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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렸던 훈련소 2
위의 중간탄피의 앞부분이 약간 더 가는것은 총을 쏘고나면 탄피가 약간 더 불어나고
뜨거워져서 더 굵어지니 약실에 꽉끼어서 제거가아니될까봐 더 가늘다.
왼쪽의 탄피는 종이이거나 플라스틱이어서 무르니 꽉 낄염려가 없으니 굵기가 같다.
화약은 총이 크면 큰 만큼 총알이 총 부리[입]를 빠져 나가는 시간이 길어지니
화약이 연소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사이즈가 굵은데 대포화약을 연필
굵기로 만드는 것은 결국 장작보다는 톱밥이 더 빨리 타개끔 고안을
한것인데 20kg의 대포알은 속도를 낼적에 시간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대포화약을 조금씩 밥솟아궁이에 뿌리면 연기가 나지를 않으며 밥을 지을수가 있었다.
내가 시골로보낸 M-1총 화약은 알갱이가 굵어서 연소시간이 느려서
엽총에는 부적당하니 아버님께서는 방앗간에부탁하여콩을 납짝하게
만드는 기계로 눌러서 사용을 하셨단다.
국산 엽총화약은 흑색화약으로 연기가 많이 나지만 'PX다마'라는
미국산 엽총알은 연기가 안나니 '무연 다마'라고 불렀다.
왼쪽의 엽총알은 약 80개가 되는데 나는 꿩을 쏠적에 사용을
하며 화약 낟알의 사이즈가 제일 크다.
그리고 중간의 롸이플의 탄피는 화약이 탈적에 열로 인해서
늘어나서 약실에 꽉 낄 염려가 있으니 빈탄피를 제거하기가 쉽게 앞쪽이 약간 더 가늘다.
중간의 총알 끝을 구리로 싸놓지 않은것은 맞았을때 무른 납이
버섯모양으로 넓어져서 상처가 더 크게되는 이치이다.
엽총 탄피는 '지탄피'라고 부르는 종이나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생활을 할 적에‘PX다마'는 너무도 비싸니
우리 집에서는 엿장수들이 모아오는 기관총 Cal 50의 탄피를 자른
후에 선반으로 깎아서 엽총 탄피를 만들면 100번 이상을 재사용한다.
잘디잔 납으로 팥 낟알같이 생긴 총알은 집에서 만들었는데 납을
양철통에 넣어서 녹인 후에 약 1m길이의 길다 란 기름통에 쏟아
부으면 아래쪽에는 길쭉길쪽 한 팥낟알같은 낟알이 갈아 앉는데
물을 사용하면 무거워서 부딪치는 순간 납작하게 되기 때문에
가벼운 기름을 사용하게 되며 이것을 굴기로 선별한 후에 맷돌에다가
넣고 돌리면 긴 쪽이 눌러져서 동글동글하게 변한다.
큰 것은 오리사냥에 사용하는데 약 40개가 들어가고 작은 것은
약 120개가 비둘기 사냥에 사용한다.
폭약의 압력 때문에 엽총탄피가 약간 굵어지면 꽉 끼어서 빼지를 못하니
손가락 굵기의 무거운 쇠를 총부리에다가 넣고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한
후에 아래위로 흔들면 탄피가 아래쪽으로 빠져 나온다.
지난주에 읽은 어느 분의 댓글에 실린 것으로 지리산 공비토벌부대는
공비들이 주워가라고 총과 실탄은 화약을 약간 제거하고는 모래 등을
넣어서 버려 놓으면 공비들이 주운 후에 쏘면 화약이 적으니 총알이
총신 중간에 걸려서 사용불능이 된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동내사람이 인민군이 버리고 간 소제 모시나간 장총을
주워 오셔서 아버님께 드렸는데 동네 사람들을 몰이꾼으로 데리고
노루 사냥을 가셨으며 쏘니 총알이 총구 중간에서 서 버렸다.
집으로 둘아 오신 후에 보니 남은 실탄은 모두가 화약이 없는 실탄이었는데
그것으로 총을 쏘면 소리도 별로 나지 않고 뇌관의 힘으로 총알은 두 뼘만
움직인 후에 서버리니 총구가 막혀버리는 셈인데 실탄 탄피의 뇌관 속에는
화약에다가 점화를 위하여 미량의 아이들의 장난감 딱총 화약을 넣어놓았다.
권총은 매번 당길 적 마다 발사가 되면 자동(automatic)피스톨 이라고
부르지만 M-1총처럼 긴 총으로 매번 당길 적 마다 발사가 되는 것은
반자동(semi automatic)롸이플 이라고 부른다.
고기를 먹는 미국인들은 김치를 먹는 한국인들보다도 배가 더 부르다, 미국인 은 2명.
하우스에서 튀어 나온 후에 약 100km속도로 날아가는 직경108mm의
클레이를 쏘아서 꿩잡는 묘미를 느낄수가 있는데 한개는 파열되었고
한개는 남아있는데 몸을 놀리는 동작이 빠르게 목표물이 진행하는 쪽의
약 1m앞쪽을 쏘아야 클레이 접시와 메칭이 되어서 파열이 된다.
5명이 1개조가 되어서 교대로 쏘며 한사람은 클레이를 리모콘으로
날려주는데 한 롸운드에 50발을 쏘는 재미있는 취미스포츠가 되는데
반수 이상이 2발로 2개의 나는 클래이를 동시에 쏘아 깨뜨려야하니
반드시 쌍대나 5연발 자동총을 필요로 한다.
맞추지못한 클레이들이 떨어진 후에 많이 쌓여 있는것이 사수의 뒷쪽에 보인다.
고달픈 훈련소 생활이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그 당시 생각한 것은 수
십 배가 남은 고날픈 군대생활의 삶을 앞으로 어떻게 견딜까 생각하여
내다보니 3년이 수평선 멀리 떠가는 조그만 보트 마냥 아득하게 보였다.
이러한 비극이 나의 정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데
‘양약(良藥)은 고어구(苦於口)나 이어병(利於病)이라[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영어속담 A good medicine tastes bitter)]’는 말이 있는데
그당시 나의 비극사에서 빛은 찬연했지만 잠재적이어서
그 당시의 나는 느낄수도 볼 수 도 없었다.
고생은 고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으며 비록 사회생활이
가끔 힘 드는 때가 있을지라도 견디기에 충분한 자기방어 심과
인내심을 창출해 냈다.
추가함직한 말을 덧붙인다면 야외로 행군을 나가면 아줌마들이
떡이나 찐 고구마 같은 것을 이고 와서 길가에 좌판을 놓고 파는데
돈이 있어도 “이동 주보 사용금지!”라고 향도는 일갈이니 그림속의
떡이 아니고 실물속의 못 먹는 떡은 배고픔만 더할 뿐이었다.
주보[酒保(술주, 지킬보)라는 말은 일본에서 고스란히 온 것인데
실은 PX(Post Exchange)라는 말이며 ‘술을 돕는다.’라는 그 향도의 말은 뜻이 틀렸다.
내처지가 그 당시 어느 정도의 한계점에 처하고 있나하고
생각을 해보니 내가 초식동물은 아니지만 풀이라도 뜯어먹을 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비위가 약하여 토끼, 노루, 오리, 꿩고기 등을 못 먹지만
그 당시는 뱀이라도 생으로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 할 정도의
현실이고 보면 북한에서 옥수수 밭을 군인들이 지킨다는 이야기는
크게 대수로운 것이 못되는데 머릿속에는 먹을거리고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창피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훈령 병이 배가 너무
고파서 이성을 잃고 밥알이 없기로 유명한 훈련소의 구정물통속에
가라앉은 썩어서 부글부글 거품이 오르는 부패된 찌꺼기를 소매를
걷고 손으로 휘휘저어 건져 먹는 일이 있었다니 군정에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
라는 구호는 번지르르한 말장난에 그친 것이다.
1964년이라면 정치의 칼날이 시퍼른 시절인데도 60만 대군의 식사정량을 줄이고
식품을 팔아먹어도 대통령이 그냥 방관만 한것은 내생각에 장교들에게 배려
차원에서 그냥 눈감아 준것으로 안다.
내 기억으로 3년동안 비타민이든 푸성귀는 먹어본적이 없는데
수송부에 근무를 하다보니 지프차에다가 카바[exclosure]를 씌우고
정문밖으로 싣고 가는것이 발견이 되었는데 결구 우리들은 백김치를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명백한 부정행위이다.
신문에 난적이 없지만 이발사로 근무를 하던 한국여인이 이발관을
인수하여 미국에온 월남 보트피플 이발사에게 이발을 하면서 직접들은
이야기로 조국을 탈출하는 망망대양에서 엔진은 꺼졌고 화장실도 없는
조그만 어선 속에 120명이 승선을 했었는데 보이는 것 이라고는 하늘과 바다 뿐 이었단다.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을 보듯 부끄럼을 생각할 수 없는 군중 속에서
그냥 남앞에서 용변을 보던 이야기는 배설물의 악취는 아무것도 아니고
먹을 것은 바닥나고 기관이 고장 난 상태 하의 절박한 절망과 며칠을
굶주린 기아 속이니 어쩔 수 없이 가장어린 아이부터 잡아서 여러 사람이 생으로 뜯어먹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야기로 내가 아들정비소 옆자리에 섭리스[한국어?]를 준
사람은 알링튼에서 정비소를 하는 월남인 보트피플인데 미국정부에서
소수민족으로 분류가 되어서 노든버지니아주 우체국차를 도맡아서
고치라고 배려를 한다.
보트피플이 그당시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은 파이럿트이었다는데
피난민마다 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란다.
망망대해에서 다행히도 지나가던 미국상선이 보트를 발견하고
모두건져올렸는데 그자리에는 큰 거북이가 물에떠서 밟고 올라갔다는데
아마도 수명이 다한거북이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단다.
자기의 목숨이 자식보다도 더 중요한데 한국전쟁때 집 부근에 폭탄이
투하되니 아기를 안는다는것이 배게를 안고 도망을 했다고 했다고
학교에서 들은적이 있으며 여우도 겨울에 먹을것이 없어지면 새끼를
잡아먹어서 자기의 목숨을 지킨다고 했다.
그래도 미국은 최고로 멀리 다낭으로부터 1100km 공해상에 떠있는
165,000명의 피난민인 보트피플을 찾은 후에 죄다 데리고 와서 영주권을 내주었다.
군인가족들은 아파치 헬기를 이용 군함에 내려놓은 후에 헬기가
너무많아서 처치곤란이니 여러군인들이 아깝지만 여러대를 바다로 떠다밀어
수장 해버리는것을 기록 영화로 본적이 있다.
캄보디아의 군인들은 그들의 가족 모두를 군용기로 싣고 군함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데려 왔는데 손[Son]씨라는 분이 있어서
한국분이신가 하고 만나보았더니 캄보디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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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자드른 전쟁 무기에 대해 전무합니다
특히 전생에서 인간이 겪는 최하의 고난을
설명해주시는데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합니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