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별들에 얽힌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이런 이야기에 맞추어 별들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들어 후손들에 대대로 물려준 것이었다. 본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강조하여 본인들의 지위를 정당화하기도 하였고 (단군신화, 부여 시조 해모수 신화 등) 하늘에 거주한다고 생각된 선녀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를 (선녀와 나무꾼) 꾸며 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는 아무도 우리들이 지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우주에 대한 관심은 공상에 그칠 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쟁에서의 계속된 패배를 뒤집기 위하여 나치 독일이 v- 2 로켓을 만들어 영국 런던을 공습하였을 때 우리가 우주로 가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과 구소련은 그 당시에 최고 수준에 달하였던 나치 독일의 과학자 및 기술자들을 자국으로 데리고 가는 ‘페이퍼 클립’으로 알려진 비밀 작전을 수행하여 로켓 기술 등의 최첨단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가 미국 전체를 전대미문의 충격에 빠뜨린 1957년에 발사되어 지구 주위를 돌았던 구소련의 무인 우주선 ‘스푸트니크’로 나타났다. 그리고 4년 뒤인 1961년에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등장하였다.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 즉 우주선이 바로 장거리 미사일로 바뀔 수 있다는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느낀 당시의 케네디 정부는 뒤쳐진 우주선 개발을 위하여 ‘페이퍼 클립’으로 데려온 폰 브라운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때까지의 존 듀이의 학설에 입각한 과학 기술 교육을 완전히 바꾸었다. (우리나라도 이 영향을 받아 각 급 학교의 과학 기술 교과서가 완전히 바뀌었지요. 필자가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그때까지의 이야기 식이었던 수학, 과학 교과서가 아닌 이론과 실험 실습 중심으로 크게 변화된 교과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미국도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을 발사하였고 달로의 여행에 박차를 가하여 머큐리, 제미니를 거쳐 드디어 아폴로 11호가 1969년 7월 16일 지구 최초로 인류가 달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 때 닐 암스트롱이 남긴 말이 아직도 필자 귀에 생생하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은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큰 비약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공상에서 벗어나 실제로 우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주선 발사는 아주 많은 비용이 필요하므로 지금은 우주 개발이 소강상태이지만 우리가 직면한 환경오염, 인구 증가 등으로 우주로 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아주 강해지면 다시 우주로의 여행이 활발해 질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필자가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달 그리고 화성, 타이탄 등으로 여행을 떠나고 이들 신천지에 거주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그 때를 대비하여 우주 진출에 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