가야마 신사를 보고 산속에 임천사를 구경하고는 수국을 보다!
니가타현 남부 조에쓰시 上越市(상월시) 에서 연꽃이 만발한 다카다성 高田城
(고전성) 을 보고는 기차 와 버스 모두 한시간은 기다려야 하는지라....
택시를 타고 에치고(니가타현) 국 영주인 우에스기 겐신 의 거성을 찾아갑니다.
가스가야마 산성 春日山城(춘일산성) 앞에 내려서 가파른 언덕길로 산성을 올라
혼마루터와 비사문당 을 구경하고는 다시 내려와 가스가야마 신사 로 향합니다.
가스가야마 진자 春日山神社(춘일산신사) 로 향하는 길에는 불교의 비사문 을 뜻하는
군기인 “毘(비)”자 깃발과 함께 겐신공을 기리는 축제 포스터 가 보입니다.
가스가야마 신사 의 정면에는 우에스기 가문의 문장 이 그려진 천이 드리워져 있으며
그 앞 에마 繪馬(회마) 에도 우에스기 겐신의 초상화 가 그려져 있는걸 구경합니다.
한참을 내려오니 민가 가 보이고 그 옆으로 자그만 내에 놓인 다리를
건너니 거기에 린센지 林泉寺(임천사) 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산길로 접어들어 모퉁이를 돌아가니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우에스기 겐신 의
군대가 사용했던 “毘(비)”자와 “龍(용)” 자 군기가 펄럭이는걸 발견합니다.
고풍스러운 오래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또 산문 이 나오고
그 안쪽에 대웅전 본당 과 보물전 등 여러 건물들이 보입니다.
요사채 맞은편에는 종루 가 보이고 그 언저리에는 작은 연못에는
연꽃 이 자라며.... 주위는 울울창창 삼나무 가 둘러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산으로 오르는 작은 길이 보이는데 그 언저리에 많은 무덤 이
보이니 이른바 가문의 가족묘로 "우에스기 겐신의 묘" 도 그중에 있습니다.
린센지 는 1,497년에 겐신의 할아버지 나가오 요시카게 長尾(장미) 가
"우에스기 上杉(상빈) 가문의 보리사" 로 세운 절로....
겐신은 7살 때 절에 들어가 수련을 쌓았으며 春日山(춘일산) 은 친필입니다.
왼쪽에 일주문인 소몬 物門(물문) 은 저 너머 가스가야마성 春日山城
(춘일산성) 에서 가져왔으며, 경내에 우에스기 겐신의 묘소 옆에는
가와나카지마 川中島(천중도)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공양탑 이 있습니다!
우에스기 겐신 上杉謙信 은 16세기 일본 센고쿠 (戰國 전국) 시대에 동해(일본해)
바다 에치고 越後 (월후, 니가타현) 의 다이묘로 다케다 신겐 과
호조 우지야스, 오다 노부나가 등 쟁쟁한 영주들과 전쟁을 벌인 에치고의 용 입니다!
우에스기 겐신은 1530년에 지금으로 치면 니가타현인 에치고국 슈고다이 나가오
다메카게의 차남으로 태어나 린센지 林泉寺(임천사) 에 입문했다가
14세때인 1543년 성인식 을 치르고는 가게토라 로 개명한뒤 도치오성으로 입성합니다.
1,548년 19세에 형을 대신해 당주 의 자리에 앉아 센고쿠 다이묘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스스로 "비사문천 (毘沙門天) 의 화신" 이라 믿어 뛰어난 군략으로 군신 이라 불렸습니다.
사심없는 마음과 의리있는 행동 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무장이었으며 1561년 관동관령
우에스기 노리마사 를 승계하여 "성(性) 이 나가오에서 우에스기" 로 바뀝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씨를 갈겠다고 하면 최고의 욕 이 되지만 일본에서는 상전이 성씨를
하사 하기도 하고 큰 공을 세워 가문을 일으키면 새 성씨 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의 이름은 기노시타 도키치로 木下藤吉郞 인데 오다 노부나가
휘하로 들어가 오다가 중신 니와 나가히데 (丹羽長秀)와 시바타 카쓰이에 (柴田勝家)
두 상전의 성으로 부터 한 글자씩 빌려와 하시바(羽柴) 라는 성을 만들었다고 하며
출세를 거듭함에 따라 성씨는 다이라 와 후지와라 를 거쳐 도요토미 씨로 바뀌었던 것이라!
겐신 은 스와 요리시게, 오가사와라 나가토키, 무라카미 요시키요등 10명 영주들이 할거하던
시나노국(나가노현) 을 침범한 가이국(야마나시현)의 다케다 신겐 과 15년간 다섯차례나
가와나카지마 전투 를 벌였으며 사가미국(오다와라) 호죠씨 와도 여러차레 전투를 치릅니다.
이후 오와리국(나고야) 의 오다 노부나가 가 5천으로, 교토로 올라가 쇼군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2만 5천 대군으로 침입한 스루가국(시즈오카) 의 이마카와 씨를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기습으로 죽이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 을 맺고
신겐의 아들 가쓰요리군을 격파하고는 교토로 올라가 쇼군을 폐하는 변 이 벌어지자....
에치고국의 우에스기 겐신 은 "역젹을 토벌" 한다는 명분으로 거병해서는 2만 대군을
이끌고 노토의 나나오성을 함락한후 양력 11월 3일 데토리가와 전투 에서 1만 8천
시바타 가쓰이에가 이끄는 오다 노부나가군 에 대승을 거두니 노부나가는 3만으로
후방을 받치자 겨울이라 눈이 많이 내리니 겐신은 여기 가스가야마성으로 귀환 합니다.
다음해 봄에 에치고국에 대대적인 동원령 을 내리고 오다군을 쳐부수는 원정 을 불과 며칠
앞두고 급서 했는데 와카 和歌(화가)에 능통하고 학문이 깊어 명필 이었다고 합니다.
동원된 3만 병력 이 적다할지 모르나 조선이 정유재란 에서 1598년 명군과 함께 4로병진
왜군을 총공격할때 울산, 사천, 순천 3방면 육로군 총수가 1만 8천 임에 비하면 대군입니다.
그는 불법을 받든 까닭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자식이 없는지라 누님의 아들 조카
가게카쓰 와 또 사가미국(오다와라) 호죠씨 가문의 가게토라 둘을 양자로 두었는데
양자끼리 후계자를 차지하기 위한 내란 이 벌어졌으니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네요?
그러고는 린센지 林泉寺(임천사) 절을 나와 내려오다가 약간 헷갈린 것이
내려가는 길에 또다시 가스가야마 신사 도리이가 보이는 것이라?
하도 이상해 다시 찬찬히 보니 가스가야마 신사 春日山神社 가 아니고.....
야마(山) 가 없는 그냥...... 가스가 신사 春日神社(춘일신사) 이네요?
여기 가스가진자 春日神社(춘일신사) 는 헤이안 시대인 958년에 마을의 수호신 으로
세워져서는 1381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는 유서 깊은 신사라고 전합니다.
기독교도가 불과 1% 정도인 일본에는 8만 5천개의 신사가 있고 인구의 90% 가 신도 를 믿는데
천황가와 관련되면 신사가 아닌 신궁 이고, 불교를 함께 믿는 사람도 80% 정도 라고 합니다.
조금 더 내려오다가 길을 묻는데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일러준 길은 돌아가야
하는지라 망설이다가... 그 반대편으로 가로질러 강둑을 타고 내려갑니다.
어관천 강둑에 파랑 색깔의 수국 이 많이 피어 있는데 일본의 신사 입구에도 흔히 볼수 있는
꽃으로 큰 도로변 못미쳐 우에스기 겐신의 일생 을 전시한 "모노가타리관" 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