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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제 4장 엘리 가문의 몰락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적으로 성취되었으며 먼저 엘리 가문의 몰락의 전 단계로서 블레셋의 침입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언급하고, 그 다음으로 엘리 가문의 몰락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의 패전 (4:1-10절)
블레셋의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이스라엘은 비참하게 패배를 당하게 되는데 그 전투의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오직 블레셋이라는 하나님의 도구에 의해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후 계속적인 전쟁의 기사가 소개되는데 그 때마다 강력한 지도자가 없었던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백성들은 새로운 왕정체제를 필요로 하게 된다.
4장1절에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게 전파되니라.’고 한 것은 3장의 결론으로서 사무엘의 선지자적 권위를 요약 정리하는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블레셋 족속은 사사 시대에 들어와서는 가나안 땅 남서쪽을 완전히 차지하여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다. 이들은 당시 상당한 수준이 높은 문명을 소유했으며 가나안 지역에서 유일하게 제철 기술을 보유하여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잘 무장된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저들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배했으며 강한 압제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마찰이 야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엘리 제사장 당시 이스라엘은 B.C 1095년 이후 40년간 블레셋의 계속되는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전투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를 벗어나고자 시도한 것이 틀림이 없으며 그로 말미암아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 시기는 블레셋이 압제를 시작한지 약 20년이 경과된 B.C 1075년 경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먼저 일어나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에 진을 쳤는데 이곳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두 번씩이나 패한 곳이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한 곳이며, 법궤를 빼앗긴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후일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을 세우고 사무엘이 명명한 ‘미스바와 센 사이에 있는 에벤에셀’과는 다른 곳이라고 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쳤는데 이곳은 이스라엘이 진을 친 곳에서 3.2km 떨어진 샤론 평원의 한 지점으로 가나안 족속들의 아성인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자기들의 진지로 삼았다. 이는 당시 블레셋 사람들의 맹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갖추고 전투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정규 군인들처럼 군대를 질서 있게 배치했으며 일제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공격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왔으나 전열을 갖추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선제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죽임을 당한 군사의 숫자가 사천 명 가량이었다. 이는 당시의 인구에 대비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인 곳은 ‘사데’라고 했는데 이 말은 ‘들판’이라는 말로 자기들이 이길 것으로 판단하여 적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퇴각하지 않고 평지에서 전면전을 벌이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인 백성들이 패전을 하고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장로들은 전혀 뜻밖의 패전 소식을 접하자 너무나 놀라서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병력이나 군비의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전투에서 패했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전쟁의 패전의 이유는 범죄의 결과라는 인식 속에 이는 하나님의 경고, 혹은 징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패전의 원인을 자기들에게서 찾지 않고 ‘여호와’께 그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 참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는 영적 무지함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방 우상 신들처럼 당신의 백성에게 무조건 복을 주시는 분으로 알았으며, 죄악에 대하여 공의를 베푸시는 살아 계신 인격의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패전했으면 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했어야 옳았지만 저들은 그 패전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따라서 이후에는 미신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로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기막힌 방안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 성소에서 전쟁터로 옮겨다 놓고 그 언약궤가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투에 패한 원인이 전쟁터에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미신적인 사고방식으로 언약궤 그 자체에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있다고 믿은 것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의 생각은 당시의 이방 우상 문화에 깊이 젖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실로는 이곳으로부터 37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하룻길을 걸어서 실로에 도착하여 언약궤를 가지고 왔다.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칭에서 그룹 사이에 계신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왕으로서 여호와의 신분적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며,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친히 다스리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다만 그분의 임재를 상징하는 상징물인 언약궤 그 자체만을 신뢰하였다. 당시 성소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지극히 타락한 자들이 거룩한 언약궤를 돌보고 있었다가 백성들이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갈 때에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이들도 따라서 전쟁터로 나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 어깨로 메어야 하는데 이 모든 절차는 생략되고 백성들이 임으로 언약궤를 만지고 옮겼던 것이다.
언약궤가 전쟁터에 도착하자 백성들은 마치 전쟁에 승리라도 한 것처럼 확신하고 큰 소리를 외치며 환영하였다. 그러나 상징물만 남아 있고 하나님은 떠나버린 이 전쟁은 결코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땅이 진동할 정도로 외친 백성들의 기쁨의 환호와 외침은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호를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놀라서 그 연유를 조사했더니 저들의 신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것을 깨닫고 크게 두려워하였다. 이방인들은 수호신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타국의 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신의 궤가 진영에 들어왔다는 것은 신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으로 본 것이다. 저들은 여호와의 신에 대해서는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동족을 몰살시킨 삼손이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할 때에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온 사실이 없었다는 것과, 블레셋 족속들이 전쟁 중에 처음으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블레셋에게는 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블레셋 족속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일들 때문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은 원래 애굽에 가까운 곳에 살았으며 다른 어느 족속들보다도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놀라운 심판을 잘 알고 있었고 그 후에 애굽의 강력한 세력에 밀려 팔레스틴 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기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애굽을 징벌하신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여호와의 강한 힘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효과적으로 자기들에게 용기를 갖도록 만들었다. 블레셋 족속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군사들에게 전쟁에 패하여 히브리인들의 노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그들 스스로에게 분발하여 싸워 이겨서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자고 한 것이다. 즉 상대방에게 노예가 됨으로 전쟁의 포로가 되고 억압과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소기의 목적을 거두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블레셋은 승리를 거두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블레셋의 용기와 지도력이 큰 작용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 붙였기 때문이었다.
블레셋은 그들의 마음에 배수진을 치고 마치 이스라엘을 삼킬 듯이 결사적으로 싸웠다. 적군의 신이 왔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게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완전히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 삼만 명이 엎드러져 죽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첫 번째 싸움보다 훨씬 더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것이다. 이 같은 전사자의 숫자는 한 지파의 장정의 수와 거의 비슷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의 전투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본토로 쳐들어갔고 심지어 실로 성소까지 훼파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땅에 처음으로 수비대를 상주하게 하였고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제철 공장을 파괴하였으며, 철기문화에 있어 전적으로 자신들을 의존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2. 엘리 가문의 파멸 (4:11-22절)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네 가지이다. 이 같은 심판은 단순히 엘리 가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시내 산 계시에 의존하여 모세가 법궤를 제작한 이후로 그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인시켜 주는 지극히 거룩한 상징물이었다. 그러므로 법궤를 탈취당한 것은 이스라엘 성막사에 있어서 지극히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상징을 마치 본질인양 생각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두려운 징계였던 것이다. 법궤 탈취 사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일깨워 준다.
첫째,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징물이나 공간적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법궤는 아무 쓸모가 없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셋째, 범죄로 인하여 언약이 파기된 곳에서는 그 어떠한 의식을 치룬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혀 방패와 도움이 도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엘리 가문에 대한 첫째 심판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빼앗기는 그 날에 블레셋 군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이방의 군인들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수치요 참담함 그 자체였다.
두 번째 심판은 자녀 교육을 등한히 한 제사장 엘리의 급사이다. 전투 현장에서 37km를 달려 실로 성소에 온 어떤 베냐민 사람이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제사장 엘리에게로 와서 전황을 보고하게 된다. 엘리는 전황이 궁금하여 길옆에 의자를 두고 거기에 앉아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언약궤를 보관할 최고 책임자였기 때문에 언약궤를 전쟁터로 보낸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며, 그 일로 인하여 마음이 떨고 있었다. 전령이 와서 전황을 사실대로 보고했을 때 여호와의 궤에 미신적인 기대를 걸었던 백성들이 실망하며 부르짖고 떠들었으며 이 소란한 소리를 들은 엘리가 정황을 알기 위하여 전령을 불러 물었는데 제일 먼저 보고를 받아야 할 사람이 제일 늦게 불길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나이가 구십팔 세였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였고 아마도 귀가 둔하여 잘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엘리의 질문에 전령은 이스라엘의 패전과, 큰 살육 당함과, 엘리의 두 아들의 죽음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고 전했다. 이 중에서도 법궤가 이방인들에게 빼앗긴 소식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두렵고 떨리는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엘리는 앞의 세 가지 비극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만큼 견디어 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견딜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던 것이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요, 일평생을 성소에서 봉사해온 대제사장 엘리의 말년은 참으로 비참하게 끝났다. 엘리는 58세에 사사가 되어 98세에 죽었다. 그는 재직 중에 20년 동안 강대국인 블레셋과 전쟁, 화해, 타협. 등을 통해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으며 비록 블레셋의 압제를 받기는 했으나 그나마 백성들을 지키며 지내왔던 것이다.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조산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해산할 때가 가까웠을 때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배가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했으며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출산을 큰 축복으로 여겼던 당시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도 않고 관념하지도 않고 자신의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녀는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불렀는데 이는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의미이다. 엘리와 두 아들의 죽음,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일로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이방인의 손에 넘어갔으므로 엘리의 며느리가 한 말은 참인 것이다.
*시78:60-64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훗날 시인은 이때의 정황과 슬픔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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