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마니산입니다.
마니산 국민관광지-참성단-정수사-함허동천주차장의 경로로 이동하였습니다.
[마니산유래]
이 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고어로 머리를 뜻하니 강화 사람들이 마리산으로 부르는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뜻한다.
게다가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이 있으니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으며 그 뒤에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니산 [摩尼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마니산 국민관광지에서 출발합니다.
작품명: 강화도에서 시작하다.
작품설명: 천고의 역사를 말없이 간직하고 배달민족의 시원을 알리는 영산이며 겨레의 상징인 마니산을 형상화하여 화강석으로 제작된 반원 아치형태의 문과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되는 성화를 형상화한 3개의 스테인리스 조형물을 결합하여 형상화 하였다.
어른 개인 2000원의 입장료입니다.
만희재 서영보의 시문
참성단
만길이나 높은 곳에 현모한 단을 쌓았는데
하늘까지 닿았고
가벼운 바람에 맑은 아지랑이는 그윽한
정을 끌어 올리네
아득히 앉아서 초파리떼를 헤아리니 우리강토가
눈앞에 질펀하구나
마니산 상상봉에 앉아 있으니 강화섬이
한조각 배를 띄운 것 같으네
단군성조께서 돌로 쌓은 자취는
천지를 버티고 있으니
수만년동안 물과 더불어 머무러 있네
-화남 고재형-
바다가 보이는 풍경
날씨는 좋았는데, 희뿌연게 별로네요~
전망대
멀리 섬들이 보이고요, 안내판에 섬들의 이름도 적혀 있습니다.
계단이 없는 코스를 나름 선택했으나, 계단은 역시 운명인가봅니다.
멀리 나무 사이로 보이는 참성단입니다.
참성단 개방시간
2월말 까지인 동절기는 16시까지입니다. 혹, 산행에 참고하세요.
관리하시는 분이 칼같이 16시에 문 닫으러 오십니다. ㅎㅎ
참성단에서 함허동천으로 가야할 방향입니다.
공룡능선이 따로 없네요~~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이 나무는 높이 4.8m, 뿌리부근 둘레 2.74m 수령150년으로 추정되어진다.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잡혀 있으며 참성단의 돌단위에 단독으로 서 있어 한층 돋보이며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한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옛부터 분재 소재로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이나 문화재 지정(2009.09.16) 사례로는 최초이다.
마니산 참성단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없고 좋네요~
성화채화
이곳은 국조 단군께서 기원전 2283년에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 하시던 성스러운 곳으로 이 성화로는 매년 전국체육대회때 7선녀에 의해 채화된 성화를 보관하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관리하시는 분이 지척에 있기도 했으며,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제단에 오르는 행위를 금한다고 하기에..포기했습니다.
마니산 정상(472.1m)
참성단중수비(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이 비는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에 정남향으로 가로 50cm, 세로105cm의 음각 테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 명문은 1행부터 7행까지는 각 30자 8행은 28자, 9행은 12자로 모두 250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화유수 최석항은 조선 숙종 43년(1717년) 봄에 관내를 순시하면서 마니산에 올랐다가 참성단의 상당부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 별장과 총섭승에게 중수를 명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참성단의 보수와 개축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는데 조선 인조 17년(1639년)의 중수는 일반 년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나 조선 숙종 43년(1717년)의 중수는 참성단 중수비를 통해서만 확인된다.
기이하여 더욱 신기하게 얹혀진 바위.
흡사 고인돌인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바위들이 많아 쉽지 않은 하산길입니다.
칠선녀교도 지나고..
서해의 노을진 석양입니다.
시루떡바위??
바위 한가운데 떡하니 살고 있는 한 그루 나무
정수사 매표소
정수사의 지킴이 털복숭이~~
정수사 전경
정수사 중앙 출입문
전면 중앙 출입문인 4분합문의 꽃 창살은 특이하게 통 판에 조각 되었으며, 꽃병에 연곷과 모란이 담겨져 있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강화 정수사 법당(보물 제 161호)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 회정선사가 세웠고 조선시대 세종 8년(1426년)에 함허대사가 다시 지었는데, 건물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정수사라 고쳤다고 한다.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신 대웅보전으로, 1975년 보수공사 때 숙종 15년(1689년)에 수리하면서 적은 기록을 찾아냈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 5년(1423년)에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4칸이지만 원래는 툇마루가 없이 앞면과 옆면이 3칸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앞뒷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앞면 퇴칸이 후대에 다시 설치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전면 중앙 출입문의 꽃 창살은 특이하게 통판에 조각되었으며, 꽃병에 연꽃과 모란이 담겨져 있는 화려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삶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배워야 할
어떤 것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처동천 주차장
산행 종료
첫댓글 좋은 구경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