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Paul Gauguin)
(프랑스 / 1848년~1903년)
1891년, 고갱은 프랑스를 떠나 열대 지방에 머물며 창작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반 고흐는 몇 년 전 이미 "미래는 열대 지방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신세대 화가들에게 오래되고 상투적인 서양 예술의 방식은 진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고갱은 자신의 영감을 살찌울만한 새로운 소재를 찾는 중이었다. 그는 여러 곳의 여행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그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타히티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그는 이 곳에서 순조로운 삶을 살기 바랐다. 그는 출발하기 전에 정부의 여행 보조금을 받고 모든 재산과 그림을 판 후, 오세아니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타히티는 더 이상 뱃사람과 작가들이 찬양하던 그런 섬이 아니었다. 전통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진보된 서양 문명에 억눌려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 타히티의 왕이었던 포마레 5세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민지의 뱃길이 이미 열린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고갱은 수도인 파페에테를 벗어나 시골로 가서 타히티인들의 일상 생활을 체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나무와 종려나무를 이용해서 ‘파레’라고 하는 타히티의 전통 가옥을 직접 만든 후, 14세의 타히티 소녀를 동반자로 삼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타히티의 언어를 배우면서 선교사들의 압박 속에 버림받은 마오리족의 옛 종교에 관해서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타히티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에서는 총독이나 신부 또는 목사에 의해 강제로 들어온 새로운 풍습과 전통의 충돌이 느껴진다. 타히티는 수 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다. 왼쪽 여인은 허리 아래로 흰 티아레 꽃 무늬가 장식된 ‘파레오’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여인의 귀에는 옷의 무늬와 똑같은 생화가 꽂혀 있어 여인의 아름다운 구릿빛 피부를 돋보이게 하며, 숱이 많은 검정색 머리에서 마치 향기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고갱의 동반자로서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채 움츠러든 것처럼 보인다. 목까지 올라온 이 ‘선교사 원피스’는 몸의 형태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데,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긴 소매가 팔 전체를 감싼 채, 한 치의 피부도 드러나지 않게끔 꽁꽁 가리고 있다. 화면에는 전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이 감돈다. 정면을 향한 여인은 생기 없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멍한 시선을 던진다.
이 여인은 종려나무 잎으로 모자를 짜는 일을 중단했고, 짜다 만 동그란 모자가 그녀의 옆에 놓여 있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은 ‘이걸 짜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여인의 폐쇄적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운 빠지게 한다. 고갱은 타히티에 있는 처음 몇 개월간 현지인의 태도와 얼굴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물을 그려서 목록으로 만든 후 그림 그릴 때 소재로 삼곤 했다. 작품 속 두 명의 ‘타히티 여인들’은 실제로는 한 명의 모델에게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게 하여 완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황금색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의 뒤쪽으로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며 인위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펼쳐진 배경을 열대 지방을 연상케 하는 색채를 사용하여 표현함으로써 정확히 묘사하지 않아도 현지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림 윗부분까지 색색의 층으로 표현된 배경은 평면감을 주며, 이로 인해 두 명의 타이티 여인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고갱은 작곡가가 소리를 만들 듯, 색채를 진동시키며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분홍과 주황, 노랑, 초록을 연결한 대담한 채색 방식은 마티스 화풍의 전조가 되었다. 이 그림은 타히티에 군복무를 하러 왔다가 상인으로 눌러 앉은 샤를 아르노 대위에게 1982년에 팔렸다. 고갱은 ‘하루의 소식’이라는 뜻의 타히티어 파라우 아피라는 제목으로 《타히티의 여인들》을 변형시킨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