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연중 제19주일, 8월 11일, 요한 6,41-51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
+찬미 예수님
미국의 스푼론,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 일본의 격차세습, 영국의 Underclass.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불평등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Born with a silver spoon in your mouth” 미국의 미디움 사전에 나온 내용입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것은 부잣집 혹은 명운가에서 태어나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절대적인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한국말 표현은 은수저가 금수저로 바뀌면서 누구는 금수저를 입어 물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비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은 격차세습이라는 말을 통해 교육, 직업, 부와 권력이 세습된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오야가차’(親ガチャ,부모 뽑기)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좋은 부모를 잘 뽑아 골라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런 말들이 유행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불평등한 사회에서 차별과 불공정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차별을 무척 싫어합니다. 인간의 본성상 자연스럽게 공정성을 중요시합니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낮게 평가된다고 느끼면, 이는 심리적 고통과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지며, 불평등과 차별은 개인이 가진 존엄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가 침해될 때 사람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치열한 경쟁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주입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눈에 보이는 점에서는 아주 공정한 것 같지만, 태어날 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익부 빈익빈으로 연결이 되고 앞으로 사회의 심각한 불안의 원인이 됩니다.
국가는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개선하는 데 힘을 써야 하지만, 현실은 갈수록 기울어진 운동장이 나타나고 불평등과 차별은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사랑과 뜻이 펼쳐지고 정의와 사랑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말합니다.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4)
하느님 나라는 생명과 사랑 그리고 공정과 정의가 살아있는 평등의 나라입니다. 당연히 하느님 나라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불평등과 차별을 통하여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그 기적을 통해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알고서는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한 6,42)
유다인들이 생각하길, 별 볼 일 없는 집에서 태어난 그가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 출신 배경에서부터 의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43-44)
하느님 나라의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 하느님께로 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불평등과 차별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불러주시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 자녀들이 모인 곳입니다. 하느님 자녀는 공정과 정의를 이 땅에서 살아내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먼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믿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불평등과 차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을 내어놓고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가난하고 약하고 병든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았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2, 44-45) 이런 삶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은 온갖 분노와 죄를 양상하고 사회적 혼돈과 불안을 조성합니다. 사회적 불신과 계층 간의 갈등 그리고 전반적인 사회발전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31-32)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생명의 빵을 먹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해봅시다.
불평등과 차별을 일삼는 사람이 세상에 생명을 주겠습니까?
갑질의 분노와 욕설과 죄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생명을 주겠습니까?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 자기 뜻대로 고집하는 마음과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세상에 생명을 전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믿음은 참으로 영원 생명을 주심을 굳게 믿습니다.
주님께 가까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그말씀 따라 행하면 참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볼수있고 생명의 빵을 나눠먹으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을 저희가 깨달아 알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하여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믿고 빵을 나누던 열두제자가 백명으로 천명으로 수십만명으로 불어나고 마더데레사성녀님의 나눔행렬이 수킬로로 이어지고 이태석신부님의 주님닮은 삶이 겨자씨되어 부활을 이룸을 그 은혜로움에 저희는 오직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삶도 주님 가까이서 살때 모든 근심걱정 이겨나가 사라졌음을 주님나라 건설하는 형제 자매들과 땀흘리면서 더욱 행복해졌음을 놀라고 기뻐하며 즐거워 하나이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의 빵을 먹고 생명을 전하는 그리스도 인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주님뜻을 이루어 살게 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아멘.
+ 찬미예수님
"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있는 빵이며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요한 6/50~ 51) "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우리는 ,불평등 으로 하여 점점 더 기울어져 가는 운동장 같은 현실이 날로 더 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 모든 것을 나누면서 같이 살아가는 생명의 정신으로
" 공정을 물 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 처럼 흐르게 하라. ( 아모스 5/20) " 고 한 아모스 예언자 의 말이
절실한 때 입니다.
"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남자 만도 오천명이나 되고, 남은 조각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 마태오 14/19~ 21) "
금수저, 흙수저 로 차별 , 불공정을 경험하는 젊은이 들이 울분과 낭패감으로 하여 일찌감치 ,사회에 발
내 딛는것을 겁 먹고 물러나 앉아 버리는 은둔형이 될 수 밖에 없는 불안감을 해소 시켜 줄 수 있기 위해서는 , 우선 임기 응변식이 아닌 단단하게 마땅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깊이 연구 모색 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 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