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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프타임 역사 [ 사견주의 ] 사실상 조선이 독립국가로 존재할 수 있었던 분기점이라 보는 사건
서초패왕 항우 추천 0 조회 2,587 26.05.11 22:30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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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5.11 22:33

    첫댓글 정말 안타깝다.. 외세랑 손을 잡고 우리 백성들을 진압하다니..

  • 작성자 26.05.11 22:35

    제 사견입니다.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 26.05.11 22:36

    과거를 현재의 거울이라고 본다면
    결국 현재의 사회 변혁과 그 성공은 결국 그걸 얼마나 국민들이 무리 없이 빨리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국가가 빨리, 제대로 해주느냐...로 결정된다?

  • 작성자 26.05.11 22:41

    모든 성장동력들이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하나의 요소라도 크게 어긋나면 발전의 시기를 크게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 26.05.11 22:36

    고종도 겁나 멍청한 임금.

  • 26.05.11 22:43

    고종 트롤

  • 26.05.11 22:45

    녹두꽃보니까 그냥 역사공부할때 잠깐 지나가는것보다 훨씬 잔혹했겠구나 싶더군요. 저런 대규모저항과 희생이 있었어서 조선이 독립국이다라고 어필할수있던 분기점이라고 볼수도 있기는 하겠네요. 잘봤습니다.

  • 작성자 26.05.11 22:46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6.05.12 00:05

    아직도 고부현에서는
    최악의 욕이
    이런 조병갑 같은 놈이죠

  • 26.05.11 22:46

    소현세자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 후에 왕자들이 일찍 죽지 않고 왕이 되었더라면 민비 같은 인물이 왕비가 되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 작성자 26.05.11 22:53

    사실 그 시절(소현세자, 징조)만 따져보면 서양조차 제대로 된 근대화가 이뤄지기 이전인 것도 많아서 그런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 26.05.11 22:53

    척양척왜를 외치고 행정경험도 없어서
    어렵다는 생각

  • 작성자 26.05.11 23:04

    동학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유생 계층도 많아서 행정 지식이 전무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 26.05.11 22:59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어야하는데 동학농민운동이 성공했다하더라도 그렇게 진행되었을까하면 그건 아니었을거라고 봅니다. 중립국 독립국가는 구호지 지정학적 특성상 진짜 그게 될 가능성은 없었다고 봐야…
    인구가 유입되고(미국의 이민이나 식민인구 이주처럼) 그걸 착취할 체제가 없는 이상 이 시절의 자강이라는건 공염불인데다
    성공했어도 왕정 이후의 정치체제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시기라 운좋으면 또다른 유능한 독재정의 출현이고 운없으면 그냥 더 혼돈의 조선말기가 되지않았을지…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권력이라는게 그리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는게… 고종 목을 따야 끝나지 그걸 산채로 내려놓는 케이스는 몇없는

  • 작성자 26.05.11 23:09

    영국 같은 경우엔 권리장전의 사례도 있어서.... 물론 전제는 고종이 전제군주권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겠지만요... 희망을 걸자면 민족주의와 시민주의에 대한 세계적 동향을 고종도 접했다면... 이랄까...

  • 26.05.11 23:14

    @서초패왕 항우 그건도 엄밀히보면 이전에 왕 모가지 따인 여파로 된 것이라… 차라리 강제 개항 시기쯤 반정이라도 한판 했으면 되었을수도. 어차피 역만없이긴 하지만요 ㅎㅎ

  • 26.05.11 23:03

    유교 정치 사상을 한 줄로 요약하면 ‘민본주의’이 아닌가요?

    논어에는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민심만은 지켜야 한다고 공자가 말하고,

    맹자에도
    ’먼저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고, 풍년에는 배부르게 먹고 흉년에도 굶어죽지 않게 한 후에야 교화할 수 있다‘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존왕양이‘는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기적인 욕심이 기반이 되었다고 느껴지고

    근대화도 유교 사상을 ‘잘’ 활용했다면 오히려 수월하게 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조선이 근대화에서 뒤처진 것이, 오히려 유교의 가장 기초적인 사항을 안 지킨 결과라고 생각해서요.

  • 26.05.11 23:12

    전 반대로 근대화의 핵심은 욕망과 욕심, 타인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부품화라고 봐서 유교 이념 메인으로는 죽어도 근대화는 못했을거라고 보는…

  • 26.05.11 23:20

    강신주 교수님 같은 분은 맹자의 혁명적인 발언도 결국 신권 강화에 대한 얘기였지 백성들의 권익을 대변한 건 아니었다고 보더군요. 공자는 더더욱 계급을 중시했구요. 꼭 강신주 교수 의견이 아니더라도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이후 당시 주류였던 묵가나 도가가 아닌 유가가 주류가 된 것도 그 확고한 계급의식이 지배층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계급에 대한 신앙과 상업 및 실용학문에 대한 천시, 유교 이외 사상에 대한 배타성을 생각했을 때 유교를 기반으로 한 근대화는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 작성자 26.05.11 23:29

    조선적인 민본주의 이념을 '적절히 잘' 활용했다면 그 당시 산업개발의 현장에서도 미비점이라 할 수 있는 복지와 환경에 대한 개선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나... 저도 결국 윗분들 말씀들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게 되네요. 결국 생존의 무대에서는 계급화, 서열화가 우선시된다는 그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일본에서도 후지와라 세이카나 하야시 라잔같은 사람들이 조선에서 도입한 성리학으로 무사도 철학을 강화하기도 했죠. 그래서 존왕양이와 위정척사도 같은 궤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 26.05.11 23:36

    민본주의는 민심에 기반을 두지만, 결국 통치의 주체는 여전히 군주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화로 나아갈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26.05.11 23:39

    @메르스 저도 이 의견에 공감합니다.
    당시에는 유교 이념과 근대 자본주의가 섞일 수 없었지요.
    현대에 와서 재해석 등을 거쳐
    나름대로 섞일 수 있었던것 같아서요.

  • 26.05.11 23:06

    ㅇㄷ

  • 작성자 26.05.11 23:11

    와드 걸 정도로 좋은 글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26.05.11 23:17

    @서초패왕 항우 ㅎㅎ읽을거리 주셔서 제가 감사하쥬

  • 26.05.11 23:20

    고종은 우리 역사상 최악의 왕 중의 1명..

  • 26.05.11 23:37

    고종은 최악! 고종이 잘했으면
    후일(1930~1940년대)일본하고 전쟁해서 져서 고통받았을지언정 1910년의 망국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음!

  • 26.05.11 23:45

    저는 개인적으로는 항우님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ㅎㅎ사실 동학농민운동을 동학 '혁명'으로까지 높이 평가하는 방향도 납득이 잘 안 되더라구요.
    어느 정도 목표에 달성했던 1차 봉기도 결국 동학 모두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이 참여한 것이고,
    2차 봉기 와중의 양반층에 대한 견해차, 그리고 와해된 그 이후의 모습도 보면 과연 근대 국가로의 발판으로 갈 수 있었을까? 라는 데에는 의문이 많이 남습니다.

  • 작성자 26.05.11 23:46

    근대화의 물결을 거부하려 해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 더불어 거국적인 민중봉기가 잠깐이나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기에 아 이게 정말 잘 풀리는 방향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 봤습니다. 물론 역사는 만약이라는 게 없으니... 그만큼 다양한 갈래로 상상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요. ㅎㅎ

  • 동학농민운동이 성공을 한다 해도 조선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나는 의문부호가 붙죠
    다만 이 사건이 빡치는건 개화니 뭐니 하면서 백성들 등골 뽑아놓고 고작 농민군 하나 진압 못 할정도로 국력이 약해진걸 세상에 드러내게 했고 청나라 부르면 일본이 올거란걸 예상하지도 못 하는 정신나간 외교정책을 보여준게...

  • 작성자 26.05.11 23:46

    그거 하나만으로도 고종 쉴드칠 이유는 다 날아가요. ㅎㅎ

  • 26.05.11 23:55

    동학농민혁명->3·1 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촛불혁명->빛의 혁명까지

  • 작성자 26.05.11 23:56

    구한말 의병운동도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ㅎㅎ

  • 26.05.12 09:59

    두선생의 역사공장인가 거기 이완용에 관한 영상에 댓글보고 두통이 오고 열받아서 죽는줄.. 구독도 취소함 이완용 덕분에 조선말기 백성들이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또 러시아에 조선이 안넘어가서 다행이다 고종이 잘못 한건데 이완용이 모든걸 뒤집어 쓴거다등 하여간 이완용과 일본 식민지 덕에 조선이 근대화가 빨리 될수 있었다는둥 별에별 댓글들을 볼수 있었음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댓글 분위기였음

  • 26.05.12 12:10

    뉴라이트 소굴이군요;;

  • 작성자 26.05.12 15:25

    댓글로는 별의별 얘기들이 다 나올 수 있긴 한데... 유투버 당사자도 그 댓글들에 좋아요 눌러주나요?...

  • 26.05.12 16:30

    @서초패왕 항우 그냥 댓글 달아주는거에 대한 감사의 의미인지 전부 하트가 있었던거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영상을 보려다 열받아서 나와 버렸네요 기억 나는건 이완용으로 인해 고종의 잘못이 덮어졌다거나 고종이 제일 잘못 했는데 이완용의 독박 썼다는 뉘앙스의 글에 동의하는 댓글이나 좋아요 표시가 있었던거 같기는 하네요

  • 작성자 26.05.12 16:33

    @포항레이커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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