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의 슬픈 사랑 그리고-(03)
-벤쿠버로-
점퍼에 스잔나를 싸서 안은 마이클과 눈에 눈물이 흥건한 미나를 뒤로 남겨두고 Black 혼다 SUV는 베리 콘도를 떠났다. 다시방의 시계는 밤 11시를 알리고 있었다. 에스유브이(SUV)는 5분도 채 안 되어서 하이웨이 400에 진입하여 북쪽으로 달렸다. 시야는 좋았고 눈도 잦아들었으며 도로는 이미 제설차가 지나갔는지 깨끗하였다. 몇 대의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 먼 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야간 운전을 하지 않으므로. 그런데, 두 사람은 어두운 밤 속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시방에 나타난 온도는 영하 7도였다. 장 초희는 잔뜩 긴장된 자세로 깜깜한 자동차 앞 시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트 불빛에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였다. 실내는 힛팅을 하여 훈훈하였다. 깨스도 꽉 채워져 있었다.
"저~ 우리는 조금 더 가면 페리 사운드(Perry Sound)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일 박할 겁니다. 12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여야 해요."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아마도 12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일 늦어도 아침 10시 전에는 다시 출발할 것입니다. 다른 의견 있습니까?"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ㅎㅎㅎ 그렇군요. 그래도 의견이 있을 때는 지체 말고 말씀하십시오."
"할 말이 있는데, 말해도 돼요?"
"예. 무슨 말씀이든."
"그런데, 왜 딸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지 않고 급한 듯 출발하셨어요?"
그는 잠깐 고개를 돌려 장 초희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함께 떠나기로 작정하였으므로 이별은 빨리 간단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였고,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출발하여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당분간 전쟁을 하여야 하니까 전투의지를 누그려 뜨려서는 안되니까요."
"전투의지라뇨?"
"그렇게 물으시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는 60대 중반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그 먼 길을 다른 사람과 함께 특히 여성과 함께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맞아요. 그런데도 제임스께서는 실행하셨잖아요?"
"ㅎㅎㅎ. 저는 밤이든 낮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장 초희 씨를 벤쿠버까지 딜리버리(delivery) 해야 한다는 부탁이 저의 잠자던 전투 의욕을 깨웠습니다. 이왕 긴장하고 더욱 조심하고 더구나 뚜렷한 목적이 어떤 이유에서 든 생겼으니 그곳까지는 가야 한다는 명제가 정해졌으니 그것을 해 내리라 하는 각오가 정해지며, 잠자던 나를 깨워 활성화해야 한다 하는 나를 위한 각오로 응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제임스 씨, 오래된 이야기지만 군대는 다녀오셨어요? 전투 의욕이라 자꾸 말씀하시니..."
"가면서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지만 천천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였습니다. 태권도 2단이었고 스나이퍼 팀(Sniper Team) 장을 역임했습니다. 군대 이야기는 가면서 해도 다 못합니다 하하하."
"아~ 그래서 전투 의욕이라 하셨군요. 저~ 미안하지만, 하나 더 여쭤봐도 될까요?"
"예. 하나가 아니라 앞으로 가면서 숱한 의문을 물어 실 거니까 그렇게 하나라고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씀하십시오."
장 초희는 자리를 움직여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했지만 옆얼굴만 볼 수 있었다.
그때 와이파이를 켠 다시방에서 벨이 울렸다.
"헬로우~"
"제임스 아저씨, 저예요. 김 미나. 엄마 옆에 계세요?"
"응. 미나야~ 엄마 아저씨 옆자리에 얌전하게 잘 앉아 있어. 왜?"
"어디서 주무실 건지 걱정되어서."
"전화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곧 페리 사운드에 도착할 겁니다. 힘들더라도 가까운 곳의 호텔을 예약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리고 곧 주소와 내역을 알려 주십시오."
"오케이. 아이 갓 잇. 플리스 웨이트 미닛 (Okay. I got it and please wait a second.)."
마이클이 말했다.
"됐습니다. 곧 연락이 오겠지요. 그렇잖았으면, 첫 번째 호텔에 무작정 들어가려 했습니다."
"저어~"
"말씀하십시오."
"죄송한데요."
"ㅎㅎㅎ 죄송하십시오. 괜찮아요."
"고향은 어디세요? 그리고 알오티씨(R.O.T.C.)라고 하셨는데 학교는 어디였어요?"
"ㅎㅎㅎ 알오티씨는 대학 재학 중에 훈련받고 졸업과 동시 소위로 입대하는 것을 말하고요, 잘못 들으셨어요. 저는..."
그는 장 초희를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장 초희는 그런 그의 일거 수 일 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그런 것을 물을 때는 묻는 사람이 먼저 말하는 겁니다. 저의 고향은 경상북도 죽변입니다. 아주 촌이지요. 학교는 S대 법대를 다니다 데모 가담으로 제적(除籍 / expulsion)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군대로 끌러 갔지요. 군대 생활을 하며 조국을 바로 알고 애국을 느끼고 새 인물이 되어 만기 전역을 했지만, 사회는 그러한 저를 원래로 돌려주지 않았지요. 여기까지입니다. 장 초희 선생님은 요?"
그녀는 한참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다.
"그런 이야기는 오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있는 대로 즉석에서 말해야 신뢰성이 있답니다."
"예. 알았습니다~ 저는 요~ 성대 국문학 과를 마쳤고 고향은 원주이에요."
그때 다시 벨이 울렸다.
"헬로우~"
"제임스 아저씨!"
"말씀하십시오."
"페리 사운드로 들어가는 입구에 데이스 인 호텔이 있어요. 어머니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2 베드 원룸으로. 100불 지불하였어요. 엄마 아저씨, 편히 잘 주무세요."
데이스 인 호텔은 아직 네온싸인이 밝게 켜져 있어서 쉽게 찾았다. 그들은 코비드-19 백신 인증과 첵크 인을 하고 2층 룸으로 들어갔다. 큰 침대가 2개 있었고 비교적 깨끗하였다. 간단한 것들만 차에서 챙겨 왔기에 번거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장 초희가 주저하였다.
"왜, 문제가 있습니까? 먼저 샤워하십시오. 저는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그녀는 선 채 아무 말 없었다. 그는 샤워실에 들어가 점검을 하고 나왔다.
"다 이상 없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그는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장 초희는 막상 이런 상황에 닥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과 사별하고 수 십 년을 혼자 살았는데, 갑자기 준비도 없이 여러 번 만난 사람도 아닌 남자와 한 방을 사용해야 하다니...
그녀는 망설였지만, 그가 들어오면 더 난처해질 것 같아서 면 원피스 잠옷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옷을 벗고 더운물을 받으며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몸을 유심히 봤다. 얼굴도 그렇게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
C cup 크기의 가슴도 아직 팽팽하여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아랫배도 조금은 나왔지만 이 정도면 섹시한 것 아니야? 그리고 아직 무성한 헤어 숲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비누 칠을 하고 아직 탄탄하다 생각하는 히프를 주무르며 스스로 전율을 느꼈다. 설마 제임스 저 사람이 덮치지는 않겠지? 그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제서야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오웊이란 서로가 같이 흥분해서 동해야 하는 건데...
어맛,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나이에 미쳤는가 봐. 그녀는 스스로 놀라 급히 샤워를 마치고 팬티와 브래지어를 하고 잠옷을 입고 나오니 아직 그는 오지 않았다. 장 초희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침대에 들어가 눈을 붙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자자. 스스로에게 말하며 시트를 들치고 침대로 들어갔다.
장 초희는 형체가 희미한 남자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강 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놀라 잡은 손을 놓자 물속으로 빠지자 소리치는데 잠이 깼다. 눈을 뜨니 캄캄한 밤이었고 호텔방이었다. 제임스가 생각나서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그는 바로 누워 자고 있었다. 싸이드 테블에 벗어 놓은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다. 조금 더 자고 싶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부스럭 소리가 나며 제임스가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초희는 그냥 반대편 옆으로 누워있었다. 이윽고 그가 나왔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선 채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러다 나에게 덮쳐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니 숨소리마저 가파 지는 것 같아서 안절부절하게 되었다. 다행히 어두워 자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는 하였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자기를 여자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아니,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걸까? 별생각을 다 하였다. 마침내 눈을 떠니 방안이 밝았다.
"잘 주무셨습니까? 아침 8시입니다."
"어마!"
놀라서 일어나다 다시 놀랐다. 잠 옷이 말려 올라가 허벅지가 다 드러나 있었다.
"잠깐, 밖에 나가 계실래요. 금방 샤워하고 옷 갈아입을 게요."
"예.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커피를 가져오겠습니다."
장 초희가 서둘러 샤워를 하고 푸른색 터틀 셔츠를 입고 패딩이 잘 된 바지를 입는데 그가 커피 2잔과 설탕과 프림을 가지고 와서 탁자에 놓고 앉아서 장 초희를 보고 있었다.
"왜요? 뭐가 잘못되었어요?"
"아니요. 잘 되었습니다. 저 아줌마에게 아침을 무엇으로 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뭘 드시면 좋겠습니까?"
제임스는 말을 하며 장 초희의 옷 입는 모습을 유심히 봤다. 동그스름한 히프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아직 처지지 않은 가슴도 좋아 보였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방안을 살폈다. 떠날 준비를 하는 거다.
"제임스 씨, 언제 일어났어요? 제가 자고 있었어요?"
제임스 앞에서는 여자이고 싶어서 인가 별 걸 다물었다.
"예. 자는 모습이 아직 아름답더군요. 저는 밖에 나가 차를 살피고 몸 좀 풀고 왔습니다."
"어머나, 아직이라니요? 오랫동안 이럴 건데요."
"하하하~ 예. 오랫동안 잘 유지하십시오."
"왜요? 상관없다는 말투이어요. 제가 어때 서요?"
장 초희는 일어나 한 바퀴 돌았다.
"예. 좋습니다. 어서 커피 마시고 출발하여야 합니다. 아침은 가다가 팀하튼에서 먹도록 합시다. 오케이?"
"잘도 피해 가시네요. 저는 팀하튼 이 뭔지 몰라요. 제대로만 먹게 해 주세요. 오케이?"
한방에서 같이 자고 나서인지 거리가 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사랑의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