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의 명소가 된 은혜이발관
송순섭 이발사
83년부터 현재까지 가리봉동에서 이발관을 운영해온 송 사장은 92년부터 중국동포 고객을 맞이해 현재는 중국동포의 따듯한 이웃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1983년부터 지금까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순섭(58) 사장은 중국동포 사이엔 오랜 친구로 통한다. 전라남도 강진이 고향인 송 사장은 중학교를 마친 후 일찌기 이발 기술을 배우고, 83년경 처음 서울로 올라와 가락동시장, 용산 등을 돌아다니며 이발소에서 일을 하다 그가 정착한 곳은 가리봉동이었다.
“그 당시는 10대, 20대 젊은층들이 이발소를 많이 찾았지요”
당시만해도 가리봉동은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던 시절, 하지만 80년대 후반 구로동단의 공장들이 시화공단으로 이전하면서 가리봉동에 거주하던 노동자들도 그 수가 줄어들고, 90년대 마리오알렛에서 광명시 철산동으로 이어지는 <수출의 다리> 확장공사가 2년여간 진행되면서 광명에서 가리봉동으로 오던 사람 수도 크게 줄어들어 은혜이발소를 찾는 고객도 잠시 주춤했다.
“92년쯤 되니 이발소에 중국동포 고객들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한 두명 정도였는데 서서히 늘어나더니 2002년경 되어서는 부쩍 많이 늘었어요.”
1992년도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때이고, 이 시점부터 한국에 오는 중국동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초중반부터 가리봉동 쪽방을 중국동포들이 채워가게 되면서, 가리봉동은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했다. 은혜이발관을 찾는 중국동포 고객도 부쩍 늘어난 상태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정부의 외국인불법체류자 합법화 정책이 나오면서 가리봉동은 중국동포의 최대 밀집거주지역으로 급부상하였다.
송순섭 사장에게 중국동포는 어떻게 보였을까?
“이발소 문을 나가면 바로 중국동포들이 자주 찾는 중국식당, 노래방 있죠. 2000년 초에는 중국동포들끼리 술을 마시고 싸우는 일을 참 많이 봤어요, 그래서 처음엔 중국동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그러다 7, 8년전부터 체류가 좀 잡혀지는 것같아요. 지금은 싸우는 일 거의 못보죠.”
송 사장은 익숙한 말투로 이발소를 찾는 중국동포에게 “어디 다녀왔어, 오래간만에 보네” 하며 맞이한다. 중국동포는 더 이상 낯선 사람도 아니고 친구이자 이웃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친하게 지내냐고 묻자, 송 사장은 명함을 꺼낸다. 명함에는 송씨 명함사진이 있고 ‘恩惠理髮 제2회 기능경기대회 은메달 획득 宋順燮’ 이라고 쓰여있고 주소와 전화번호가 쓰여있는 평범한 명함이다.
“저의 영업노하우라고 할까요, 오는 손님한테 이 명함을 줍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 있으면 이리로 연락하라고 하죠.”
그게 중국동포들에게 통한 것이다. 한국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영락없이 송 사장의 명함을 보고 전화를 했다.
“낮이고 밤이고, 대개 ‘일하다 돈을 못받았다’ ‘일하다 다쳤다’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거예요. 다 듣고 저는 주변에 도움 줄수있는 사람들한테 연락해 도움을 주도록 하였죠. 이발사에게 고충상담을 늘어놓는 중국동포들이었고, 이를 듣고 송씨는 귀찮아하지 않고 최대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한 것이 동포들하고 좋은 인연을 맺게 된 것같다고 송사장은 말한다.
생각해보니 이발사로부터 명함을 받아본 적도 처음인 것같고, 명함을 건네는 이발사도 보기드문 일인 것같다. 한국에 처음 온 동포들에게 송 사장의 명함은 비상연락망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발 실력을 무시할 수 없다. 송 사장은 “내 이발 실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깎는 이발사”라고 자칭한다. 실제로 사람의 외형만 보고도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주면 좋겠다는 것이 순간에 파악된다고 한다. 경력 40년이니 그럴만도 하다.
“중국동포들은 머리를 깎는데 멋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고 그럭저럭 이발을 해온 것같아요, 그런데 제가 머리를 깎아주면 정말 잘 깎는다고 말씀들 해요, 그때부터 머리에도 멋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은혜이발관은 중국동포들 사이에서는 가리봉동의 명소이다. 가리봉동에 사는 동포들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지방으로 장기간 일을 나갔던 사람들도 한동안 머리를 깎지 않다가 은혜이발관에 와서야 머리를 깎을 정도라고 한다.
하루 평균 이발소를 찾는 손님은 30여명, 주말에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기자도 지난 5월 25일 일요일 사진만 찍고, 다음날 월요일 오후에에 다시 방문해 인터뷰를 해야했다.
가리봉동에는 은혜이발관와 같은 이발관이 8개정도 되었다고 한다. 과거 80년대 가리봉동은 구로공단에 가발, 미용, 옷 공장들이 많았던 영향을 받아 가발, 미용, 패션의 중심가이기도 하였다. 83년부터 커다란 변화의 흐름속에서도 가리봉동 시장거리에서 현재까지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이발관을 변함없이 운영해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송 사장의 노력과 실력을 읽어볼 수 있다.
은혜이발관 앞이나 안으로 들어오면 80년대 초의 이발관 그 모습을 볼수 있다. 현대적이지 못하고 누추한 곳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가리봉동의 명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벽에는 KBS, MBC 등 방송에 나온 송 사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어떤 때는 드라마, 영화 제작팀이 와서 이발관을 촬영장소로 빌려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 송순섭 사장은 중국동포 관련 방송 KBS 희망제작소, 다큐3일 방송에 나와서 가리봉동에 사는 중국동포 이야기를 훈훈하게 들려주어 동포들로부터 숱한 감사의 말을 들었다.
“중국동포들은 정이 많고, 잘 대해주면 잘 대해준만큼 뒤돌려주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송순섭 사장의 말이다. 그는 최근의 중국동포 서예가로부터 받은 서예작품을 선물로 받았다며 기뻐했다. 이뿐만 아니라 우황청심원도 많이 받았고, 중국 술도 선물로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송순섭 사장에게 중국동포 단골손님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헤알릴 수 없이 많다고 말한다. 누가 뭐라해도 송순섭 사장에게 가리봉동은 살기 좋은 곳이며,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인터뷰 =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17호 2014년 5월 29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17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