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명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보기 좋으며 화려한 넓은 문을 얼마나 선호했는지요?(마 7:13-14).
이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지만 좁은 문은 비록 좁고 협착할지라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지식과 관념으로만 알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무너질 모래 위에 지은 집이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인 줄 알고 있습니다(마 7:24-26).
그런데 진리 안에 세우는 것이 어찌 그리 잘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는 빤한데 드러나는 행동은 거침없이 겉으로 보기에 좋고 화려한 집을 지으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오늘은 24년도 첫 주일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도록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셨사오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기 원하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충만히 허락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3:7-19
제목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안식일에 전에 들어가셨던 회당에 다시 들어가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다.
그 일을 트집 잡아서 예수를 죽이려고 바리새인들이 헤롯당원들과 음모를 꾸민다.
이제 예수님은 그러한 바리새인들을 피하여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셨다.
예수님이 바다로 나가신 것을 알고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한 유대와 예루살렘 그리고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 북쪽의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도 예수님이 행하신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그들에 의하여 에워싸였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배를 준비하라고 시키셨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고치셨기 때문에 갖가지 병으로 고생을 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지기라도 해서 병을 고쳐볼 생각으로 몰려온 것이다.
이 때 더러운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들이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그들을 엄히 꾸짖으셨다.
그 후에 예수님은 산에 오르시면서 원하는 몇몇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올라왔다.
그렇게 예수님은 열두 사람을 세우셨다.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도 가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열두 제자의 이름은 이러하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주셨다.
그 외에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열심당 출신 시몬 그리고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이다.
이전에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막 1:42).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입단속 곧 이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말 것을 명하셨다.
그 이유는 고침을 받은 사람이 나가서 나팔을 불면 예수님의 사역이 여기서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침묵 명령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지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함도 아니고 귀신 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함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지기 전에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십자가 지는 일이 막히기라도 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일은 병을 고침 받은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귀신들조차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소리를 치며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1-12)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그런데 귀신들의 이 고백은 믿음의 고백,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이 만약 신앙의 고백으로 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을 괴롭히는 더러운 귀신이 되었을 리 없다.
이들은 어떻게 하든지 믿는 자들을 하나님과 이간질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야고보 사도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경고한다.
그런 믿음은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은 믿음이 바로 귀신들이 말하는 고백이다.
그들은 도무지 행함이 없이 말로만 떠드는 고백일 뿐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고백이 바로 그렇다.
그것은 지식적이요 관념적인 고백에 다름 아니다.
성경은 분명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런데 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이 믿음이란 진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의미한다.
진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47절과 54절은 병행구절이다.
믿는 자가 영생을 얻고, 또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
따라서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1년에 몇 차례씩 먹고 마시는 성찬식의 떡과 잔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성만찬에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1:24, 26)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주님의 명령에 따라 우리가 1년에 몇 차례씩 하는 성찬식은 눈으로 보는 설교이며 무엇보다 주님의 죽으심을 재림하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성찬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날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것은 곧 주님의 살과 피를 표상하는 생명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은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는 자였다.
그는 날마다 야곱의 우물에 가서 그 우물의 물을 퍼마셨다.
그러나 여전히 목이 마르고 갈증이 났다.
그런 여인을 신적 계시로 아신 주님은 어느 날 수가성 여인을 만나러 찾아가신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생수를 주신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렇게 이 여인은 예수님이 주신 생수를 마시고 완전히 바뀐다.
그리하여 자기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복음전도자가 된다.
나는 믿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였다.
믿음은 귀신들의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기도할 때나 전도할 때 무조건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내뱉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지식적인 믿음을 달달 외워 내뱉는 것을 본 이들은 나의 믿음이 크고 대단한 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하나님은 안다.
나의 믿음이 얼마나 일천하고 볼품없는 것인지 말이다.
믿음은 주님이 당하신 메시야적 구속사건에 연합하는 것인데 이를 알 리 없는 나는 그저 입술의 고백으로 다 되는 것처럼 행했던 것이다.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그저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따름이나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제라도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에 연합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나의 자아를 낮추고 굶주리게 하는 것이 내가 진정으로 살 길임을 믿는다.
그것이 자기부인이요 말씀을 통하여 얻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를 통하여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났다.
그런 나는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아담의 생명으로 죽을 자였다.
하지만 창세전 언약으로 인하여 나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고 그 은혜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제 오늘이라는 이 시간이 내게 주시는 영생을 누리는 시간이요 크로노스라는 시간에 틈입하여 오신 하나님의 시간 곧 카이로스의 시간임을 믿는다.
비록 순간순간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자빠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드시는 주님을 힘입어 파레시아 곧 담대함으로 아버지 품으로 나아간다.
거기에 나의 영광이 있으며 또한 아버지의 영광이 있음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믿음은 귀신들이 믿고 큰 소리로 떠드는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고백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었고 단순히 지식에서 나오는 고백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오니 이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너무도 황송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그저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과 떨림이 결국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임을 알기에 떨리는 두려움과 함께 말씀에 대한 끌리는 매혹으로 주님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나를 받아주소서.
나의 남은 일생이 주님과 더 친밀해지고 주님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주의 자녀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