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__(연산군의 배다리)__
근대적 의미로서의 한강에 세워진 다리는 한강철교이다.
한강철교는 1900년
1912년예는 제2한강철교가 세워졌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한강에 다리를 놓은 적이 있으니,바로 배다리다.
연산군때
연산군은 정승을 비롯한 문무백관과 군사들을 모아 사냥을 다녔는데,주로 다닌 사냥터가 지금의 양재동 일대 청계산이다. 수많은 물자를 동원하였고,백성들이 농사를 짓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기에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산군 6년 10 월 1일자의 실록
영의정 한치형이 아뢰기를
"청계산에서 사냥하실 때는 아직 그곳의 벼농사를 대부분 수확하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사람과 말이 밟아 손상시킬까 염려됩니다" 라고 말하며 사냥 중지를 요청하니
"봄에는 수蒐하고,여름에는 묘 苗하고, 가을에는선하고,겨울에는 수狩하는 것이니,10월은 바로 사냥할 시기이다.백성들이 밭을 수확하지 않는 것은 바로 백성들의 과실이니, 이 때문에 사냥을 폐할 수는 없다"
라고 억지를 부린다.
여기서 수,묘,선,수라는 것은 각각 봄사냥 여름사냥 가을사냥 겨울사냥을 뜻하는 것으로 일년 내내 사냥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 청계산으로 막상 사냥을 떠나면 동원되는 군사의 수가 5만명에 달했다. 징집한 군사 3만명에다 양반들로부터 그 집 노비와 머슴들까지 모두 동원받아 2만명을 채웠다
이 많은 인원에다가 말을 타고 가야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니 한강을 배타고 지나간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래서 한강에 배다리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 동원된 배가 물ㆍ 8백척, 임금의 사냥을 위해 엄청난 배가 동원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임금 행차 때만 설치한 것이 아니라 일년 내내 배다리를 띄워놓고 수시로 사냥을 다녔으니, 8백척의 배는 오로지 다리의 용도로만 쓰였다.
<5만명을 동원해 잡은 꿩 한마리>
.연산군 11년 10월 28일자 기록을 보면 연산군은 이날 눈이 올 조짐이 있다 하여 좌의정 박숭질로 하여금 군사를 감독하여 사냥을 하라고 보냈다.
이때도 청계산 사냥에도 군사 5만명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박숭질이 돌아와ㅈ임금에게 그날 사냥한 것을 바치니, 연산군이 이름보고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정승으로서 5만명을 데려가 고작 꿩 한 마리를 잡았는가_?"
5만명을 동원해 잡은 꿩 한마리.
그 꿩 한 마리를 위해 좌의정이 산을 타고, 5만 명이 짐승을 몰러 다니고, 한강에는 예전에 없었던 8백척짜리 배다리가 놓였던 것이다.
感辭합니다_!