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69세인 예비역 상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1968년 11월 엄청 눈 많고 추운 겨울철에 전령을 따라간 곳은 이북 대북방송이 아주 가까이 귀에 섬뜩하게 들려오는 강원도 대성산 아래 포병대대. 도착시각은 밤 9시 경.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밤이었고, 달빛은 왜 그렇게 밝은지 사방산천은 하얀 눈 덮힌 산들이 눈에 훤했고 차가운 바람소리와 대북방송 소리만 들려오는 적막한 밤이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년을 묵어야 할 자대배치를 받고 부라보 포대로 전출했다.
그곳은 막사 주변이 상당히 넓은 곳이라 곳곳에 푸를이 자라 말라버린 상태였다. 나는 농사를 짓다 입대했기에 주변 빈 공터를 보니 농사일이 생각났다. 선임하사한테 얘기했다. 저곳에 밭을 일구어 채소를 심으면 좋겠다고. 선임하사는 바로 포대장에게 보고했다. 포대장은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농사를 짓다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ㅗ대장은 혼쾌히 허락했다. 당시엔 모든 것이 부족 할 때라 포대장은 포대 내에서 채소를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면 윗선으로 부터 성당히 인정받는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봄이 되자 나에게 당장 밭을 일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농사짓는데 필요한 인원도 충원해주었다. 그때부터 포대 안에 "밭팀"이란 소대가 생겨 매일 밭 일구는 일만 했다.
봄에 옥수수도 심고갖가지 채소도 심었다. 나는 포대장에게 건의했다. 이곳에 배추를 심으면 올겨울에 김장을 할 수 있겠다고. 포대장은 당장배추 씨앗을 구해오라고 했고, 나는 군 생활이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4박 5일 휴가를 얻어 집에 가서 배추 씨앗을 갖고 와서 배추를 심었다. 포대에 심은 배추는 금방 무럭무럭 잘 자랐다. 우리 포대장은 당시 소령 진급 대상자였기에 밭을 잘 가꾸면 인사고과에 있어 사단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혼자만의 생각에 매일매일 큰 꿈을 키워 갔다. 포대장은 커일 커가는 배추를 보러 와서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대대장도 가끔 와서 보면서아주 좋은 평을 해주었다. 하다하다 포대장은 나에게 어던 훈련에도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밭일에만 열중했다. 포대 인사과에 브리핑 차트까지 만들어 대대장에게 브리핑까지 했다.
처음 일군 밭이지만 배추는 무럭무럭 자랐다. 배추가 어느 정도 자라니 벌레들이 많았다. 아침저녁으로 배추벌레 잡는 일이 꽤 귀찮았기에 또 포대장에게 얘기했다. 배추벌레가 많아 농약을 살포 해야 한다고 하니 당장 휴가 가서 논약을 사 오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또 4박 5일 휴가를 갔고, 농약을 가지고 와서 살포했다.
지금까지 군 졸병 시절은 정말 좋았는데 농약 살포 이후부터 나의 군 생활은 180도 변했다. 농약 살포 후 3~4일 뒤 그토록 싱싱하게 잘 자라던 무와 배추가 서서히 시들어가고 말라갔다. 포대장은 매일같이 나를 다그쳤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저도 알 수가 없어 집에 전화해봐야겠다고 하니 외출증을 끊어 주었다. 사방거리 전화국에 가서 집에 전화하니 아버지께서 네가 갖고 간 농약은 벌레잡는 약이 아니고 풀 죽이는 제초제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침저녁 풀 죽이는 약을 뿌려 댔으니 시들어 버릴 수밖에.
포대장은 그때부터 나를 대하는 선과 말투가 엄청 거칠고 험악해졌다. 그리고 배추 농사의 패망으로 군 생활 3년 동안 나에게는 정기휴가가 한 번밖에 없었고, 진급도 못 했고, 결국 상병으로 제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45년 전 일을 다시 생각하니, 그때 군생활이 나에게는 제일 건강했던 때라 다시 돌아가고 싶다.
첫댓글 그때 그 시절 이야깁니다.
당시에는 영내에서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 그랬나 봅니다.
군대에서는군량미는 나왔겠지만,
항상 부족 할 때였고,
그 마져도 위에서 조금씩 갈취 했으니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많이 들어서 알지요.
사흘 째 연휴도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맹호~
그놈의 농약 땜에 좋다 말았군요.
예. 응암동님!
어느 조직이나 승진이나 진급 때문에~~~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갖고 와야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