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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의 치(貞觀的治; 당태종의 임기에 이룩한 정치적 업적)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는 하나의 치세 (治世)이며 성세(盛世)이자 하나의 휘황찬란한 민안지세(民安之世)였다. 정관의 치가 위대함은 그의 문화가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한 데만이 아니며 또한 근면하고 청렴한 많은 신하들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한 현명하고 덕(德)있는 군주가 얼마나 백성들을 잘 교화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었는가에 있다. 역사상 가장 모범이 된 이 왕이 바로 당태종 이세민이다.
정관초기 당태종은 신하들에게 활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과인은 어려서부터 활과 화살로 무예를 연마했고 지금은 스스로 그 속의 오묘함을 다 알았다고 자부했다. 근래 과인은 활 몇 개를 얻었는데 활을 시험삼아 쏘아 보기도 하고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활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후에 이 활을 만든 장인이 이런 글을 적어 올렸다.
"목자재의 중심이 바르지 않아 나무의 무늬도 따라서 비뚤어졌고 비록 세차고 힘은 있지만 화살이 곧게 나가지 않아 좋은 활은 못 되옵니다."
장인의 말에 과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과인은 활과 화살로 천하를 평정했고 사용했던 활과 화실이 몇 만개인지 헤아릴 수 없는데 결국은 어떤 활이 좋은 활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좋은 활을 분별하는 것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하물며 과인은 천하를 얻은 지 겨우 얼마인가?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자가 어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 활에 대한 안목이 아직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군주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이겠는가?"
이로부터 당태종은 명을 내려 오품(五品) 이상의 중앙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고초를 탐문케 한 다음 입궐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숙직하면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런 열정과 진지함에 관리들은 태만할 수 없었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태종의 성실함이야말로 나라를 태평성대로 이끈 힘이 아니겠는가?
메뚜기재해
덕있는 황제는, 천하태평을 백성들과 함께 누릴 뿐만 아니라 재해를 당했을 때에는 백성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킨다.
정관 2년 당나라 수도 장안에 큰 가뭄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누리(메뚜기)가 대량으로 발생하여 곡식을 갉아먹었다. 태종은 이 일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날마다 어원에 나가서 농작물을 살폈다. 당태종은 떼지어 날아다니는 메뚜기들이 밭의 농작물을 갉아먹는 것을 보고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는 누리(메뚜기) 몇 마리를 잡아 두손으로 감싸 받쳐들고는 기도를 하였다.
"곡식은 백성들의 양식인데 너희들이 곡식을 먹으면 백성들은 굶주리게 된다. 백성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고! 책임은 진실로 과인에게 있노라! 만약 너희들이 진정코 영성(靈性)이 있다면 내 마음만 먹고 백성들을 해치지 말지어다!"
기도를 다한 후 당태종이 메뚜기를 삼키려고 하자 좌우에서 극구 말렸다.
"드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드시면 병이 생기옵니다!"
당태종이 엄숙하게 말했다.
"과인은 누리(메뚜기)떼로 인하여 무고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함을 원치 않고 재해가 과인의 몸으로 옮겨오기를 바라는 바인데, 어찌 병에 걸릴까 봐 걱정을 하겠느냐?"
어쩌면 이런 사심없는 진실한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도 모른다. 당태종이 메뚜기를 삼킨 이후, 누리(메뚜기)는 과연 이로부터 더는 해를 입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