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2, 2024 포르치운쿨라 축일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희망과 열망의 포르치운쿨라
포르치운쿨라 축일 어제 그리고 지난 10일간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면서 그 의미가 무엇일까? 특히 올해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올해 축일을 지내는 곳이 이곳 아시시 마을이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 축일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원래 올해 저는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제주에서 하려고 했는데 이곳 아시시 마을에서 서울 3개 지구 합동으로 축제를 지낸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곳을 향해 행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 이름을 아시시 마을이라고 하고, 이곳에서 포르치운쿨라 축제를 지낸다고 하니 이곳이 서울 지구 형제회들의 아시시와 포르치운쿨라가 되겠구나, 아니, 더 나아가서 되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되도록 저와 우리 행진단이 일조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것이고. 그래서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여기까지 10박 11일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행진 중간 쯤 주례와 강론을 제게 부탁하는 메일을 받고는 이런 저의 마음을 주최 측에게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이신전심인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엮어주시는 것 같기도 하여 마음이 묘했습니다. 아무튼 아시시 마을은 서울 지구들의 포르치운쿨라가 되면 좋겠다는 영감이 떠올랐고 그래서 회원들, 특히 초기 양성기 회원들이 프란치스칸 원천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서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포르치운쿨라 축일의 의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많은 회원이 이 축일을 전대사 얻는 축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대사를 얻는 축일인 것 맞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전대사를 얻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칸의 고향과 원천을 찾아가 쇄신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고백성사를 본 것도 전대사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프란치스칸답지 않았던 잘못을 뉘우치고 쇄신하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전대사는 축일을 통한 쇄신의 결과로 주어지는 은총이지 축일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전대사가 목적이라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꼴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이 행사 계획 당시 이곳 아시시 마을에서 이 축일을 지내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됐고, 전대사를 받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축일을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 어제 걸으면서 보니 우리의 행진이 순례와 기도와 쇄신의 행진이 아니었습니다. 걷는 내내 세상 얘기만 하는 분들이 있고 그래서 기도하는 분위기가 깨어졌습니다. 더위의 고통과 발이 아픈 고통을 봉헌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일생 복음을 선포하러 다니며 겪었던 순례자와 나그네의 불편을 같이 겪으려는 그런 마음이 부족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한 것처럼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그대로 불평으로 토해냈습니다. 그리하여 불편이 봉헌이 되지 못하고 불평으로 끝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쇄신을 하려면 자기 성찰 곧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 보기 힘들었고 어제 고백성사를 볼 때도 기다리면서 자기를 깊이 성찰해야 하는데 잡담을 하여 다른 사람의 성찰을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절에 가는 의미를 묻습니다. 불공을 드리고 염불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되겠습니까? 아무튼 저는 올해 이곳 아시시 마을의 첫 번째 포르치운쿨라 축제에서 희망도 보았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또 할 것을 전제로 한 말이고, 앞으로 할 때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부족했던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지금 생각하는 피정의 집이 되고, 아시시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이 여러분에게 아시시가 되어야 하고 이곳을 포르치운쿨라로 만들어 가려는 열망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실망스러운 모습 대신 포르치운쿨라로 만들어가는 희망과 열망이 있기를!
오늘 강론은 경기도 마석 글라라의 집에서 있는 서울 3개 지구 합동 포르차운쿨라 미사 때 할 강론을 대신합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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