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후일
김소월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진달래꽃>(1925)-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애상적, 민요적, 서정적
◆ 표현 : 가정적 상황을 통해 정서를 드러냄.
반어적 진술, 반복과 변조의 기법을 사용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무리면 → '나무라면'의 함경도 방언
*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 당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어지지 않아서
잊었노라고 대답하겠다.
*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 줄곧 당신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다가
3연까지 은폐되어오던 화자의 본심을 무심코 드러내고 마는 시구임.
화자는 계속 '잊었노라'고 강조했지만, 그것은 실상 '결코 잊지 못함'의
반어적 표현에 지나지 않음.
* 먼 훗일 그 때에 "잊었노라." → 먼 훗날 당신을 만날 그때에 잊었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 화자 : 임을 그리워하는 이
◆ 주제 : 떠난 임에 대한 강한 그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먼 훗날 임과 만날 때의 화자의 반응
◆ 2연 : 임의 질책에 대한 화자의 반응
◆ 3연 : 임의 계속되는 질책에 대한 화자의 반응
◆ 4연 : 임을 잊지 못하는 화자의 애절한 마음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임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간결한 형식에 담아 표현한 작품으로, 반어법을 사용하여 임을 잊지 못하는 간절한 마음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
세상의 모든 사랑은 영원성을 욕망한다. 어떤 가혹한 시간 속에서도 지금의 사랑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내 사랑의 편이 아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보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랑의 시는, 사랑의 불안한 미래를 견뎌내는 자기만의 내밀한 논리를 찾아 나선다.
당신이 지금 곁에 없다면, 무척 그리워하다가 결국 사랑의 미래를 믿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신이 그런 나를 나무라면 어떻게 변명할까? 이 시는 간절한 반어법으로 이 비극적 상황을 넘어선다. 미래에 먼저 가서 현재의 내 사랑을 잊게 되는 장면을 설정한다. 지금 당신의 부재 때문에 미래가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랑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먼 훗날' 당신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직설법보다 더욱 간절한 것은, '오늘도 어제도'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없다는 현재의 뜨거운 진실이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당신에 대한 원망을 넘어서, 지금 내 사랑의 절박함에 대한 비명이 된다. 그래서 '먼 후일'은 끝내 만나고 싶지 않은 어떤 시간의 이름이다. 저 무서운 시간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 사랑에 대한 가정법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어, 드디어 사랑의 영원한 현재성에 가 닿는다.
김소월은 한국 현대시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시인이다. 그의 사랑의 시가 뛰어난 것은 사랑에 처한 개인의 복합적인 정서를 진정성으로 노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을 둘러싼 섬세한 욕망에 대한 현대적 표현이었다. 내향적인 심성의 김소월의 생애는 생활고와 식민지의 억압적인 공기 속에서 불우했다. 생애의 마지막 시간들을 그는 정신적 경제적 폐인으로 살았다. 죽음의 순간 아내의 입에도 아편을 넣어 주었다고 알려진 생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비극으로 전해지지만, 사랑의 시들은 그 개인적 비극조차 생에 대한 사랑의 반어법으로 읽게 한다.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 · 문학 평론가>
[작가소개]
김소월 : 김정식 시인
출생 : 음력 1902. 8. 6. 평안북도 구성
사망 : 1934. 12. 24.
학력 : 도쿄대학 상과 중퇴
데뷔 : 1920년 시 '낭인의 봄'
수상 : 1981년 금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경력 : 1926 동아일보 정주지국 설립
작품 : 도서, 오디오북, 기타
<개설>
본관은 공주(公州).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평안북도 구성 출생. 아버지는 김성도(金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정주와 곽산 사이의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오산학교 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이돈화(李敦化)·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시작활동은 1920년『창조(創造)』에 시 「낭인(浪人)의 봄」·「야(夜)의 우적(雨滴)」·「오과(午過)의 읍(泣)」·「그리워」·「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작품발표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개벽』에 실린 「금잔디」·「첫치마」·「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개여울」·「제비」·「강촌(江村)」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삭주구성(朔州龜城)」·「가는 길」·「산(山)」, 『배재』 2호의 「접동」, 『신천지(新天地)』의 「왕십리(往十里)」 등이 있다.
그 뒤 김억을 위시한 『영대(靈臺)』 동인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을 게재지별로 살펴보면, 『영대』에 「밭고랑 위에서」(1924)·「꽃촉(燭)불 켜는 밤」(1925)·「무신(無信)」(1925) 등을, 『동아일보』에 「나무리벌노래」(1924)·「옷과 밥과 자유」(1925)를,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물마름」(1925)을, 『문명(文明)』에 「지연(紙鳶)」(1925)을 발표하고 있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개벽』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생에 대한 깨달음은 「산유화」·「첫치마」·「금잔디」·「달맞이」 등에서 피고 지는 꽃의 생명원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원리,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원리에 관한 통찰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시 「진달래꽃」·「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먼후일」·「꽃촉불 켜는 밤」·「못잊어」 등에서는 만나고 떠나는 사랑의 원리를 통한 삶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민요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생에 대한 인식은 시론 「시혼」에서 역설적 상황을 지닌 ‘음영의 시학’이라는, 상징시학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집 『진달래꽃』 이후의 후기 시에서는 현실인식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게 부각된다.
민족혼에 대한 신뢰와 현실긍정적인 경향을 보인 시로는 「들도리」(1925)·「건강(健康)한 잠」(1934)·「상쾌(爽快)한 아침」(1934)을 들 수 있고, 삶의 고뇌를 노래한 시로는 「돈과 밥과 맘과 들」(1926)·「팔벼개 노래」(1927)·「돈타령」(1934)·「삼수갑산(三水甲山)·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1934) 등을 들 수 있다.
시의 율격은 삼음보격을 지닌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평가된다. 또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적 정감을 눈뜨게 하였다.
1981년 예술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시비가 서울 남산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 생전에 출간한 『진달래꽃』 외에 사후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1939), 하동호(河東鎬)·백순재(白淳在) 공편의 『못잊을 그사람』(1966)이 있다.
<참고문헌>
『김소월전집』(김용직,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한국현대시인연구』(김재홍, 일지사, 1986)
『시와 상상력의 구조』(김현자, 문학과 지성사, 1982)
『김소월 연구』(신동욱 편, 새문사, 1982)
『꿈으로 오는 한 사람』(오세영 편, 문학세계사, 1981)
『현대시론』(정한모, 민중서관, 1973)
『문학과 인간』(김동리, 백민문화사, 1948)
「임과 집과 길」(유종호, 『세계의 문학』, 1977.봄호)
[네이버 지식백과] 김소월 [金素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