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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유자적 등산여행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무념무상
빨갛게 익어가는 섬천남성 열매. |
매물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8월에 섬으로 가려고 거제 저구항까지 갔으나 안개가 짙은 바다는 도무지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 후 몇 차례 일기예보를 보며 기회를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시 마음을 먹고 여객선터미널에 전화해 정상 운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야 매물도를 찾을 수 있었다.
매물도 일주 바다백리길은 당금 마을에서 출발하여 매죽보건진료소~매물도 발전소~옛 매물도 분교~당금 마을 전망대~홍도 전망대~대항 고개 갈림길~정자 쉼터~어유도 전망대~장군봉(254.8m)~등대섬 전망대~쉼터~꼬돌개 오솔길~대항 마을 선착장 갈림길~당금 마을까지 6.6㎞를 3시간 40분 동안 걸었다. 국립공원은 섬 일주 소요 시간을 3~4시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저구항에서 많은 사람이 승선했는데 매물도 당금항에서 내리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소매물도로 간다. 내린 이들 중 산더미만 한 배낭을 짊어진 여성들이 있다. 매물도에서 야영하기 위해 온 백패커들이다. 큰 짐에다 손에 물건까지 들어 안쓰러웠는데 다행스럽게 야영장인 옛 매물도분교는 당금항에서 멀지 않았다.
당금 마을을 지나 야영장 입구에서 그녀들과 헤어졌는데 매물도발전소를 돌아 일주하는 길로 들어서니 바로 분교 운동장이 나왔다. "왜 굳이 돌아오시나요?" 짐을 풀던 부산에서 왔다는 백패커가 물었다. "길을 찾으려고요." 대답하고 나니 조금 애매했다. 그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잘 자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매물도는 하루쯤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울과 부산에 각각 살지만 주말이면 가끔 만나 캠핑을 즐긴단다.
대구의 한 직장에서 온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이 되었다. 모두 출발하자마자 더위에 헉헉댔다. 답사팀도 한 주 전 산행하며 추위에 떤 탓에 단단히 겨울 복장을 갖췄는데 결론적으로 실패! 매물도는 참 따뜻한 섬이어서 험하지 않은 길을 걷는 데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장군봉에 우뚝 서다
귀족적인 보라색 꽃잎을 지닌 꽃향유. |
한려해상국립공원 관리인들이 일주 코스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 예취기를 사용하다가 방문객들이 가까이 가니 아예 시동을 꺼버린다. 아름다운 배려다. 동백나무가 터널처럼 우거진 길을 지나니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당금 마을 전망대에서 한숨 돌린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인데 노을 질 무렵 억새의 군무는 일품이란다. 가왕도와 병대도, 여유도와 장사도는 물론 거제 여차 몽돌 해변까지 두루 보인다.
홍도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나지막한 초원 지대. 하늘 위로 난 길을 걷는 기분이다. 발아래 반짝이는 물결과 고깃배들의 움직임이 아름다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바위틈에 피어난 구절초, 노란 꽃잎에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기는 산국까지 가을꽃이 매물도를 장식하고 있다. 꿀벌이 윙윙대는 보라색 꽃향유는 육지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야생화. 매물도에 유독 이 꽃이 많아 섬이 더 향기롭다.
동백터널 하나를 또 지나니 아래로 뚝 떨어진다. 안부는 대항 마을 갈림길. 장군봉도 매물도만큼 깐깐했다. 삼거리 정자 쉼터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 단감을 먹고 힘을 모은다.
삼거리에서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에 있는 통신시설 때문인지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었다. 정취는 다소 사라졌지만, 걷기는 쉽다. 오른편 바위에 어유도 전망대 이정표가 있어 올랐다. 대항마을과 '매물도의 오륙도'라는 삼여도 그리고 물고기가 너무 많아 바닷물이 마를 정도였다는 전설이 있는 어유도가 보인다. 어유도는 6가구 정도가 거주했는데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 지금은 섬의 자연 환경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매물도 최고봉 장군봉에 올랐다. 장군이 군마를 타고 있는 형상이라 군마 조각상이 있다. 장군봉은 일본군의 포진지였다가 우리 군사시설이 되었다. 지금은 통신시설이 있다. 시멘트 축대에 '196기 손○○ 병장'이라고 새겨 놓았다. 말년 병장이 기념으로 남겼던가 보다.
■꼬돌개 오솔길 굽이굽이
앙증맞은 노란 꽃잎이 사랑스러운 산국. |
장군봉에서 소매물도가 단연 잘 보였다. 물론 대마도도 보인다고 안내해 놓았다. 섬 일주 트레킹이지만 정상에 올랐으니 내려가야 한다. 소매물도로 쭉 뻗은 능선을 따라 하산한다. 철 이른 동백꽃 하나가 벌써 떨어져 있다.
등대섬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는다. 해안 절벽이 잘 발달한 소매물도는 무척 아름다운 섬이다. 까마귀가 다가와 욕심을 내기에 김밥 한 덩이를 주었더니 냉큼 물고 가며 좋아한다.
소매물도를 실컷 본 뒤 배낭을 꾸려 반환점을 찍고 대항 마을로 간다. 샘이 있는 쉼터를 지나니 꼬돌개 오솔길이 시작된다. 200여 년 전 매물도 초기 정착민들이 굶주림과 괴질에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의 방언)고 해 붙은 이름이다. 슬픈 이야기인데 풍경은 왜 그리 아름다운지 삼여도(가익도)와 한려해상에 뿌려진 아름다운 섬이 점묘화처럼 펼쳐진다.
오솔길 끄트머리엔 계단식 논 흔적이 있다. 초기 정착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이 땅은 지금은 묵었다. 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대항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길바닥에 파란색 이정표가 있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안내 표시다. 파란 선만 따라가면 헷갈리지 않는다.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다. 멀리서 봐도 아름드리인 후박나무들이 섬을 오래오래 지키고 있다. 마을엔 스러진 빈집이 많다. 남은 집은 모두 덩치를 키워 펜션 등 숙박시설로 바뀌었다. 섬마을 풍경이 시나브로 달라지고 있다.
당금항 양지바른 곳에 앉아 매물도를 찾는 사람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조각상 '바다를 품은 여인'. |
오전에 나섰던 당금 마을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다. 마주 오는 한 무리의 방문객과 교차한다. 당금 마을에서 대항 마을까지 걷는 사람들이다. 당금항 바다 가까운 곳에 조각상 '바다를 품은 여인'이 있다. 안내판은 녹슬어 온전히 읽기 힘들었지만 여인의 풍만한 자태는 아름답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통영 매물도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 통영 매물도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 매물도 당금 마을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안내판 앞에서 매물도 일주 트레킹을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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