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성공적인 항공 작전이 대개 강릉 기지에서 출격한 작전이었습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한국 전쟁 중 가장 유명한 항공 작전인 "승호리(평안남도 강동군에 속함) 철교 차단 작전"을 소개해 드립니다.
△ 무슨 임무를 위해 날아가는 것일까. 편대 비행 중인 한국 공군 F-51 전투기들
1952년 1월 15일, 찬바람이 몰아치는 강릉 기지. 6기의 F-51 무스탕이 이륙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편대장은 윤응열 대위, 2편대장은 옥만호 대위였습니다.
UN공군 폭격기들도 성공하지 못했던 승호리 철교 폭격 작전에 한국 공군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간 우리 공군도 여러 번 출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기에 이들의 각오는 남달랐습니다.
△ 비행을 마치고 정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조종사.
*전략적 요충지 승호리 철교를 폭파하라*
"2,400미터에서 강하, 100미터 상공에서 폭탄 투하하는 기존 미군 방식으론 성공할 수 없다. 1,200미터에서 강하, 50미터 상공에서 투하하는 초저공 투하를 시도한다!"
평양 동쪽 10Km 지점에 위치한 승호리 철교는 북한군과 중국군의 가장 중요한 보급 루트.
그 중요성 때문에 수많은 대공화기를 배치하고 교각 구조도 폭격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보강되어 있었습니다. UN군에선 폭격기까지 동원, 수 차례 파괴를 시도했지만 승호리 철교는 난공불락이었습니다.
초저공 투하는 격추될 위험도 훨씬 높아질 뿐 아니라 폭격 직후 일어나는 폭발에 휘말려 추락할 가능성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조종사들의 결심은 굳었습니다.
△ 출격 전 임무에 대해 논의하는 조종사들.
*위험을 무릅쓴 초저공 폭격*
△ 한국 공군은 과감한 공격으로 승호리 철교를 폭파했다.
목표에 접근하자 대공포의 주황색 불꽃이 하늘을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제1편대가 목표를 공격했습니다. 빗발치는 포화 사이로 편대장 윤 대위가 강하를 시작했습니다. 몇 차례의 조준 수정, 철교가 코앞에까지 다가왔습니다. 폭탄을 투하하는 동시에 로켓탄을 발사하고 재빨리 이탈! 불기둥이 치솟았습니다.
제2편대의 순서. 제1편대 3기가 엄호하는 가운데 제2편대 3기가 화력을 목표에 집중했습니다. 거대한 파편이 치솟으며 철교 중앙부 두 군데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임무 성공! 한국전쟁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임무를 마치고, 6명 전원이 무사 귀환했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
△ 100회 출격을 기념하는 우리 공군 조종사들의 자랑스러운 사진.
한국 공군은 전쟁기간 중 총 8,495회 출격해서 적의 후방을 공격해 전쟁의 우세를 이끌어내는 차단 작전(63%), 아군을 도와 적을 섬멸하는 근접 항공 지원 작전을 담당했습니다. 희생도 적지 않아 우리 측 항공기는 총 117대가 파괴되었으며, 39명의 조종사를 포함한 총 111명의 공군 장병이 전사했습니다. 호국 보훈의 달 6월 동안 뉴스레터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군 장병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오늘의 평화를 있게 한 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6월이었길 바랍니다.
*승호리철교 폭격작전의 한국공군 조종사명단*
자폭을하는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난공불락의 승호리 철교 폭격작전에 나섰던 한국공군 조종사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