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을 가다~~~~~
오늘. 생전 두 번째 행주산성을 가는날이다.. 1954년 가을 소풍을 행주로 가게됐다.
서울 신총역에서 기차를 타고 능곡역 까지 가서 걸어서 행주산성을 갔었다. 오늘봄날 맑은
하늘이 마음을 산뜻하게 만들어 나는 요한스트라으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를 듣고 나섰다.
넓은 능곡평야가 시원스러우나 금빛갔던 들판이 이젠 하얀 비닐하우스로 덮혀 온통 눈이 부시다.
옛날과 다른것이 이 풍경이다.산성 입구에 왔다 중 3 때 소풍길은 몇백년의 길로 임란 당시의 토성
목책의 전쟁 흔적이 남아있어서 역사 선생님의 설명이 실감이 났는데 오늘 산성길은 포장이 되어있다.
행주(幸州)는 고구려 개백현 이었으나 고려에와서 행주로 고쳐 졌고. 행주 기씨들의 본향으로
정해져 기씨들의 무덤이 많다. 고려 공민왕 때 공녀로 끌려간 기씨 여자가 황후가돼서 그의 오빠들이
고려정권을 농락하다가 공민왕의 개혁으로 철퇴를 당한 곳도 행주현이다.
봄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3 월 우리는 이 산성으로 봄놀이를 온것이다. 남쪽에서 연일 타전되는
꽃소식에 좀이 쑤셨다.봄을 배달하고 싶어 나선 것이다. 바람없는 오늘 얼었던 땅도 옷고름을 풀어 헤치고
붉은 속살을 내놓았다. 봄을 여기서 맞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산성을 오르는길 잘 포장된 길에 봄기운을 탄 진달래가.산수유 나무들이 서걱 거리는 거리부터 시작 한다.
새들을 품은 숲이 지저긴다. 벗나무 소나무,참나무. 편백 나무가 도열한 길에는 경건함을 주고있다.
저 경건한 앞에 우리는 더 멋진 생을 .더 멋진 오늘을 위해 정상으로 가는 것이다.
정상 까지의 숲과 나무들이 봄이 왔음을 알려줄려고 푸른 군복을 입을려고 줄지어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졸병나무들이 경례를 붙이고들 있다.나무가지엔 미끄럼타는 햇볕. 새순을 트게 하고 겨울 논 밭 시랑에
포개 쌓이는 햇빝. 새봄이 이불을 깔아 놓고 봄이 마을 산을 둘러싸고 들어선 것 느낄 수 있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사이사이 건너 한강이 보인다. 한강의 색깔과 흐름이 달라지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 색깔이
달라져 보인다. 이 산속도 엷은 초록의 노래를 시작했다. 그래서 우린 일찍 봄을 느끼는 것일까?
우린 감성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지애가 넘치는 것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충우정에서 바라보는 한강이 손에 잡힐듯 가까히 업드려 있고, 장엄하기까지해 마치 소 천국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문득 공자님의 말씀이 떠 올랐다. 등태지 득 소천국(登泰之得小天國)중국 황제들 태산에 올라
태평천국을 빌었다 공자 말씀의 참 뜻은 더 배우라는 뜻이다.
눈을 낮추니 손톱보다 작은 진달래 산수유 꽃망울들이 피여 날려고 하고 있다.야생화도 피려는 생명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듯 하며. 이것들이 필려면 시련을 이기고 필것이다. 이에 숙연해 진다.
행주 대첩비 위로 체로 치듯 곱게 내리는 햇살아래 묵묵하게 우리는 머릴 숙였다. 새들도 햇살을 한가지씩 물고 이나무 저나무
사이로 옮아 다닌다 우리는 시장해 하산을 해 전라도식 한정식집에서 영광 굴비 한정식을 먹었다. 소주 3 병을 꺽으며
오늘 하루를 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 "봄이 오면"을 부르며 다음은 대광리 산으로 산나물캐러 가기로 했다,
권율장군.! 설명을 약함. 1537 년(중종32 년)~1599년, 선조 15 년,1582녕에 문과에 급제한 문관이다.
유성룡의 추천을 받았다.행주산성은 임란 때의 3대 대첩의 하나다.
행주치마의 유래는 선조실록, 기타 정사에는 없고. 야사에는 나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