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자네는 무대인일세! -
권다품(영철)
'캐스타블'로 올라가니, 아직 손님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색소폰을 불고 있다.
소리가 자지러진다.
한 곡이 끝나길래 "아무도 없는데 마 내려와서 술이나 한 잔 해라" 했더니, "아니야 형, 그래도 불어야지!" 하며 계속 몇 곡을 더 불고는 내려온다.
"형, 아까 나보고 내려오라고 했지? 혹시, 다음에라도 우리 집사람한테는 그런 말 하지마. 무대 올라가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듣기 싫은 말이야."
"아, 그런가? 나는 손님이 없는데 괜히 나 한 사람 땜에 고생하나 했지."
"흐흐흐, 형 마음은 나는 다 알지! 그런데 우리같은 무대서는 사람들은 내가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음악하는 사람들한텐 손님이 있음 말할 필요도 없이 신도 나고 좋겠지만 설사 손님이 없더라도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게 좋아!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무대가 없으면 끝이야. 같이 음악하던 사람들중에 지금 노가다 하는 사람들도 많아. 안 그러면 클럽 대기실에서 담배나 죽이면서 고도리 치며 기다리면서 룸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안 불러주면 공치는 날이고. 룸에서 불러주면 낑낑거리며 반주기 들고 다녀야 하고. 그것도 자주나 불러주나 어디? 지배인 새끼들한테 상납도 하고 술도 먹이고 해야 불러 준다고. 그 친구들 불쌍해. 손님들 중에는 옷도 다 벗고 알몸으로 연주하라는 경우도 많아."
"알몸은 왜?"
"손님들 중에 술 마시면 남자고 여자고 옷 다 벗고 놀자는 사람들 더러 있어. 방에 손님들이랑 여자들은 다 벗었는데 밴더 한 사람만 옷을 입고 있어 봐. 이상하잖아."
"그거는 그렇네! 그런다고 벗나?"
"벗어야지 그럼. 그 자식들 어쩌는 줄 알아? '야 밴드 임마, 니도 돈벌어 먹으려면 옷 벗어 임마, 팁 줄테니까.' 이러는 놈들 많아. 팁이라도 주면 고마운 거지! 쪽 팔리지만 자식들 벌어먹이고 공부라도 시키려면 어떡해? 벗어야지. 그리고 안 벗겠다는 놈 있으면 지배인한테 불려들어가서 욕을 듣고, 심지어 뺨을 맞는 경우도 많아. 나는 그기에 비하면 요렇게 작은 무대라도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지 형."
"아~! 정말 힘든 직업이구나! 취미로는 모르겠지만 직업으로 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구나! 방송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사람만 보면 '나도 색소폰을 배워서 저렇게 연주를 한 번 해 봤으면 했는데, 클 날 뻔 했네!"
"그렇지! 그리고 형같은 성격에는 버티지도 못해. 우리 나라에 정말 멋진 연주자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불상한 애들이야. 그 새벽에 마쳐선 포장마차에서 소주 몇 잔 마시고 들어가고.... 그래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거야 형. 나도 잘 나갈 땐 돈 많이 벌었지! 그 돈 다 모았으면 지금쯤 나도 큰 나이트 몇 개는 경영하고 있겠지! 술도 마시고 헤프게 쓴 것도 있지만, 벌어논 돈 몽땅 사기를 당해서도 그렇고... 돈받을 사람들 땜에 피해다니기도 많이 피해다녔고. 형,형 하던 사채업자 새끼들 한테 끌려가서 묶여서 맞아 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한참동안 뽕이나 맞고, 마약이나 하고 그러다 교도소를 들어가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바보짓 많이 했지!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 지금 집사람을 만났지. 나는 집사람이 너무 고마운 게, 같이 공연을 해도 유일하게 쟤만 면회를 그렇게 자주 왔거든. 그렇게 하기 힘들잖아? 그래서 같이 살게 됐지."
"그래, 제수 씨가 야무져서 다행이다."
"흐흐흐, 저 사람에겐 돈 들어갔다하면 끝이야. 내가 연주를 하다보면 손님들이 팁을 무대에 올려준단 말이야. 무대에서 내려올 때 손님들이 보고 있는데서 남자가 돈을 어떻게 챙기겠어. 그대로 두고 내려오면 다음에 집사람이 올라가서 딱 챙겨선 나한텐 반밖에 안 줘. 흐흐흐...."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그 동생이 눈을 그윽히 감고 연주하는 그 모습이 손님이 없는 걸 보기 싫어서 눈을 감고 연주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내가 이렇게라도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내 성격엔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반주기 들고 룸마다 찾아다니며, 다 아는 업소 기집애들 있는데서 다 벗고 색소폰을 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 요 작은 무대라도 내 무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라는 말이 자꾸 들리는 듯 하다.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저렇게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구나!
행복에 젖은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돈만으로 무대인들을 척도한 내 무식이 부끄럽고, 돈이라는 속되고도 짧은 잣대로 순수한 그들을 쟀다는 것도 부끄러웠다.
비록 부자는 아닐 지 모르지만, 저렇게 혼신을 다해 연주할 수 있는 무대인이란 게 오히려 존경받을 만하다 싶다.
돈으로 사람을 척도하고, 돈에 인격이 있다는 듯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혹시 저 친구가 피치못할 일 때문에 피해 다녀야 하는 입장이 됐다해도, 다른 사람 몰래 따뜻한 돼지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 들고 가서 먹이고 싶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하다고 했던가!
나도 마음줄 수 있는 동생 하나가 있어서 참 좋다.
자네는 무대인일세!
2011 년 2월 23일 새벽 1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