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감옥의 지존파에게 임하셨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라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공판에 참석하면서, 영치금을 넣으면서, 깊어가는 가을밤에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희들의 감옥의 선배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고 다시 계속 편지를 보내고 영치금과 함께 방한복, 담요, 양말 등을 넣어 주었다. 1심에서 이경숙은 집행 유예로 석방되었다. 사건과 정황과 본인의 뉘우침이 정상 참작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지존파의 마음을 녹였다. 편지 내용도 자신들이 저지른 극악 무도한 죄악을 하나 둘 뉘우치는 내용으로 점점 바뀌었다. 검찰 고위층으로부터 복음을 전하기 위한 특별 면회를 허락 받았는데 자꾸 연기되어 안타까웠다. 이유를 알아보니 타종교에서도 그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새벽 기도를 하는데 문득 바울 선생의 옥중 서신이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복음은 능력이니 편지를 통해 전도하면 되겠다는 묘안이 떠올랐다. 말하자면 복음 서신인 셈이다. 서신을 검열하는 교도관들이 편지 내용이 이상하니 거의 다 읽을 것이고, 감방 하나에 일곱 여덟 명이 있는데 내 편지가 들어가면 돌려 읽느라 편지가 헤어진다는데, 여섯 개 감방 사십여 명에게 동시에 복음을 전하게 된다고 생각하자 흥분되었다. 기도하고 복음서신을 썼다. 10페이지 7000자에 달하는 장문의 서신을 보냈다.
먼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구원의 목적, 성경을 쓰신 목적,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장 핵심인 은혜, 인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을 소개한 후 성경은 왜 읽어야 하는지, 기도는 왜 해야 하는지, 예수 믿는 사람들의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전도는 왜 해야 하는지 가르쳤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전도자가 될 수 있다고 썼다. 세 사람은 영접했고 세 통은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다시 복음 서신을 보냈다. 두 사람이 영접했다. 지존파가 감방에서 전도를 시작했다. 김현양은 과실 치사로 구속된 택시 기사 박 씨를 전도했다. 박 씨가 보석으로 석방되어 나를 찾아와 신앙 지도를 받았다. 12월 2일 강동은이 전도한 안건도(당시 나이 37세) 씨도 신앙 지도를 요청해 복음을 제시했다. 대기업 홍보 과장이던 그는 절도범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 유예로 석방되어 나를 찾아왔다. 죽고 싶다고 했다. 복음을 설명하여 구원의 확신과 용기를 심어 주고 항소심 지도를 했는데 얼마 후 선고 유예 판결을 받고 찾아와 은인이라며 감사인사를 했다. 결신한 후 찾아와 감사하다고 인사했으며 강문섭의 형 강수명도 왔다. 또 한 통이 돌아왔다. 김기환이 쓴 것이었다.
선생님 사랑은 죽도록 감사하여 은혜 갚을 길 없습니다. 그러나 제발 예수 믿으라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94년 봄에 동생들과 술자리에서 맹악했던 게 있습니다. "김기환이 불교에 귀의하게 하면 그 사람이 석가모니고 김기환이를 예수 믿게 하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너희들은 이 지존자 김기환을 믿어라." 이렇게 한 번 먹은 마음 돌이킬 순 없습니다.
나는 질책과 설득이 담긴 복음 서신을 다시 써 보냈다. 드디어 김기환이 주님을 영접했다. 지존파 여섯 놈으로부터 나와 동역자들에게 성탄 카드가 왔다. 김현양의 여동생 순옥이가 오빠를 도와 주어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 왔다. "만남"이란 시를 지어 6명에게 보냈다. 성탄절에 김기환이 구치소에서 세 번 예배를 드렸다. 94년 12월 중순까지 오고 간 편지가 32통이나 됐다. 옥한흠 목사님께 그들이 회개한 것과 영접한 사실을 보고 드렸다. 목사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감동적인 편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셔서 드렸다. 그런데 12월 25일 성탄절 예배 때 구원에 대해 설교하다가 편지 내용을 소개하셨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시고 은혜 베푸시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김현양과 감동은의 편지를 한 장씩 낭독하셨다. 김현양의 편지부터 읽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크고 넓고 깊어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감옥은 저에게는 천국입니다.
다음으로 강동은의 편지를 읽으셨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 선생님이 넣어주신 방한복을 몸이 약한 분에게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적막이 감돌며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여자 성도들이 울고 있었다. 성탄절 예배는 1부에서 4부까지 모두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날 동시 다발적으로 교회 신문인 「우리」지와 「목마르거든」에도 지존파 회개 기사가 크게 실렸다. 교역자와 교인들의 시선이 집중되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 집사님 큰일하셨습니다.". "대단하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들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나는 교회의 심부름 노릇만 했을 뿐이라고 대답하고 보니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실수를 했구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저녁에 교인들로부터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다들 누가 하기는 해야 할 텐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내가 직접 했다는 내용들이었다. 어떻게 전도할 마음을 먹었느냐, 접촉은 어떻게 했느나, 무섭지는 않았느냐 질문도 다양했다. 그 중에 당시 우리 교회 교인이자 한국일보 사회부 차장인 설희관 씨로부터 전화가 여러 번 왔다. "이 집사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옥 목사님 설교 듣고 은혜 많이 받았고 교회 신문 우리지도 읽어 보았습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일단 사건이 터졌다 하면 상업성에 치우쳐 사건을 확대해서 부정적으로 다루어 온 게 사실입니다. 제 명예를 걸고 지존파 사건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 번 다뤄 보려고 하는데 집사님께서 승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고등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고, 승낙하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라는 이유와 함께 설교하신 옥 목사님께 말씀 드려 보라며 제의를 거절했다. "옥 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이 없습니다. 집사님께서 저의 뜻을 옥 목사님께 말씀 드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설 차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옥 목사님께 말씀 드렸다. 교인들의 감정이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 같고 또 기자가 우리 교회 교인이라니 취재에 응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한국일보 94년 12월 29일자 특종으로 지존파의 회심을 사회면에 전면 기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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